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식당의 미담
세 가족이 된 지금도 그렇지만,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여행을 참 자주 즐겼다. 그래서 여행지에서 생긴 에피소드가 꽤 많은데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 아내는 덜렁이다. 아니, 덜렁이였다.(지금은 많이 나아졌다.)
물론 나도 상대적으로 꼼꼼하지 못한 성격이다. 솔직히 내가 나이가 7살이나 많아 조금 더 꼼꼼한 편이라고 스스로 믿고 있을 뿐이다.
둘 다 그러하니 여행 갈 때 챙겨야 할 물건을 빠뜨리는 경우는 아주 일반적인 일이고, 현지에서 산 지인들 선물을 비행기에 내리고 온 일도 있다.
하지만 몇 살 많은 오빠로서, 남편으로서 덜렁거려서 생긴 일들을 해결하려는 책임감은 있다. 거기서 거기지만, 내가 조금 더 낫다는 말이다.
2014년 오사카로 아내와 난 여행을 떠났다. 그때 오사카는 처음 방문하는 여행지였다. 처음 가는 곳이기도 하고 일본어도 못하기 때문에 떠나기 전 전체적인 일정을 꼼꼼하게 계획했다.
대전청사터미널에서 인천공항행 리무진 버스를 타고 공항에 도착해 아주 무사히 비행기에 탑승했다. 여기서 아까 잠깐 언급했던 덜렁거림은 처음으로 우리에게 인사를 했다. 참기름과 고추장을 담은 봉지를 비행기에 놓고 내렸다. 뭐 참기름, 고추장쯤이야..
간사이공항에 도착을 하니 입국심사를 거쳐 플랫폼에서 나오면 혼란의 연속이다. 하지만 이럴 때는 방법이 있다. 같은 비행기에서 내린 우리나라 관광객을 따라가는 것이다. ^^ 따라가다 보면 빨간색표지의 난카이선 타고 텐가차야역에서 환승을 해서 대다수의 관광객이 숙소로 선택하는 신사이바시, 닛폰바시역으로 향한다.
닛폰바시 근처에 숙소를 잡은 우리는 짐을 풀고 신나게 여행을 즐겼다.
돈키호테나 드럭스토어에서 남들이 다 사는 양배추위장약과 동전파스, 시세이도 폼클렌징을 주워 담고, 도큐핸즈에 가서 필기구도 신나게 구경했다.
오사카성도 가고, 온천도 하고, 햅파이브 관람차도 타고, 문이 자동으로 열리던 일본택시도 탔다.
생각보다 맛이 별로였던 오사카 타코야키, 김치를 공짜로 제공해 두번이나 방문했던 킨류라멘, 북극성오므라이스, 쿠시카츠, 가게이름은 기억이 안 나는 2층 오코노미야끼집.
여행을 떠나기 하루전날 밤에는 대망의 일본 불고기, 야키니쿠로 유종의 미를 거두기로 했다. 한국에서 검색을 안 하고 온 턱에 어디를 갈까 하고 두리번거리다가 도톤보리 번화가에서 검은 소가 달려있는 입체간판을 발견했다.
지금은 어떨지 몰라도 그때는 검색해도 정보가 별로 없는 그냥 그런 고깃집이었던 것 같다. 나중에 검색해 보니 가게 이름은 <쇼와 타이슈호르몬>이라고 했다. 하지만 맛도 좋고, 분위기도 최고였다. 주인아저씨와 아르바이트생들도 무척이나 친절했다. 마지막날이기도 하고 기분도 좋아서 맥주도 많이 마시고, 기분 좋게 호텔로 들어갔다. 꿀잠을 자고 상쾌하게 일어난 다음날 아침 슬슬 집에 갈 준비를 시작했다.
오빠 어쩌지? 핸드폰이 안 보여..
아내의 핸드폰이 없다.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어제 그 고깃집에 두고 온 것 같다. 몇 시간 후면 공항으로 떠나야 할 시간이었다. 그 식당은 밤늦게까지 영업하는 곳이라 지금 이 시간이 문을 열었을 가능성도 거의 없었다.
에이 모르겠다. 일단 그 식당으로 가보자.
도착해 보니 거기는 물론 근처 식당들도 연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게 번호로 전화를 했다.
“뚜르르르 뚜르르르. ”
“모시모시“
“모시모시…excuse me.. I had dinner there yesterday… I think l lost my cell phone there… Do you have my cell phone that I lost?”
“Yes! I have! Cell phone! Do you lost?”
“Wow. Thank you. You have it!
전화는 핸드폰으로 연결되어 있었고 다행히 주인아저씨는 우리 핸드폰을 보관하고 있던 것이다. 그런데 비행기 시간 때문에 가게 오픈시간까지 기다릴 수 없는 상황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상황설명을 대충 하고, 항공우편으로 보내달라고 부탁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오늘 떠난다고? 음.. 그럼 조금만 기다려. 핸드폰이 가게 안에 있으니 내가 지금 거기로 갈게! “ << 대충 이런 영어였음>>
가게 주인아저씨가 지금 이곳으로 온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고마울 수가.. 조금 기다리니 정말 그분은 가게 문을 열고 안에 있던 아내의 핸드폰을 건네주었다. 사례를 하고 싶었다는 그분은 괜찮다며 비행기 늦겠다고 빨리 가라고만 하셨다. 우린 너무 고마워서 다음에 오사카에 또 오게 되면 꼭 다시 들르겠다고 약속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 이후에 오사카를 두어 번 더 방문을 했었는데, 우리를 알아보고 <lost cell phone guys>라고 불렀다. 정말 일본에서의 좋은 추억이다.
가끔 일본여행 중에 혐한을 당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얼마 전에도 후쿠오카에서 와사비 테러를 당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그 초밥집은 폐업을 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주인이 바뀌었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즐거운 여행 중에 그런 경험을 한다는 것은 정말 끔찍한 일이다. 하지만 나처럼 일본여행에 대해 좋은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혐한의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항상 핸드폰에 대한 기억과 겹쳐져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