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여행을 다녀와서 드라마에서 본 것처럼 양가 부모님께 차례로 인사를 드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따로 신혼집을 얻거나 하지 않고 내가 살고 있던 집에 들어가 살기로 했다.
혼수도 정말 필요한 것만 준비하고 신혼 생활을 시작했다.
18평짜리 방 두 개 투룸에 티브이, 냉장고, 세탁기, 화장대 하나로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돈이 많은 것도 아니었지만 무리해서 집을 장만하는데 돈을 쓰기 싫었다. 독립해서 오랫동안 혼자 작은 원룸에서 살아서 그런지, 그리고 항상 해외생활의 로망이 있어 집에 대한 욕심이 전혀 없었다. 당연히 언젠가는 한국을 떠날 거라는 막연한 생각 때문에 부동산에 관심도 없었다.
그리고 두 명이 사는데 투룸이면 충분하지 않나? 아내도 좋다고 하진 않지만 강하게 싫다는 표현도 하지 않았다.
(사실 지금 와서 하는 말인데, 너무너무 싫었다고 한다. 다른 친구들처럼 아파트에 인테리어도 새로 해서 예쁘게 꾸미고 싶었다고 한다. 왜 그때 말을 안 했어… 하하.. 하..)
그렇게 우린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투룸에서 생활하는 것이 나쁘지 않았다.
집이 작아서 청소하기가 쉽고 원래부터 살았던 곳이라 익숙해서 좋았다.
물론 모두가 상상하는 신혼집의 느낌은 없었다.
벽마다 다른 무늬의 촌스런 실크벽지에다가 한밤중에 건물 옆 주차장으로 차가 들어오면서 수도계량기 뚜껑을 밟고 지나갈 때마다 ‘쾅’ 하는 소리에 항상 잠에서 깨기도 했다.
그리고 건물 계단에서 누군가 이야기를 하면 내 귀에 대고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잘 들렸다.
아내는 아파트에 살고 싶어 했다. 나는 여기도 괜찮은데…
연애할 때는 몰랐는데 같이 살다 보니 다른 점이 무척 많았다.
나는 퇴근하면 바로 씻어야 하는 사람이고, 아내는 바로 누워야 하는 사람이다.
나는 모든 면에서 정적인 사람이고, 아내는 동적인 사람이다.
나는 조용한 분위기를 좋아하고, 아내는 시끌벅적한 분위기를 좋아한다.
나는 잔소리를 많이 하고, 아내는 잔소리를 싫어한다.
나는 남자고, 아내는 여자다.
아내보다 퇴근이 늦은 내가 집에 들어오면 항상 옷가지를 널브러져 있고 음악소리 때문에 시끄럽고 피곤한데 자꾸 나가자고 한다.
그리고 난 잔소리를 하기 시작하고 아내는 듣기 싫어한다.
참 많이도 싸웠다.
원래 신혼 때는 이렇게 많이 싸우는 건가?
그렇게 서로 맞춰가는 활화산 같은 감정의 골짜기 속에서 어느 날 자주 가던 수제비집에서 밥을 먹고 나오는데 식당 주차장에 있는 승용차 밑에 뭔가 검은 물체가 보였다.
궁금해서 가까이 가보니 정말 태어난 지 몇 주 안 된 새끼 고양이였다.
너무나 작고 귀여웠다.
그런데 그 고양이는 몸의 반 정도가 검은 기름 같은 끈적인 액체로 뒤덮여 있었고 눈도 감은 채 덜덜 떨고 있었다.
우리 부부는 한마음 한뜻으로 눈빛을 교환했다.
저 아이를 구해주자!
한 순간에 의욕이 활활 타오르며 그 전의 활화산 같은 골짜기는 온데간데없고 우리 앞에 행복의 고속도로가 뚫려 있었다.
어느새 우린 차 안에서 서로 손을 꽉 잡고 있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새끼 고양이는 함부로 데리고 가면 안 된다고 한다.
