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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Mar 01. 2022

나는 나를 믿을 수 없어서 타이머를 사용한다

청주통신 : 스마트폰 타이머 사용기

건망증이 심한 건 어려서부터였다. '난닝구'만 입고 등교하다가 집으로 다시 돌아오는 일은 아주 흔했는데  

보온도시락이나 샤프펜슬을 자주 잃어버린 건 건망증보다는 주의력 부족이라고 보는 게 나을 것 같다. 그러니까 지금도 딴짓을 하다가 내려야 할 정류장을 그냥 지나치거나 가스요금 등을 늦게 내서 과태료를 무는 것은 건망증과 주의력 부족의 끈질긴 연대가 만들어낸 생활의 불편 시리즈라 하겠다. 군대 가려고 휴학했을 때 가수 김동환(<묻어버린 아픔> 원곡자) 콘서트에서 같이 아르바이트했던 5년 후배 영이에게 줄 돈을 버스에서

잃어버려 한동안 고생했던 기억도 난다. 오로지 돈을 건네주러 가는 길이었는데 돈이 든 편지봉투를 잃어버리다니 지금 생각해봐도 귀신이 곡할 일이었다. 과태료 부분은 자동이체를 신청하면 간단히 해결될 문제지만 이상하게 그게 잘 안 된다. 아마도 자동이체를 해놓고 잊어버렸다가 돈이 매번 빠져나가던 것을  목격하고는 배신감에 시달린 기억 때문에 그런 모양이다(언제 신청했는지 모르겠지만 '김어준의 다스뵈이다'는 한 번도 시청 또는 청취한 적이 없는데 일 년간 지불하고 있었다). 넷플릭스 같은 OTT 서비스도 착실히 나의 돈을 매달 빼가고 있는 고마운 분들이다.


청주에 오니 오래도록 안 썼던 방이라 그런지 보일러 작동이 시원치 않았다(지금은 잘 작동한다). 방이 좀 춥다고 했더니 해인네(해성인문학네트워크) 박은영 선생이 전기 히터를 하나 빌려 주셨다. 나는 원래 방을 그렇게 따뜻하게 해 놓고 사는 편은 아닌데 그래도 가끔 전기 히터를 틀어야 할 상황이 생겼고 히터를 틀고 십 분쯤 있다 꺼야지 생각했으나 어느새 까먹고 책상 앞에 엎드려 책을 읽거나 글을 쓰다가 등이 뜨거워져 놀라곤 했다. 이러다가 히터나 가스레인지를 켜놓고 산책이라도 나가면 큰일 아닌가 하는 두려움에 스마트폰 타이머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나는 나를 믿을 수가 없어서 전기 히터는 사용 즉시 콘센트를 뽑아 놓는다. 사용할 때 다시 꽂으면 되니까.  

아내가 커피 끓여 먹으라고  작은 주전자는 2분만 데우면 바로 물이 끓는다. 그런데 나는  2분을  참고 딴짓을 벌이다가 번번이  타이밍을 놓친다. 이럴  스마트폰 타이머가 아주 요긴하다. 이제 나는 타이머로 2, 3, 또는 20 동안 딴짓을 하다가도 정신을 차리는 보람찬 생활을 즐기 있다. 역시 인간은 문명의 이기를 활용할  아는 존재다...... 물론 타이머를 너무 믿으면  된다.  번은 타이머를 2분에 맞춰놓고 뭔가를 끄적이다가 울릴 때가 되었는데도 울리지 않아 이상하다 생각하며 가스불부터 끄고 스마트폰을 열어 보니 2분이 아니라 '1시간 2' 맞춰져 있었다. 자나 깨나 조심해야 한다. 나는 나를 믿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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