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하나.
놀란 마음에 고개를 숙이고 잠시 들여다보았다.
빨간색 물감이 흩어져 있는 걸까,라는 생각도 잠시. 이내 그럴 가능성은 높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술실은 교실에서 꽤나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액체의 외양이 꽤나 끈적해 보였다. 마음이 심란해졌지만, 굳이 자세히 알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몸도 마음도 지치는 오후 시간이었다.
평소와 다를 것 없던 어느 날이었고, 나는 수업을 들어가기 위해 노트북을 품에 안은 채 복도를 거쳐가는 길이었다.
뒤숭숭해진 마음을 가라앉히려 애쓰며 복도를 지나 교실로 들어섰다.
아이들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쉬는 시간의 역동적인 기운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교실에 별다른 이상 기운 같은 건 느껴지지 않았다. 군데군데 약간의 수상쩍은 표정과 수군거림이 느껴지는 듯도 했으나, 중학교 교실에서 그리 낯선 풍경은 아니었다. 내 마음이 일으킨 착각 같은 것일는지도 몰랐다.
영어부장이 노트북을 교실 티브이에 연결하는 사이, 나는 우리가 나갈 그날의 진도를 확인했다.
그때였다. 교실 중간쯤에 앉아있던 한 아이가 불현듯 내게 질문을 던졌다.
"선생님, 옆 반에 무슨 일 있었는지 아세요?"
말하는 뉘앙스로 보아 아이는 이미 '어떤 사건'의 전모를 알고 있는 듯했다.
내가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확인한 아이가 사건의 자초지종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교실 이곳저곳에서 각종 목격담들이 터져 나왔다.
옆 반에서 일어났다는 사건의 대략적인 전말은 이러했다.
옆반의 A와 B가 사소한 문제로 시비가 붙었다.
한동안 거친 말이 오고 가다, 분노를 참지 못한 A가 필통 속에 들어있던 커터칼을 꺼내 들어 B를 위협했다.
그래도 B가 굽힐 기미를 보이지 않자, 급기야 A가 커터칼로 B의 팔을 그었다.
B의 팔은 금세 피로 뒤덮였으며, B는 급히 보건실로 옮겨졌다.
그러니까, 복도에 흩뿌려져 있던 붉은 방울들은 B의 핏자국이었던 것이다. 사건이 발생한 지 오래지 않아 채 수습이 되지 못한 복도에, 끔찍한 흔적들이 그대로 남겨져 있는 상태였던 것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잠시 책을 보고 있으라고 말한 뒤, 복도 위 붉은 자국들이 더 굳어버리기 전에 물걸레로 빡빡 훔쳐냈다.
다행히 다친 아이의 (물리적) 상처는 생각보다 깊지 않았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가해자와 피해자로 갈린 아이들.
가해자의 부모와 피해자의 부모로 나뉜 어른들 간의 싸움으로 번져가던 상황.
그리고 학교를 향한 분노와 담임교사에게로 날아든 비난과 살벌한 공격...
사실, 학교에서 - 심지어 학교 밖에서- 학생들에게 발생한 모든 일에 관해 담임교사에게로 비난의 화살이 쏠리는 건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그러나 동료교사로서 내가 도무지 납득하기 힘들었던 건, 그 상황이 결코 담임교사의 잘못으로 일어난 것이 아님에도, 상식적인 사람들이라면 그 사실을 모를 수 없었음에도, 마치 희생양을 찾듯 학부모가, 학교의 관리자란 인간들이 담임교사 한 명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상황을 극단적으로 몰아간 점이었다.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음악 담당이었던 담임교사는 이웃 학교에서 '순회교사'로 근무 중이었다.
순회 근무제는, 해당과목 담당교사가 없거나 부족한 이웃 학교의 수업을 보충해 주기 위해 타학교 교사가 대신 수업지원을 나가는 것이다.
문제는, 순회를 나갔던 교사가 1학년 담임을 맡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사건은, 하필이면 그 교사가 순회근무로 학교를 비운 잠깐 사이 담당 학급에서 발생했다.
피해 학생의 학부모는 가해 학생의 학부모에게보다 담임교사를 향해 더 날을 세우고 공격적인 언행을 서슴지 않았다. 그들은, 담임교사를 상대로 무자비한 갑질을 하는 것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어 보였다.
당시는 '학생인권조례'가 실시되기 전이었다.
요즘 언론에서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의 원흉이라며, 집권당의 논조를 그대로 끌어와 한창 시끄럽게 떠들어대고 있는 그 조례 말이다.
피해자 부모는 사건과 관련해 몇 번이고 학교를 방문했는데, 올 때마다 점점 더 발언 수위나 행동이 과격해졌다. 조직원을 연상시킬 정도의 험악한 표정과 외모의 아이 아버지는 보는 것만으로도 주눅이 들 정도였다.
학교로 쳐들어오다시피 나타난 학부모는 아이의 담임교사에게 고레고레 소리 지르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들 앞에서 담임교사가 무릎 꿇고 사죄하기를 강요하기까지 했다.
그들의 태도를 납득할 수 없었지만, 더 기가 찼던 건 당시 교장과 교감의 태도였다.
평소 교사들의 관리자임을, 관리자로서의 권리를 드러내고 강조하던 그들은 막상 본인들이 책임지고 나서야 할 상황에서는 발을 뺐다. 학부모들 앞으로 담임교사의 등을 떠밀고 자신들은 뒤로 숨었다. 마치 그 모든 것이 오롯이 담임교사 한 사람의 책임이기라도 한 것처럼.
미혼의 젊은 여교사였던 담임교사는, 점점 격해지는 상황에 정신적으로 몹시 힘들어했다. 밀려드는 자괴감에 괴로워했고, 하루하루가 지옥 같다고 말했다.
그 곁에서 위로 외에는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던 일개 ‘동료 (평)교사'들은, 점점 악화되어 가는 상황을 속절없이 지켜보며 함께 깊은 무력감과 자괴감에 빠져들었다. 아이들이 좋아서, 가르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싶어 교단에 뛰어들었던 교사들의 눈빛에 회환과 두려움이 늘어갔다.
그리고 끝내, 젊은 담임교사는 병가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학교의 교사들이 점점 불행해지고 있다고 한다. '교사 탈출은 지능 순'이라는 자조 섞인 말이 나올 정도로.
교사들을 상대로 갑질하는 학부모들이 늘어간다. 이러한 상황은 경제적으로 부유한, 소위 '상류층' 가정이 많은 지역일수록 더 두드러지는 경향을 보이는 듯하다.
아이들이, 교사들을 무시하는 학부모에게서 과연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행복하지 않은 교사들이 제대로 아이들을 품어줄 수 있을까?
그때의 내 동료는 그래도, 목숨은 잃지 않았으니 다행이라 여겨야 하는 걸까? 지금 우리의 교육 현장이 제시할 나라의 미래란 보지 않아도 뻔한 것이 아닌가…
최근 '서이초 사건' 관련 뉴스를 보며 씁쓸하고도 서글픈 마음이 쉬이 가라앉지 않는다.
오래전 기억들이 되살아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