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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Mar 05. 2022

금요일 밤에 깨어 있다가 든 생각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게 좋은 삶이다  

1

예전에 포이동 국악고등학교 근처 살 때였다. 금요일 저녁에 버스를 타고 영동2교를 건너 집으로 가던 나는 창밖에 클라이밍 장비업체의 홀에 모여서 동영상을 시청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목격했다. 나로서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금요일 저녁 그 시간에 술 한 방울 마시지 않고 심지어 짜장면이나 비스킷도 없이 다들 클라이밍 동영상만 저렇게 진지하게 쳐다보고 있다니.

2

수영에 재미를 붙여 매일 수영장을 다닌 적이 있었다. 그래도 보통 금요일 저녁이면 술집으로 달려가거나 아니면 그냥 집으로 갔을 텐데, 그날은 무슨 연유에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혼자 수영장엘 갔다. 놀라웠다. 그 시간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수영을 하고 있을 줄이야. 그렇다고 수영 선수처럼 보이는 사람도 없었다. 다들 그저 수영이 좋아서  그 시간에 거기와 있는 사람들이었다.   

3

나는 밤이면 집중력이 떨어지는 스타일이라 쓰는 것보다는 읽는 걸 더 많이 하는 편이다....... 아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해 떨어지면 술 마시고 놀아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마음과 자세로 수십 년을 살아왔다. 어쩌다 청주에 혼자 있게 되니 금요일 밤이라도 이렇게 말짱한 정신으로 깨어 있는 것이다. 요즘은 책을 쓰고 있으니까 아무 책이나 꺼내 읽어도 자동적으로 메모를 하면서 읽고 중간중간 에버노트에 써 놓은 글 찾기를 병행하기도 한다.  

스티븐 킹의 『악몽을 파는 가게』는 내가 아주 좋아하는 단편집이다.  이 책은 특히 단편 소설이 시작되기 전 페이지에 작가의 설명이 각각 붙어 있는데, 자신이 왜 이 소설을 썼으며 어떤 기회로 아이디어를 떠올렸는지 등이 자유롭게 쓰여 있다. 스티븐 킹은 심지어 서문조차도 재밌게 쓴다. 장편 소설과 단편 소설의 차이점을 얘기하다가 '이렇게 단편들을 한데 모아 놓으면 자정에만 문을 여는 노점상이 된 듯한 기분이 든다'라는 고백은 판타지 소설가에겐 정말 딱이지 않나!

 껐던 전기스탠드와 노트북을 다시 켜고 열심히 소설을 읽으며 밑줄을 긋는 내 모습을 자각하면서 지금 내가 하는 짓이 클라이밍 동호회 사람들이나 밤 수영장의 그들과 똑같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불타는 금요일'을 반납하면서까지 하고 싶은 게 있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행복하다. 그렇게 믿는다. 아니, 확실히 그렇다. 술 좋아하는 내가 하는 말이니 믿어도 좋다. 금요일 심야라 약간 흥분하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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