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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뉴 May 15. 2023

변두리 주민센터의 요상한 인물들

Part I.

10여 년의 교직생활을 접고 지자체 공무원이 된 후 내가 처음으로 발령받은 곳은 민원이 다소 한가한 편이라고 소문난, 변두리에 위치한 주민센터였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 물론 학교도 예외가 아니었다 - 어딜 가나 소위 '또라이'라고 불리는 요상한 인물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대체로는 그 인원이 다수가 아닌 소수에 속하기 때문에, 한쪽 눈 감고 그들의 말을 한 귀로 흘려들으며 가능한 섞이지 않고 버틸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그런데 이 주민센터는 도무지 그럴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왜냐면 그곳은 '또라이'들이 결코 소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7급에서 9급까지의 말단 직원들 중 거의 40프로에 육박하는 인물이 '각기 개성 있는 방식으로 또라이'였다. 그것도 몹시 부정적인 방향으로.

처음 이 사실을 파악하지 못했던 나는, 그들이 이상하다고 말하기엔 그 수가 적지 않아, 혹시 내가 이상한 건 아닌지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의심하고 고민했더랬다. 그리고 그러한 시간은 나 자신에게 일종의 '고문'과도 같았다. 그러나 25년 넘게 이 바닥에 몸담고 있었던 분이, '이곳만큼 이상한 곳은 여태 보지 못했다!'라고 개탄하는 걸 보고 나서야 방황의 시간을 속 시원하게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래서이다. 이 글을 쓰게 된 이유가. 혹여라도 나와 비슷한 상황을 겪거나 유사한 인물들과 마주치는 독자들이 있다면 결코 당신이 잘못된 게 아니라고, 그러니 스스로를 자책하지 말고 그곳에서 부디 잘 버티기를 바란다고 말해주고 싶다. 

여기에서 내가 언급하려는 인물은 총 4명이다. 기껏해야 10명 남짓한 변두리 작은 주민센터였으니 그들이 결코 적은 비율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 인물 : 남/ 행정민원 담당/ 30대 후반 / 주정뱅이 기질이 다분함


첫 번째 요주의 인물은 내 선임이었다.

일터에서 시달리고 집으로 돌아오면 나는 작정하고 짝꿍에게 하소연을 쏟아내곤 했었는데, 그때 '그 인간'을 지칭하던 호칭이 '주정뱅이'였다. 그 네 글자가 어찌도 그리 입에 착착 감기던지!

내가 그를 '주정뱅이'라고 부른 이유는 실제로 그가 술을 마시고 주민센터에서 소소하게(?) 주정을 부렸기 때문이다. 그는 주로 일요일 밤부터 월요일 새벽에 걸쳐 술을 진탕 마시고는, 술과 안주가 뒤섞인 역한 냄새를 풍기며 월요일 오후에 느지막이 출근을 하는 경우가 잦았다. 금요일이나 토요일 밤을 놔두고 굳이 일요일 밤에 말이다.

그러고는 기분이 별로 좋지 않거나 업무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동료나 상사를 상대로 마구잡이로 짜증을 부렸고, 어떤 때는 출근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핑계로 - 전날 술통에 빠져 있었는데 컨디션이 좋을리가 있겠나 - 귀가하기도 했다. 월요일을 앞두고 왜 그리 술을 퍼 마시는가 싶었는데, 그것이 나름 본인만의 월요병 타계책이었던 듯하다. 그 타계책이라는 것이 타인에게 몹시도 민폐를 끼치는 방식이라 문제였지만.



그래도 다행히 나는 새벽에 걸려오는 그의 전화를 받은 적은 없었는데, 동료 직원들 중에는 술이 덜 깬 그에게서 불쑥 걸려오는 '새벽의 전화'로 인해 정신적 피해를 호소하는 이도 있었다. - 전화 내용이라는 것이 주로 '오늘 나는 출근을 못 한다' 같은 류의, 전혀 긴급하지 않은, 새벽잠을 설치면서까지 듣기에는 황당무계한 것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 한 가지 어이없었던 점은, 그렇게 주중에 결근을 밥 먹듯이 하면서도 주말에는 '초과 수당'을 신청하고 열심히 출근하곤 했다는 것이다.