엄마 고양이가 새끼를 찾으러 올 수도 있으니 하루 정도는 지켜보기로 했다. 하루를 기다려 다음날 아침부터 고양이를 보러 갔다. 여전히 그 차 밑에 고양이가 있었고 그 후로. 3시간을 차 안에서 지켜봤다. 3시간이 흐른 뒤에도 엄마 고양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조심조심 고양이를 들고 차에 탔다. 집에 가서 먼저 씻겨야 하나 병원을 데려가야 하나 고민을 할 정도로 몸이 너무 더러웠다. 결국 병원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병원에 가니 수의사 선생님께서는 어렵다는 듯이 말을 꺼냈다.
“ 잘 데려오시긴 했는데 상태가 너무 안 좋네요. 피부에는 자동차 오일 같은 게 묻어 있는데 조금 오래 방치된 것 같아요. 아마도 그 오일 때문에 엄마 고양이가 새끼를 버린 것 같고요. 며칠 동안 아무것도 못 먹은 것 같은데… 너무 어려서 수액을 맞을 수 있을까 모르겠는데.. 일단 검사부터 한번 해볼게요.”
우리는 제발 다시 기운을 차려 일어났으면 하고 서로 바라보며 기도를 했다.
이렇게 한마음 한뜻인 적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검사는 끝났는데.. 좀 안타까운데요.. 파보바이러스라고.. 장염이에요”
“장염이면 수액 같은 걸맞으면 되는 거 아닌가요?”
“아이가 너무 어리고 길고양이여서.. 변상태라던가 숨소리를 들어봤을 때 조금 힘들 것 같네요. 물도 못 먹고 수액도 힘들 것 같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돼요? 일단 살려야 되잖아요.”
병원에서는 힘들 것 같다고 데려가기를 원했다.
우린 고양이를 데리고 병원에서 나왔다.
하루 잠깐 본 고양이였고, 별 것 아닌 일, 그럴 수도 있는 일이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이상하게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아직 죽은 것도 아니고 살 수도 있지 않나?
나와 아내는 마트로 향했다. 마트로 가서 고양이집과 고양이 사료, 고양이 화장실 등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고양이 몸을 살살 씻겨서 집에 담요를 깔아주고 그 위에 눕혔다. 눈은 뜨지 못하지만 아직 숨을 쉬고 있었다. 페트병에 따뜻한 물을 담아서 누워있는 고양이 옆에 두고 하룻밤만 지켜보면서 기도를 하기로 했다.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이렇게밖에 할 수 없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작은 소리로 야옹야옹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하는 작은 바람을 안고 새벽에 잠이 들었다.
다음날 잠에서 깨자마자 고양이에게 달려갔다.
어제와 같은 자세로 누워있었다.
“야옹아 야옹아”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손을 가까이 가져가 고양이 몸에 손을 댔다.
아.. 딱딱하다..
몸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숨을 끊어진 생명이 이렇게까지 딱딱하게 되는지도 처음 알았고, 처음으로 손을 대봤다.
그날은 만난 지 하루가 된 그 고양이와 이별을 한 날이다.
집 뒷산에 고양이를 묻어주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엔 어제 그 고양이가 누워있던 고양이집과, 오늘 아침에 일어나면 먹이려던 사료와 고양이 화장실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그것들을 한쪽 구석에 치웠다.
아내와 나는 고양이의 죽음에 대한 대화를 어떻게 시작하고 끝내야 할지 몰랐다. 그날은 그렇게 그냥 지나갔다.
그날 밤 생전 처음으로 꿈에 고양이가 나왔다. 별다른 내용 없이 그냥 어제 떠나간 고양이가 내 꿈속에 나타났다.
다음날 아내에게 내 생각을 전했다.
“자기야 우리 고양이 키우자. 꿈에서 어제 그 고양이가 나왔어.”
“그래.”
아내와 난 그렇게 다시 같은 마음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