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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뉴 May 19. 2023

변두리 주민센터의 요상한 인물들

Part II.

- part I 에 이어

그곳은 흔히 말하는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이 제대로 적용되지 않는, 요상한 인물들의 집합소 내지는 ‘유배지’와도 같았다.

이따금 민원을 보러 온 주민의 입장에서는, 매우 바쁜 시간에 오지 않은 이상, 그곳이 어쩌면 평화로워 보이는 곳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여유롭게 앉아 있다 '등본 O통이요~'라는 민원인의 요청을 들으면 그제야 굼뜬 손을 움직여 겨우 서류 몇 장 건네는 '팔자 괜찮은 철밥통들'이 있는 곳으로 보였을는지도.

그러나 민원대 뒤 좁은 공간에서는 끊임없이 신경전과 암투와 처절한 세력 다툼으로 보이지 않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누군가는 타인에게 부당하게 상처를 주며 회심의 미소를 짓고, 또 다른 누군가는 회생이 불가능할 정도의 상처를 입고 좌절감과 자괴감에 빠져들기도 하는.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여기에서 언급된 인물들은 다른 주민센터에서 민원인들과 문제가 있었거나, 특이한(?) 성격과 업무 행태로 인해 상대적으로 민원인이나 업무가 적다고 여겨지는 이곳으로 인사조치된 것이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그들은 그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동안 자신이 수고를 많이 했고, 그러한 사실에 대해 지자체가 인정하고 배려한 덕분에 이곳에 발령받은 것이라 확신하고 있는 듯했다. - 하지만 회사 차원에서의 '배려' 같은 건 망상일 뿐, 회사는 결코 직원들을 배려해 주는 곳이 아니라는 걸 웬만한 직장인들은 다 알고 있질 않나 -

그럼에도 그들 각자가 개인으로서만 활약(?)했다면 상황이 그렇게까지 심각해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허나 그들은 각기 작은 섬으로 남아있지 않았고, 서로에게 다리를 뻗어 하나로 연합한 거대한 섬이 되었다. '삼각 내지는 사각 편대'를 이루어 서로를 돕고 - 다른 직원을 괴롭히는 데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힘을 보탰다 - 의지하며 주민센터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좌지우지했다. 그리고 그러한 분위기는 하루하루를 버텨내며 직장생활에 임하고 있는 타 직원들을 더욱더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세 번째 인물 : 여/ 복지민원 담당/ 30대 중반/ 기생충의 습성을 타고남


이 인물을 보면서 나는 종종 '기생'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 이후 '기생'으로 지칭 -, '사람이 저런 방식으로도 살아가고 살아남을 수 있는 거구나' 감탄하곤 했다.

'기생'은 말 그대로 사회생활을 할 때 스스로의 힘으로 자생하지 못하는 인간 유형이었다. 그래서인지 인사이동으로 새로운 직원이 오면 우선 그 사람을 '간 보는' 데에 공을 들였다.

'기생'은, 그러한 '개별적 의식'을 통해서 상대방이 힘이 있거나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만한 인물이라는 판단이 서면 그 시점부터 그(녀)를 대하는 태도가 급격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해당 직원에게 착 달라붙어 온갖 친한 척과 갖은 아양을 떠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거의 심부름꾼에 가까운 행보를 보였다. '기생'은 대인 관계에서 '평등함 보다는 수직적 상하관계'에 익숙해 보였고, 이런 불평등한 구조의 하층에 위치하는 것을 기꺼이 자처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자신이 한동안 기생할 든든한 대상을 찾아 안정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문제는, '기생'이 호의를 표하는 대상이 대체로 성격이 드세고 편 가르기를 좋아하는 '소패'같은 인물이었다는 사실이다. 이런 요상한 인물들과 합세해 분위기가 부정적으로 형성되도록 적극적으로 일조한 인물이 바로 '기생'이었는데, 특히 아래에 언급된 네 번째 인물에게 빌붙어 주민센터 내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려 했다. 끊임없이 더티(dirty)한 말들을 양산하고 퍼 나르는 가운데.



