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brunch.co.kr/@mangoamigo/40
뜻하지 않은 유산으로 인해 슬픔에 빠져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우린 해야 할 일이 있었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했다.
다행스럽게도 그 쳇바퀴 같은 일상이, 바빠서 힘들다고 한숨 쉬었던 그 일상이 우리의 슬픔을 조금씩 닦아주었다. 얼마가 지났을까 지난날의 슬픔이 무뎌지기 시작할 때 아주 기쁜 소식이 찾아왔다.
임신 테스트기에서 다시 두 줄의 빨간 선을 확인했다.
그때 깜깜한 하늘에는 밝고 둥근달이 떠있었다.
“이 아이의 태명은 보름이야.”
다시 산부인과에 방문해서 아이가 생긴 것을 확인하고 아내는 곧바로 직장을 그만뒀다.
학교강의와 공부는 어쩔 수 없지만, 다니던 직장에는 방사선을 자주 사용하기 때문에 고민하지 않고 그만두었다.
지난번 계류유산은 방사선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하지만 우린 할 수 있을 만큼 모든 걸 조심하기로 했다.
“무조건 조심해.”
다행히도 아이는 산달이 될 때까지 별다른 문제없이 잘 자라고 있었다.
드디어 출산예정일이 다가오던 어느 날 새벽 3시!
“오빠 애가 나올 것 같아!”
“뭐? 알았어! 병원 가자 빨리!”
병원에 도착하니 선생님은 잘 맞춰서 왔다며 병실로 안내했다.
“많이 아파?”
“아직 괜찮아.”
“그런데 오빠. 보름이 태어났는데 오빠처럼 새까맣게 나오면 어떻게 하지? 그리고 오빠처럼 콧구멍 큰 것도 싫은데. 초음파 사진 보면 코가 딱 오빠 코야.”
“아 뭐래. 크크 아직 안 아프구먼. 너랑 나랑 둘 다 시력 안 좋으니 눈은 100프로고요. 교정하셨죠? 나도 교정했고. 치아도 100프로. 크크.. 너 보름이 키 작으면 다 네 책임!”
시답잖은 이야기로 킥킥거리며 보름이를 충분히 궁금해했다. 마치 선물상자를 막 열기 전 그런 기분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점심때도 지나고 오후 4시가 넘어가는데도 아이가 나올 기미를 안 보였다.
거기에 배가 너무 고파서 죽을 지경이었다. 너무 어지러워서 그만 아내에게 배고프다고 말해버렸다.
아내는 한숨을 푹 쉬며..
“나가서 김밥이라도 사 먹어 그럼.”
“진짜로 금방 사 올게.”
병원 앞에 있는 분식집에서 김밥을 주문하고 기다리는데 떡볶이가 너무 맛있어 보여서 그것도 1인분 포장해서 병실로 돌아왔다. 병실에서는 음식물을 먹으면 안 된다고 해서 병원 옥상에서 떡볶이를 몇 개 집어먹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장모님이다.
“장서방! 애 나올라고 한단다! 빨리 와!”
입에 묻은 떡볶이 소스도 닦지 못하고 병실로 뛰어갔다. 그런데 병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분만실이다!
떡볶이 양념을 입에 묻히고 분만실로 뛰어들어가 탯줄을 잘랐다.
당연하겠지만 아내는 떡볶이 이야기를 지금도 가끔 한다.
“그렇게 배가 고팠어? 어이구. 애 낳은 나도 아무것도 못 먹고 있었는데…”
“조금만 참을걸.. 그런데 진짜 배고팠단 말이야. ㅜㅜ”
아내는 처음 아이를 안고 나서 기쁨의 표정을 지으면서 한마디를 했다.
“휴우.. 오빠처럼 콧구멍도 크고 새까맣네..”
콧구멍 얘기 좀 그만해…
지금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어서 말을 안 하지만 나중에 키 작으면 다 네 책임이다!
사실은 그날 건강하기만 했으면 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