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까지 만나보지 못했습니다만…
3박 4일 일정으로 떠나기 몇 달 전부터 일정도 다 짜놓고 숙소에 렌터카에 완벽한 준비를 했다.
아내와 둘이 제주도 여행.
제주에 도착하자마자 국룰이라는 올레국수에서 고기국수와 돔베고기를 먹고 제주시를 한 바퀴 구경하고 첫날 예약했던 리조트로 향했다.
*** 리조트
대형 프랜차이즈가 아닌 작은 개인 리조트로 가운데 꽤 큰 수영장을 중심으로 돔 형태의 독채숙소가 둘러싸인 형태였다. 수영장에서 수영도 하고, 저녁에 근처 맛집에서 흑돼지도 먹고 신나는 하루를 보내고 숙소로 돌아왔다.
지금은 아니지만 그때는 흡연자였기 때문에 아내는 숙소에 먼저 들어가 있으라고 하고, 리조트 입구 쪽 주차장 근처에 있는 흡연장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아주 더운 여름이라 슬리퍼에 반바지를 입고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갑자기 오른쪽 발등에 강한 통증을 느꼈다.
마치 면적이 작은 쇠망치로 발등을 꿍하고 내리친 느낌이었다.
“으악!”
정말 으악~하는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통증을 느낀 발등을 쳐다보자 작고 길쭉한 무언가가 옆 수풀 속으로 스르륵 사라졌다.
순간 긴 몸을 가진 그놈이 생각났다.
‘이건 뱀이다!’
‘아! 뱀에 물리다니!’
‘2000년대에 야산도 아니고 주차장에서 뱀에 물리다니!!!’
어이가 없으면서 별거 아니겠지라고 생각을 했다.
‘리조트 주차장에 아스팔트까지 내려온 조그만 뱀 주제가 살짝 물은 건데 무슨 일이나 생기겠어..’
조용히 주차장 바로 앞 리조트 리셉션 앞의 평상에 앉아 남은 담배를 마저 피웠다.
그런데 이상하다.
물린 발등부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통증이 올라왔다.
아까 느낀 망치로 내려치는 통증이 1초에 한 번씩 느껴진다.
“아! 아! 악! 아!…!”
너무 아파 일어나려 하니 발목이 안 움직인다. 극심한 통증과 두려움에 바로 숙소 안에 있는 아내에서 전화를 했다.
“자기야! 큰일 났어! 나 뱀에 물린 거 같아! 여기 주차장인데 발이 너무 아프고 안 움직여. 못 가겠어. 여기로 좀 와봐!”
아내는 바로 달려왔다.
“뭐 어떻게 된 거야? 여기 뱀이 왜 있어? 뱀 맞아? 확실해?”
“어! 어두워서 잘 못 봤는데 뱀 맞는 것 같아! 아~ 엄청 아파!”
아내는 리조트 사장님에게 전화로 대략 자초지종을 설명하며 빨리 와달라고 했다.
사장님은 헐레벌떡 오셔서 어떻게 된 거냐며 물었다.
“사장님 제가 여기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뭐가 발등을 물고 수풀로 들어갔어요. 어두워서 확실하진 않은데 실루엣이 뱀 같았어요. “
“아닐 거예요! 여기 뱀 없어요. 지금 리조트 운영을 몇 년째하고 있는데 뱀 나왔다는 소리는 처음 들어봅니다. 그리고 혹시 몰라서 이 주위에 다 약을 쳐요. 아마 독충이나 뭐 그럴 거예요”
(제가 이 두 눈으로 뱀처럼 생긴 걸 봤다고요..)
아내도 리조트 사장님도 뱀은 말도 안 된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했다.
“아무튼 너무 아프고 발도 안 움직여요. ㅜㅜ”
“네 일단 119를 부를게요! 조금만 참으세요! “
119에 전화를 하니 여기까지 오는데 20분이나 걸린단다. 여긴 제주도구나..
그 사이 다리 한쪽은 거의 마비 수준이 됐다. 무릎도 잘 안 움직이고 너무 겁이 났다.
구급차가 도착을 하고 아내와 나는 구급차에 타고 리조트 사장님은 자기 차로 따라온다고 했다.
