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출발
첫 직장생활을 3년을 하고, 다른 곳으로 옮기기 전에 잠시 시간을 내어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원래부터 자유로운 영혼이었는데 3년 온종일 안경원에 메어서 가슴에 돌멩이를 하나 얹어놓고 일하는 기분이었다.
남다른 여행을 하고 싶기도 하지만, 첫 해외여행이기에 여행지는 필리핀으로 정했다.
도착 기한을 정해놓지 않고 3달짜리 오픈티켓을 끊었다.
여유되는 돈을 다 환전해서 돈이 떨어지면 한국에 오는 게 나의 계획이었다.
혈기왕성하고 자신감 넘치는 나이였기에 유명한 관광지인 ‘세부’나 ‘보라카이’는 가기 싫었다.
한국인들이 잘 모르는 곳으로 떠나고 싶었다. 구글에서 두마게테라는 곳을 찾았다.
세부와 가깝고, 유명한 거라고는 가톨릭 국가인 필리핀에서 몇 안 되는 유명한 기독교 대학인 ‘실리만 대학교’가 있다고 한다.( 요즘은 다이빙으로 유명해졌다고 한다.)
영어도 많이 부족하고 걱정스러운 여행이지만, 12월 20일경 크리스마스 바로 전이어서 무척이나 들떠있었다.
마닐라 국제공항에서 내려 국내선을 타고 두마케테로 들어가는 일정이라 공항을 두리번거리며 기다리고 있는데 나만 빼고 모든 승객이 공항을 빠져나가는 것이다.
이상한 느낌에 안 되는 영어로 공항직원에게 물어보니 국내선은 여기 없고 공항버스를 타고 이동을 해야 한단다.
공항버스는 또 어디에서 타야 하는지, 어렵사리 찾았지만 이미 공항버스는 떠나버렸고 차로 10분 거리라 택시를 타기로 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택시를 불렀다.
택시가 서질 않는다.
공항 택시는 공항 택시 승강장에서만 서 있고, 그 서있는 택시마저도 그냥 타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나라 고속버스 타듯이 택시 티켓을 발매 창구에서 구매해서 타야 하는 것이었다는 것 아주 나중에 알았다.
하지만 나는 의지의 한국인이기에 한 택시기사를 붙잡고,
도메스틱 도메스틱!!
외쳤고, 그 기사님은 나의 급한 마음을 알았는지 누구보다 빠르게 국내선으로 달려갔다.
다행히 출발 시간 안에 도착해서 뛰는 가슴을 부여잡고 생수 한 병을 사 마시며 국내선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을 기다리는데, 공항 방송에서 긴가민가하게 내 이름이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말도 안 되는 발음으로 말이다. 왜지? 왜지?
미스 떠 장 미스떠ㄹ 장 프롬 코리아!
어? 내 이름 같은데?
일단 지금 두마데케 공항에 동양인은 나 혼자인 게 확실했다.
방송이 나오는 곳으로 가봤더니 공항직원이 어이없다는 듯이 내 비행기 티켓을 내밀었다.
어? 왜 네가 그걸?
바닥에 떨어져 있었어.
정말 고난의 연속이다. 가슴도 답답해지고 집에서 나온 지 하루도 채 안돼서 엄마가 생각났다.
첫 해외여행을 혼자 떠날 생각을 하다니. 생각해 보면 참으로 용감한 청년이었다.
이대로 무사히 도착하면 정말 좋았겠지만 두마케테 공항에서도 역시 사건이 벌어졌다.
무사히 도착해서 캐리어를 들고 공항을 나가려 하는데 공항직원이 뭘 달라고 하면서 짜증을 냈다.
무슨 소린지도 모르겠고 자꾸 큰소리로 소리치니 창피해서 아무 말 안 하고 자리에 앉아 다른 승객들 나갈 때까지 기다렸다.
사람들이 거의 다 빠져나가고 나서야 다시 그 직원에게 다가다 울상인 얼굴로
“김미 마이 캐리어.”
공항에 도착한 지 2시간이 훌쩍 넘은 시간이었다.
그 직원을 나에게 한숨을 쉬며 내 캐리어를 가리키며 소리를 질러댔다. 나도 정말 인내심에 한계가 와서 캐리어를 달라고 소리쳤다.
그땐 스마트폰이 없었던 시절이라 번역 어플 같은 건 있지도 않았다.
그러던 중 내가 한국인인걸 알고 그 지역 한국인 선교사님께 전화를 했나 보다. 얼마가 지났을까?
선교사님이 오셔서 들어보더니 수화물 티켓을 요구하는 것이라 했다.
‘아! 수화물 티켓! 수화물 맡길 때 줬던 게 수화물 티켓이구나! 수화물 티켓이 있어야 수화물을 주는 거구나! 아까 화장실 갔다가 그게 뭔가 싶어서 쓰레기통에 버렸는데.’
결국 그 직원은 아까 마닐라 국내선 공항에서 봤던 똑같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내 캐리어를 열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게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걸 확인해서 맞으면 캐리어를 준다는 뜻인 것 같았다.
아 암쏘… 리.. 레드쓰레빠... 아니 슬리퍼…
무사히(?) 수화물을 찾고 나서 온 몸이 힘이 다 빠졌다.
‘수화물을 그냥 버리고 갈까? ‘
하고 생각했던 내가 정말 창피했다.
일부러 도와주러 와주신 선교사님께도 죄송스러웠다.
선교사님은 안쓰러운 표정으로,
“어떻게 오셨어요?”
“네 혼자 여행이요.” “네!? 혼자요? 힘들면 여기 번호로 전화 주시고요. 기도하러 오세요.^^”
기도하러 가기로 했다.
선교사님은 무척이나 걱정하시며 교회로 돌아가셨다. 정말 이제부터 혼자구나. 겁내지 말고 파이팅해 보자!
선교사님께서 추천해준 근처 호텔에 가서 짐을 풀고 전화부터 찾았다. 집 떠난 지 하루 만에 부모님께 전화를 해서 일어났던 일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나 죽을뻔했어. 비행기 티켓도 잃어버렸었고 수화물 티켓도 잃어버렸었고, 공항에 2 시간 넘게 잡혀있었어.
정말 진지하게 어머니께서 돌아오는 티켓을 알아보신다고 하셨다.
“ 괜찮아. 재밌어서 이야기해주려고 전화한 거야. 남자가 뭐 이 정도로. 잘 놀다가 또 전화할게.”
몇 년이 지난 후에 어머님께 그때 정말 진심이었냐고 여쭤봤다.
“그래, 전화 끊고도 네 외삼촌에게 전화해서 정말 큰일 났다고, 티켓 좀 알아보라고 했다.”
(다음 편에 계속)
이것이 나의 첫 번째 해외여행의 시작이었다. 이 모험 같은 멋진 여행 덕분에 지금의 내가 되었다.
어려운 일이 생겨도 극복할 수 있는 의지가 생겼다.
계획하지 않고 떠나는 여행은 더욱 큰 즐거움을 우리에게 준다.
계획에 맞춰진 여행은 기억에 잘 남지도 않고 오히려 좌충우돌 예상치 못한 상황들이 덮쳐왔던 여행이 기억에 오래 남는다.
이 오래된 여행의 기억도 아직까지 생생한 이유다.
그리고 우리 인생도 여행과 마찬가지이다.
힘든 상황이 나에게 닥쳐와도, 견디어 지나고 나면 좋은 추억으로 남고 나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