네 번째 인물 : 여/ 행정사무 담당/ 30대 후반 / 심각한 분노조절 장애를 탑재함


내가 보기에 여기에 언급되는 네 인물 중 가장 심각한 인간 유형이다. - 이하 '분노'라고 지칭 -

소시오 패스는 눈치 있는 사람이라면 어렵지 않게 파악이 가능한데, 이 인물은 짧지 않은 시간 지근에서 부딪혀 보지 않으면 간파하기가 쉽지 않다. 평소에는 꽤 차분하고 어찌 보면 다소 기품(?) 있어 보이기까지 한 말투로 직원들을 상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찰력이 좋은 사람이라면 언뜻언뜻 스쳐 지나가는 분노의 '돌아이 기질'을 포착할 수 있다.



'분노'는 수직적 구조의 꼭대기에서 (행동대원의 역할을 하는) 요상한 인물들을 돕거나 제어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다.  

요상한 인물들과 불만 섞인 하소연들 - 주로 타인에 관한 전방위적 비방인 것으로 보인다 - 을 줄기차게 (주로 회사 메신저를 통해) 나눴고, 그에 대처하기 위한 행동들을 지시하거나 때로는 직접 나서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분노', '기생'과 '소패'의 메신저는 업무시간 중 조용한 날이 드물었다. 조금만 귀를 기울이면 그들이 끊임없이 생산해 내는 '타닥타다닥' 거리는 키보드의 소음이 업무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단체적 행동'으로 발생하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분노'는 '극단적 분노 버튼'을 탑재하고 있었는데, 그 버튼은 잊을만하면 한 번씩 작동해 '발작적 순간'을 유발하고는 했다. 난감한 점은, 그 타이밍을 미리 알아차리기가 몹시도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돌아버리는 시기'가 도래하면 평소 다소 우아했던 자태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분노는 눈을 까뒤집으며 그야말로 '미친 그 무엇'으로 돌변했다.

그런데 그 온도차가 몹시도 극심하여 처음으로 '분노'의 그러한 모습을 목격한 직원들은 '방금 전 내가 무엇을 본 것인가?' 싶을 정도로 당황스러워했다. 하지만 본래의 성질은 결코 감출 수가 없는 것인지, 1년 가까운 시간을 함께 하며 '분노'는 히스테리를 부리고, 민원인들과 맞짱을 뜨고, 동료 직원들을 무시하고 괴롭히며 난장을 벌이다 구청과 시청을 통한 민원과 경고를 받기에 이르렀고, 결국 타 기관으로 인사조치 되었다.




이들에게는 가장 큰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약한 자 앞에서 (매우) 강하고 강한 자 앞에서 약하다'는 거였다. 그러므로 사회생활을 하며 이 인물들과 유사해 보이는 이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결코 그들에게 '착한 사람'으로 인지되어서는 안 된다. 최소한 밟히고도 그냥 참고 있을 사람은 아니라는 걸 보여줄 필요가 있다. 그래야 상처를 덜 받고, 덜 힘들게 직장생활을 할 수 있으리니.



그들이 바뀔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자신의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오히려 자신들이 꽤 괜찮은 사람이라 여기며 심지어는 천연덕스럽게, '이 바닥에는 참 이상한 사람들이 많으니 주의해야 한다'라는 말로 동료들을 경악에 빠뜨리기도 한다.

물론 그들에게도 한 가지 칭찬할 점은 있다.  서로를 발 벗고 나서 기꺼이 돕는다는 것. 그렇게 함으로써 사태를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적극적으로 이끌어간다는 것이다. 원하는 지점이란 것이 대개는 회사 내 업무나 분위기 형성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이지만.



역시 세상은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사실 주민센터에서 근무해 보기 전까지는 나도 이곳이 꽤 평화롭고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곳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이곳의 속내를 모르는 무지한 한 사람의 착각일 뿐이었다.

앞으로 세상살이를 더 잘 해내기 위해서는 보이는 너머의 이면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되새겨본다. 그리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어본다.

무사히 이곳을 빠져나왔음에, 끝까지 정신 줄 부여잡고 잘 버텨냈음에, 그리하여 한결 느긋해진 마음으로 이렇게 돌이켜 글로 남길 수 있음에 만족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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