업무인수인계 기간 그에게서 반복적으로 들었던 말이, '원래 이 바닥은 업무인수인계를 해주지 않는다. 나처럼 이렇게 업무를 알려주는, 괜찮은 사람도 없다.'는 거였다. 이 말은 내게 상당히 위협적으로 들렸다. 왜냐면 사실 그가 딱히 친절하게 내게 알려주는 것이 없었는데, 내가 스스로 파악해야 할 업무는 끝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 정도의 인간이 '괜찮은 전임자'로 칭해질 수 있는 바닥이라면 내가 과연 무사히 살아갈 수 있는 곳인지 나로서는 심각하게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꽤 괜찮은 직업이라 여겨지는 교사를 그만두고 뒤늦은 나이에 새로 시작하게 된 공무원으로서 내 선택에 대한 의구심과 불안감까지 동반해.

다행스럽게도 그의 말은 그야말로 '주정뱅이의 주사'에 불과한 것으로 추후 밝혀졌다. 하지만 당시에 내가 그의 말을 어느 정도 믿었던 이유는, 제2, 제3의 요상한 인물들이 그의 곁에서 - 거의 협업 수준으로(이 점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언급하겠다) - 장단을 맞춰주고 있었던 탓이다. 내가 미처 그들을 제대로 파악하기도 전에 말이다.



두 번째 인물 : 여/ 행정민원 담당/ 20대 후반 / 소시오패스 기질이 다분함


인구 비율로 따졌을 때 대략 우리 주변의 25명 중 1명은 소시오패스 기질을 타고난다고 한다.

그들의 공통된 특징은,

공감능력이 현저히 떨어지고/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며/ 심각한 내로남불의 태도를 보이면서/ 타인의 정신을 지배하여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을 끊임없이 만들려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의 자존감을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요즘 계속 회자되고 있는 '가스라이팅'을 적극 활용하려 든다. 이를 통해, 타인을 깎아내려 그들이 부지불식 간에 스스로를 형편없는 사람으로 인식하게 만들어 자신의 말을 따르고 그대로 행동하게 만들려는 욕구가 강하다.



이곳 주민센터에도 여기에 부합하는 인물이 하나 있었다. 이 인물은, 내가 위에서 언급한 특성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으면서, 더하기, 타인에 관한 끊임없는 험담과 사람들을 '니 편 내 편'으로 나눠 갈라 치기 하는 데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특히 성격이 유순하거나 약해 보이는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을 즐기는 듯했다. 내가 이곳에 오기 전 이 두 번째 인물 - 이후 '소패'로 지칭하겠다 - 로 인해 누군가는 '병가'를 쓰고 들어가고 또 다른 누군가는 '심각한 고충을 토로'하여 다른 곳으로 전출되었다고 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소패는 민원대에 앉아 느긋하게, 주로 자신을 돋보이게 만들어 줄 화려한 옷 따위의, 인터넷 쇼핑을 즐긴다. 때때로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고 심지어 뜨개질을 하고 있기도, 중간에 커피숍에서 친구를 만나고 오기도 한다. 그렇지만 늘 주변을 매서운 눈으로 관찰한다. 이유는 자신에게 만족감을 안겨 줄, 괴롭힐 먹잇감을 찾기 위해서다. 민원대의 누군가가 재빠르게 민원 응대를 하지 못하거나 조그마한 실수라도 할라치면 소패는 마음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해당 직원을 '부지런히 일하지 않는다'라고 면박 주거나 '일을 못하는 무능력자'라는 인식을 심어주고자 끊임없이 부정적인 말들을 내뱉는다. 그런데 이런 상황은 한 발짝 뒤에 물러서 있는 사람들에게는 잘 보이지 않는다. 왜냐면 소패는 크게 티 나지 않게 이러한 상황을 만들어가는 데 능숙하기 때문이다.

또한 소패는 민원인 중에 조금이라도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인물이 다녀가면 회사 메신저로 동료들에게 온갖 비속어가 섞인 메시지를 미친 듯이 날리곤 했다. 또한 그녀는 주정뱅이 이상으로 결근을 하는 경우가 잦았는데, 오죽 지독하게 동료들을 괴롭혔으면 오히려 소패가 결근하는 날이, 업무가 더 바빠질지언정, 직원들에게는 마음의 안정을 주는 '평화로운 날'이었다.



내 눈에 정말로 신기해 보였던 건, 주정뱅이와 소패 둘은 서로를 상당히 호의적인 눈길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었다. '당신은 착하다.', '당신은 일을 참 열심히 한다.'와 같은 말 같지도 않은 말을 서로에게 받쳐가면서 그들은 서로를 좋은 동료로 칭하고 있었다....

                                

- Part 2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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