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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떠나보낸 다음 날 난 아내에게 고양이를 키우자고 했다.
진지한 나의 표정에 압도당해 알았다고 한 건지, 정말 아내도 그 고양이가 눈에 아른거려 알았다고 한 건지는 잘 모르겠다.
가만! 그 죽는 고양이를 살려냈으면 어떻게 하려고 했지? 거기까지는 생각을 못하고 있었다.
어쨌건 결국 난 고양이를 키우기로 마음먹었다.
여태껏 난 꿈속에서 고양이를 본 적이 있었나? 그날 이후로는 몇 번씩 꿈에 고양이가 나왔다. 잠에서 깨면 슬픔보다는 그리움이 더 많이 남았다.
가끔씩 집 주변에서 길고양이들이 돌아다니거나 놀이터 수풀에 숨어 있으면 가까이 다가가 그 고양이와 닮았나 보고 가기도 했다. 이러다가는 지나가는 고양이를 잡아다가 키워야 할 판이었다.
안 되겠다 싶어서 주말에 유명하다는 펫 샵을 방문했다.
주변에 고양이를 키우는 지인도 없고 펫 샵에서 분양이 하면 되는 거겠거니 하는 생각이었다.
대전 중심가에 있는 꽤 큰 건물 2층에 자리 잡은 그 펫 샵은 인터넷에서 아주 좋은 평을 받는 유명한 펫 샵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온통 블랙으로 뒤덮은 인테리어에 높은 천장, 내가 생각했던 느낌과는 달리 꽤 고급진 분위기의 펫 샵이었다.
그곳엔 엄청나게 많은 고양이와 강아지들이 플라스틱 케이지에 갇혀 있었다.
최대한 우릴 떠난 고양이와 닮은 아이를 찾으라 정신이 없는데 아내가 옆에서 이상한 소리를 했다.
“고양이 눈이… 계속 보고 있으니까 무섭네…”
“아 뭐래.. 이상한 소리 하고 있어.. ㅎㅎ”
아랑곳하지 않고 많은 고양이와 눈을 마주치며 정신적 교감을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정말 계속 눈을 보니 뭔가 무섭다는 생각도 들고, 내 생각을 읽는 듯한 눈빛이 참 묘하게 생각됐다.
‘ 어.. 저 눈이 무서운 눈빛이라고 하면 그럴 수도 있겠구나..’
조금 가까이 다가가서 보려고 하면 하악질을 하고, 멀리 도망갔다.
지금 생각하면 당연한 고양이의 습성이겠지만, 그때는 몰랐다.
‘내 생각이랑 너무 다른데?’
‘집에 가서도 저러면 어떻게 하지? 집에서도 아내가 무섭다고 하고 어쩌지?’
혼란스럽다.
아무도 모르게 혼자 속으로 고민을 하는 중에 바로 앞 케이지에 있던, 똑같은 생긴 강아지 3마리 중에 한 마리가 계속 내 쪽으로 앞 발을 들며 짖어대는 것이 아닌가!!
가만 보니 두 마리는 새하얀 털이 가졌고, 나에게 달려든 강아지는 얼룩무늬였다.
포메라니안이라는 종인데, 새하얀 포메라니안이 가장 인기가 많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새하얀 녀석들이 눈송이처럼 예쁘게 생겼다. 그에 비해 얼룩이는 하얀 부분도 누리끼리한 데다 얼룩덜룩 좀 싸구려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부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그 얼룩이 강아지 한 마리만 계속 나를 보고 짖어댔다.
‘왜 짖는 거냐 넌? 옆에 이쁜이들은 가만히 있는데..’
펫 샵 사장님이 그 강아지를 한번 안아보라고 하셨다. (왜요?)
“한번 안아 보세요. 가끔 저렇게 한 아이가 손님에게 짖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강아지가 주인을 고른 것처럼 말이에요. 하하”
“하하하 말도 안 돼요. 농담도.”
“아 한번 안아보세요~”
사장님이 케이지에서 그 얼룩이를 꺼내 나에게 조심히 건네주었다.
나에게 안기자 마자 이 녀석은 얼굴을 파묻고는 그렇게 가만히 있는 것인 아닌가? 그리고 신기하게도 조용히 있는 것이다. 다시 펫 샵 사장님께 건네주고 나를 보면서 또 짖고 또다시 나에게 오면 얌전히 내 품에 파고들었다.
‘왜 이래 너..”
설마 운명? 인연?
아냐 설마. 그럴 리가!
이 상황을 믿을 수 없던 나는 테스트를 하기로 결심했다.
이건 우연일 거야.
“ 자! 사장님 제가 이쪽 끝에 있을 때니까 동시에 그 세 마리를 바닥에 놓아주세요. 설마 또 그 얼룩이만 저에게 달려들겠어요? 세 마리 중 두 마리가 달려들거나 세 마리 다 달려들 겁니다. 하하”
‘자 얼룩아! 너만 오면 내가 너 데리고 간다! 넌 내 운명이다!”
하나 둘 셋!
사장님은 세 마리를 안고 있다가 동시에 강아지들을 내려놨다.
후다다닥!
이럴 수가! 정말 그 아이만 나 품으로 달려와 안겼다!
운명이다. 이건 운명이야.
사장님도 놀라고 나도 놀라고 같이 갔던 아내도 놀랐다.
“자기야 얘야! 얘! 얘는 오늘부터 우리 가족이다!”
며칠 전 나를 떠난 고양이를 그리워하며 다른 고양이를 가족으로 맞으러 온 것인데…
강아지라니…
하지만 우리 만남은 운명이었고, 그 얼룩이는 내 손에서 떨어질 때마다 낑낑거리고 눈물을 흘렸다.
(정말이다. 눈가의 털이 젖은 것을 분명히 기억한다)
더 이상 며칠 전 고양이는 내 마음속에 없었다.
며칠 전 그 나의 슬픔은 어디 갔단 말이냐? 이런 변절자 같으니라고..
‘아몰랑.. 얼룩아. 그래. 우리 집에 가자.’
“사장님 이 아이를 데려가겠습니다!”
“네! 하하 어떻게 고양이를 보러 오셨다가 강아지를 데려가시네요.”
“네! 운명인 것 같습니다.” (그놈에 운명 타령)
“네 손님. 그런데 이 아이는 엄마 강아지가 어쩌고 저쩌고.. 혈통이 어쩌고 저쩌고.. 분양하시면 혈통서가 따로 나오는데… 어쩌고 저쩌고.. 그래서 분양가가 140만 원입니다.”
‘헤엑!!!!’
이 운명 같은 상황에서 혈통서 없는 아이를 다시 보겠다고 할 수도 없지 않나.
깎아달라고 하면 이 운명이 반쪽짜리 운명이 되는 것 아닐까?
나의 쓸데없는 운명 타령 때문에 너는 있지도 않는 혈통서를 가진 얼룩이가 된 것이냐.
그리고 그 혈통서는 왜 1주일이나 지난 후에서 받을 수 있는 것인가? 새로 만들어야 하는 건 아니겠지요?
그리고 강아지가 혈통서가 왜 있고, 그게 있으면 뭐 저랑 대화를 한답니까. 흑..
그렇게 고양이가 아닌 족보 있는 강아지를 키우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