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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고아미고 Mar 16. 2023

평일에 쉬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다.

스빽트클,스위리,뷰리풜,스빼셜한 평일 휴무…



오늘은 쉬는 날이다.


3월이 시작되고, 일주일에 한 번은 정기적으로 평일에 쉰다.

아내가 이번 학기부터 일주일에 한 번 밤늦게 퇴근하기 때문이다.

아내가 집에 오면 9시가 넘기 때문에 그날은 내가 딸아이 저녁이나 샤워를 맡아서 하기로 했다.

안경사일을 15년이 넘게 하면서 사실 주말보다는 평일에 쉬는 날이 많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초년생 때는  주말에 못 쉬는 게 정말 싫었다.

평일에 쉬어봤자 할 일도 없고, 말 그대로 <평일>이기 때문에 쉬어도 쉬는 기분이 안 났다.

전날 퇴근해서 어렵게 잡은 술자리에 가서 진탕 술에 취하고 다음날 늦게 일어나 빈둥대는 일이 허다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싫지만은 않다.





평일 쉬는 날에는 평상시보다 30분 정도 늦게 눈을 뜨고 어슬렁어슬렁 아무 옷이나 집어든다.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헤어지면서 딸과 오늘 일찍 만나자는 약속을 한다.

딸애에게 아빠가 쉬는 날은 다이소에 가서 스티커를 사는 날이다. 물론 그다음 날은 온 집안에 붙여놓은 스티커를 떼는 날이 되겠지.

아이가 유치원에 가고 나면 우리 동네 자랑인 도서관에 간다. 웅장하다. 시설 또한 호텔급이다.


호텔급 도서관

 

평일 오전 한가한 도서관을 한바탕 휘젓고 나와 간단한 점심을 먹고 또 하나의 자랑인 <투썸 플레이스>에 간다.

널찍한 규모, 매장 안에서 줄넘기를 해도 참견하지 않을 것 같은 직원들.

여유롭게 책을 읽거나 글을 끄적이기에는 최적의 장소이다.

그렇게 오후도 금방 지나간다.

평일에 쉬어야 느낄 수 있는 여유다.





오늘은 머리가 지저분해 커트를 하러 미용실에 갔다.

네**에 들어가 예약을 하려는데, 항상 머리를 해주시는 디자이너선생님의 예약이 되지 않는다.

이 분도 평일의 휴무를 즐기러 가셨나 보다. 다음번 휴무 때 갈까도 생각했지만, 일정을 보니 다음 주도 안되고 기다리다가는 머털이가 될 것 같다. (혹시 머털이가 뭔지 모르시는 들은 댓글 주세요.)

고민을 하면서 스크롤을 내려 보니 못 보던 디자이너선생님이 있다. 새로 오셨나 보다. 시간이 딱 맞아 그냥 그 디자이너선생님을 선택해 예약했다.

40대 남자에게는 상당한 각오가 필요한 일이다. 내 머리스타일에 대해 또 설명을 해야 하고, 내 스타일을 유지시켜 줄 수 있는 실력을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냥 이 나이에는 <처음>이 다 어색하다.


 “머리 어떻게 해드릴까요?”


“네. 안녕하세요. 너무 짧게 말고요. 좀 다듬어주세요. 저 그리고, 오늘 그 실장님은 쉬운 날이신가 봐요. 항상 그분에게 머리를 하는데..”


“네 오늘 쉬는 날이세요. “


“아.. 네.. 선생님 그런데 제가 옆을 너무 짧게 자르는 걸 안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너무 길면.. 그.. 요즘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구레나룻 있는 부분에 흰머리가 자꾸 나고 그러네요.”


“네 원래 남자분들은 흰머리가 그 부분부터 나더라고요. 그럼 소프트투블록으로 잘라드릴게요.”


“네 잘 모르지만 알아서 해주세요. 하하하..”


옆머리부터 다듬기 시작했다. 그런데 항상 잘라주던 선생님과는 느낌이 많이 다르다. (당연히 다르겠지..)

이 분은 머리카락을 자를 때 1cm 이상은 자르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길이보다 길게 자른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한 번에 잘라도 될 것을 두 번 세 번, 조금씩 여러 번 자른다.

그전 선생님은 2~3cm씩 과감하게 잘랐는데 이 선생님은 한 부분을 아주 오랫동안 자르는 것이다.

고개를 들어 살짝 거울을 봤다.

선생님의 눈에서는 엄청한 집중력이 보였다.  설마 숙련되지 않은.. 그런 기술적인 문제가 있는 분이신 건가?

어느새 난 꼭 쥔 주먹에 땀이 나기 시작했다.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가만히 눈을 감는 것이었다.

‘그냥 보지 말자. 아마 선생님이 부담을 느끼실 거야. 어차피 이미 늦었어.‘

보통 20~30분이면 끝나는데, 슬쩍 시계를 보니 거의 1시간이 다 되어간다.


“수고하셨습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거울을 봤다.


‘아닛! 이럴 수가!! 저번 머리보다 더 낫다!‘


내가 원했던 것처럼….

<길지는 않지만 짧지도 않은데, 구레나룻 또한 두껍지도 얇지도 않은 적당한 라인, 가르마의 위치를 고려한 양쪽 윗머리와 앞머리의 길이, 마지막으로 뒷머리 밑부분을 손으로 쓸어 올리면 느껴지는 까칠함의 미세한 정도>

모든 것이 완벽했다.



그렇게 또 하나의 고민이 생겼다.
같은 미용실에서 디자이너 선생님을 아주 자연스럽고, 아무도 기분 안 나쁘게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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