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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Apr 04. 2022

사는 게 힘들 땐 지하철 유실물센터에 가야 한다

월요일을 극복하는 방법

월요일이다. 똑같은 날이라도 월요일 오전엔 어쩔 수 없이 사는 게 좀 더 힘들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박완서 선생의 소설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에 나오는 아들을 전경의 쇠파이프에 잃은 어머니는 심란할 때마다 "은하계는 태양계를 포함한 무수한 항성과 별의 무리, 태양계의 초점인 태양과 지구 사이의 거리는 빛으로 약 오백 초... 광년은 빛이 일 년 동안 쉬지 않고 갈 수 있는 거리의 단위, 구조사천육백칠십 킬로미터."라는 은하계 주문을 외지만 나는 그럴 때마다 지하철 유실물센터를 떠올린다. 내가 지하철 유실물센터에 갔던 건 30대 중반 어느 해 명절 때 본가에 갔다가 시장에서 술을 마시고 어머니가 싸준 김치보시기를 배낭째 잃어버렸을 때였다.


초등학교 동창 민석이와 둘이 연신내 시장에서 술을 마셨는데 입이 짧아 안주를  먹지 않는 민석이와 대작을 하다 보니 그만 대취하고 말았던 것이다. 억장으로 취한 나는 전철 안에 김치 보따리를 놓고 내린  깨닫고는 어찌어찌 묻고 물어 충무로에 있는 유실물 센터까지 갔다. 그러나 너무 취해 이름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던 나는  쫓겨나고 말았다. 역무원은  차는 소리와 함께 내일 술이 깨면 다시 찾아오라는 말을 해주었다. 엄마가   김치를 열어보지도 못하고 잃어버리다니. 어렸을   도시락이나 가방을 잃어버리더니 이젠 김치까지 잃어버리고 유실센터에서도 쫓겨나다니. 죽고 싶었다.

다음  술이  나는 힘이  빠진  지하철 유실센터를 방문했는데, 어이없는 와중에도 실실 웃음이 나왔다.  김치보시기 옆에 놓여 있던 골프백을 보았던 것이다. 도대체 골프를 치는  인간이  지하철을 탔으며 어쩌자고   골프백을 열차 안에 놓고 갔느냐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나만 한심하고 정신없이 사는  아니었다. 사람들은 엄청나게 많은 물건을 지하철에 놓고 내렸다. 지금 인터넷으로 기사를 찾아보니  유실물 가방에서 구렁이가 나온 적도 있고 자전거를 두고 내리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가장 많이 잃어버린 물건 1위는 지갑(24,737, 24%)이었고 휴대전화  귀중품(20,131, 20%) 가방(14,785, 15%) 뒤를 이었다. 2021 통계인데 전년 대비 다른 유실물들이 소폭  수가 늘어난 반면, 가방은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추세라고 한다.


지하철 실물센터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이토록 많은 물건들이 주인의 손을 떠나 창고에서 떨고 있다니. 그러나 보관실에 있는 물건들을 보면서 약간의 위로를 받는 것도 사실이다. 세상은 완벽하게 돌아가지 않는다. 사람들은 저마다 열심히 살고 있지만 어이없는 선택을  때도 많고 지갑이나 가방을 무시로 흘리고 다니기도 한다.  잃어버리더라도 아내라든지(나는 공처가니까 이해하시라) 소중한 가치  개는 지키고 살자 마음먹은 월요일 오전인 것이다. , 이걸 쓰다 보니 벌써 오후가 되었다. 힘을 내자. 벌써 월요일 오전을 무찌르지 않았나. 월요일만 무사히 넘겨도 세상은   만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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