제주도에는 응급실이 제주대학병원 한 군데라고 한다.
선택지는 없고 일단 제주대학병원으로 향했다.
구급차를 타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하지?’
‘살모사인가? 그렇게 많이 안 컸는데?’
‘원래 칼로 환부를 찢어서 입으로 독을 빨아내야 하는 거 아냐?’
용기 내어 말해본다.
“여기 대원님 저 뱀에 물린 거 같은데 응급처치는 안 해도 돼요?”
“아.. 뱀 아닐 거예요. 걱정 마시고 편하게 누워계세요.^^”
‘아니 상처 모양이 누가 봐도 뱀 이빨모양인데..’
”그럼 선생님 병원까지 얼마나 걸려요? “
”한 시간 넘게 걸려요. 원래 멀기도 하고 차가 많이 밀려서.. “
여긴 제주도구나.. 이렇게 넓은 땅에 응급실이 한 군데밖에 없다니...
제주대학병원에 도착했다.
응급실에서 의사 선생님은 상처를 보더니 심드렁한 표정으로 뱀이빨 자국 모양의 상처에 사인펜으로 동그라미 두 개를 그렸다.
그리고는 나에게 말했다.
“뱀 봤어요? 뱀 맞아요?”
“아뇨 어두워서.. 그런데 뭐가 스르륵 도망갔는데 뱀이 거의 확실해요.”
“많이 아파요?
”죽을 거 같아요.”
“링거 2시간 정도 맞고 가시면 되는데 약도 들어가니 좀 아플 수도 있어요. “
”혈청인가요!? “
의사 선생님은 그냥 웃으면 사라졌다.
도대체 왜 아무도 안 믿는 거야! 제주도는 뱀 얘기하면 안 되는 곳인가?
링거를 맞으면서 리조트 사장님과 이야기를 나눴다. 너무나도 친절하신 사장님.
“사장님.. 제가 재수 없게 뱀 따위에 물려 잠도 못 주무시고 여기까지 오셨네요. 죄송해서 병원비는 제가 실비보험이 있으니 알아서 하겠습니다.”
“아이고 손님이 우리 리조트에서 다치셨는데 당연히 같이 와봐야죠. 그리고 저희 보험이 다 되어 있어요.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아 보험이 다 되어 있구나. ‘
링거를 다 맞고 사장님 차를 타고 숙소로 들어왔다.
한여름이어서 기온이 35도를 육박하는 더운 날씨였고거기에 이불을 다 뒤집어썼는데도 엄청난 오한으로 몸이 덜덜덜 떨렸다.
아내는 밤새 날 걱정스럽게 간호를 해줬다. 아마 많이 울었을 것이다.
나도 이런 사건을 만들어 너무 미안하기도 하고, 여행 첫날인데 날이 밝는대로 집에 가야 하나 고민을 하다가 잠이 들었다.
몇 시간 후 아침이 되고 눈을 떴다.
어라?
이불과 침대시트를 다 갈아야 할 정도로 온몸이 흠뻑 젖어있었다.
하지만 내 몸은 어느 때보다 개운하고 최상의 컨디션이었다.
조금의 피곤함도 느낄 수 없고 최고의 디톡스를 한 기분이 들었다.
일어나자마자 오전에 수영을 한판 하고, 아내의 한심스러운 눈빛을 뒤로 한채 점심엔 한라산을 곁들여 갈치조림을 해치웠다.
그리고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전화를 했다.
“나 제주도 놀러왔는데 뱀 물려서 응급실 갔다 왔어! 으하하!”
그 말을 들은 거의 모든 사람들은
“뭔 소리야. 뱀에 물려 응급실을 갔다고? 뻥치고 있네. 말이 되냐? 어디 맨발로 산이라도 탄겨?”
난 이때 깨달았다.
뱀에 물릴 확률은 극히 낮다는 걸.
그리고 사람들에게 뱀에 물렸다고 하면 거의 대부분 믿지 못하거나 놀라워한다는 걸.
이때부터 지금까지 만나는 새로운 사람들에게 난 항상 이 질문을 한다.
“혹시 뱀에 물려본 적 있으세요?”
아쉽게도 아직까지 뱀에 물렸던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
혹시 있으시면 댓글을 달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