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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Mar 25. 2022

읽은 사람을 조금 좋은 쪽으로 변하게 하는 소설

황보름의 『어세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오랜만에 교보문고에 간 김에 베스트셀러를 하나 골라야지 생각하니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소설이  황보름의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였다. 전에 황 작가가 쓴 독서 에세이  『매일 읽겠습니다』를 재밌게 읽었기에 별 망설임 없이 선택할 수 있었다. 동네 서점에 관한 이야기라고 해서 잔잔하고 따뜻한 작품일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읽어보니 책과 글쓰기에 대한 치열한 모색이 있었고 작가가 직접 읽었음직한 도서 목록을 살피는 것도 색다른 재미였다. 개인적으로는 영주가 김금희의 『너무 한낮의 연애』 중 한 작품을 일요일에 읽는 모습과  민철 엄마(전주희)에게 『에이미와 이저벨』을 권하는 장면이 반가웠다. 엘리지베스 스트라우트의 '에이미와 이저벨'을 다른 작품에서 거론하는 걸 처음 봐서 그랬을 것이다.  작가는 주인공 영주의 입을 통해 좋은 책이란 무엇인가, 동네 서점의 역할은 어디까지인가를 계속 묻고 대답한다. 조용하지만 시끄러운 소설이다. 등장인물의 마음이나 생각을 그대로 묘사하는 황보름 작가의 독특한 문체에 대해서도 얘기하고 싶은데, 일인칭에서 할 만한 서술을 삼인칭으로 한다는 게 처음엔 신기하다가 나중엔 나도 작가가 된 기분으로 따라 읽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내가 서점이 나오는 소설을 쓰거나 드라마 극본을 쓴다면 어떻게 쓸까, 를 생각하면서 읽게 되었다. 먼저 주인공의 사연을 만들고 서점을 중심으로 등장인물들을 배치한 뒤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인간관계의 갈등이나 로맨스를 만들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 소설도 어느 정도 그렇긴 한데 여기서는 갈등보다 개개인을 삶의 주체로 이해하려는 '열린 마음'이 더 강했다. 그래서 정말 휴남동 서점에 가면 누구나 따뜻한 휴식과 위로를 선물 받을 것만 같았다. 특히 너무 화가 나서 계약직 신분으로 회사 일에 시달리는 걸 그만두고 서점에 와서 뜨개질만 하던 정서가 영주와 지미에게 받아들여지는 장면이 흐뭇했고 대학 동창 성철에게 '성공이란 좋은 사람들이 주변에 있는 삶'이라고 하는 민준의 말은 내가 요즘 생각하는 행복의 전제 조건과도 같아서 반가웠다.


책을 읽고 글을 쓴다는 건 결국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소설 속에 등장하는 북토크나 글쓰기 강의는 효과적인 장치였다. 특히 이보름 작가를 모시고 『매일 읽습니다』라는 책의 북토크를 하는 장면은 작가가 스스로의 작품을 액자 삼아 다시 쓴 거라 거의 팬 서비스를 받는 느낌이었다(책은 기억이 아니라 몸에 남는 거란 얘기나 스마트폰 타이머를 이용한 독서법 같은 건 이전에 썼던 책에 나오는 내용들이다). 내 첫 책을 내 준 몽스북의 안지선 대표는 "작가라 해도 글 쓰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드문데 작가님은 그런 면에서 타고난 것 같아요"라고 말한 바 있다. 나에겐 엄청난 칭찬이었던 그 말이 요즘 자꾸 떠오른다. 나는 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걸 좋아하는 걸까. 책이나 글에는 나를 좋은 쪽으로 변하게 하는 요소가 있다. 우리는 글을 읽고 씀으로써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된다. 스스로를 더 가치 있는 존재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어세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라는 책을 읽는 동안에도 그런 생각을 했다. 황보름 작가는 이 소설을 읽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좋은 쪽으로 변했으면, 좀 더 자신을 인정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고 바라고 있다고. 그래서 소설 말미에 영주가 민준에게 했던 이 말은 작가가 스스로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었다고.

"세상에는 허겁지겁 먹는 밥이 있고 마음을 다해 정성스레 먹는 밥이 있어요. 나는 이제 소박한 밥을 정성스레 먹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나를 위해서요." 책을  읽고 나니   소설이 베스트셀러 매대에 누워 있는지   같았다. 아직  읽으셨다면 지금이라도 일독을 권한다. 시간이 아깝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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