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대상 수상작 전시 탐방기
우연한 기회에 브런치 작가가 되었지만, 훨씬 더 오랜 시간 브런치 독자로서 지내 온 나는, 무명의 브런치 이웃이자 독자로서 ‘10회 브런치북 대상 수상자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싶었다.
사실, 브런치 작가가 된 지 일 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구독자 두 자리 수의, 지하에서 지상으로 굼벵이처럼 가까스로 기어올라가고 있는 중인 나는, 그들이 부러웠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질투는 털끝만큼도 나지 않았다. 그저 부럽고, 기쁘고, - 어쩌면 나도 모르게 그들의 사진을 마주하며 미래의 내 모습을 상상했는지도... - 축하해주고 싶을 뿐이었다.
요즘 이웃 작가님들과 댓글로 소소하게 마음을 나누며 적지 않은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 마치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동지애'에 다시 발을 담근 기분이다. 물론 이러한 동지애는 끈끈하기보다 다소 '느슨한' 형태로 이어져 있다. 그러나 나는 이 느슨함 속에서 내 생애 그 어떤 인간관계 속에서 느꼈던 만족감보다 더 귀하고 긍정적인 마음을 누리고 있다. 어느 한쪽의 희생을 강요하지 않고 글과 마음으로 덧대어진, 순수하고 응원이 가득 담긴 동지애로 인해 말이다.
이웃 작가님들은 내 보잘것없는 글들에 기꺼이 시간을 할애해 따뜻한 마음을 건네주고, 내게 좋은 일이 생기면 나보다 더 기뻐해준다. - 내 브런치 계정에 붙은 '크리에이터 딱지'도 '나무 향기' 작가님이, 너무나 감사하게도, 버선발로 뛰어 와 나보다 더 기뻐하며 댓글로 소리쳐 알려주신 덕분에 알게 되었다. 그 순간 작가님의 마음이 소중해 눈물 찔끔할 뻔했다는 사실은 안 비밀이다. -
치열한 경쟁 속 바늘구멍을 통과해 '브런치 북 대상 작가'가 된 기쁨도 잠시, 아마도 수상 작가님들은 지금쯤 '내 책을 찾는 이들이 없으면 어떡하지?' '내가 출판사에 민폐를 끼치는 사람이 되면 안 될 텐데...' 같은 말들을 끊임없이 되뇌며 그토록 갈망했던 길 위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걸어가고 있을는지도 모르겠다. 그 생각에 이르자 급기야 잠실로 가지 않고는 못 배길 지경이 되었다.
브런치 대상 작가들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는 롯데월드몰 '아크 앤 북' 서점은 우리 집에서 맘먹고 가야 할 만큼 먼 곳에 있지만, 자꾸만 맘이 그곳으로 이끌렸다. 거기에다, 초판 1쇄 본을 사수하고 말겠다는 내 고질적인 욕망도 한몫을 했다.
때마침 내 마음이 들썩이던 날과 짝꿍의 휴일이 떡하니 겹쳤다.
나는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짝꿍에게 말했다. 이것은 내 나름의 고단수(?) 작전이었다.
"... 나 오늘 잠실에 브런치 공모전 수상 작가들 전시 보러 가려고.. 자기는 피곤할 텐데 그냥 집에서 푸욱 쉬고 있어. 나 혼자 가도 전~혀, 아무 문제없어. 정말로!”
며칠 전, 내가 전시에 관해 슬쩍 흘렸을 때는, "생각 좀 해 보고..."라며 애매모호한 반응을 보였던 짝꿍이었는데, 역시나, 내가 위와 같이 말하자 청개구리 본성이 발동했는지 굳이 자신도 같이 가겠다며 따라나섰다.
"집에 있으면 뭐 하겠어.. 잠이나 처자겠지..."
라고 말하며.
제대로 걸려들었다! 먼 길 혼자 가는 것보다 함께 가면 덜 심심하고, 또 밥값도 짝꿍이 계산할 확률이 높으니 나로서는 이래저래 고무적인 반응이었다.
서점으로 가는 길. 8월의 무더위는 어김없이 기승을 부렸고, 휴가철이라 그런지 대중교통마다 사람들로 북적였지만, 기분 좋은 목적지로 향하는 발걸음만큼은 무척이나 가벼웠다.
2시간 가까이 걸려 도착한 '아크 앤 북'은 주변에 눈요깃거리도 많았고, 어딘지 모르게 낭만적인 분위기를 풍겼으며, 무엇보다도 몹시 쾌적했다.
그 클래식한 분위기에 젖어든 것도 잠시, 입구에서 작가님들의 사진을 맞닥뜨리자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 것처럼 어찌나 반갑던지...
몽글몽글해진 마음에 홀로 룰루랄라 흥얼거리며, 서점 구석구석을 탐험하고 음미하며 한참을 신이 나서 돌아다녔다. 짝꿍은 배가 고픈지 얼른 나오고 싶은 눈치였지만.
평일이었지만 제법 많은 독서인들이 있었는데, 개중에는 브런치 대상 작품 코너에 서서 책을 살펴보고 읽는 이도 보였다. 나는 평소에 스마트폰으로 브런치 글들을 읽는데, 이렇게 직접 열 권의 종이책으로 변신한 작품들을 접하자 감회가 새로웠다. 뭐랄까, 군대 계급장에 다이아몬드를 달고 있던 친구가 별안간 눈부시게 반짝이는 '별'을 매달고 내 눈앞에 짜잔, 하고 등장한 것 같은 느낌이었달까.
이래서 공모전에 진심이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독자의 입장으로 열 분의 작가님들 사진과 책들을 한참 들여다보며 서 있었다. 그렇게 멈추어 있으려니 코끝으로 간질간질 기분 좋은 향기가 느껴졌다. 서점 에어컨에서 향기로운 바람이라도 나왔던 걸까? 어쩌면 그 향기는 내 마음과 책들의 시너지로 인한 '상상의 감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마음 같아서는 대상작 열 권을 모두 구입하고 싶었지만, 주머니 사정상 가장 관심 있는 분야의 책 두 권을 골라 계산대로 향했다.
그리고 받은 '브런치 모나미' 펜. 심플하면서도 감각적이라 내 맘에 쏙 든다. 두 권을 샀더니 두 통을 준다. 심지어 한 통에 두 자루나 들어있다. 도합 네 자루. 횡재수다! 문구류에 진심인 나 같은 독자들에게 안성맞춤이다. 내 주변인들 중 독서를 애정하는 이들은 대체로 문구 덕질러다. '브런치 홍보팀' 아주 잘하고 있어,라고 흐뭇해하며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 배곯은 짝꿍을 이끌고 식당으로 향했다.
백화점 식당에서 신기한 '신문물' 하나를 발견했다. 변두리에서 온 촌년이라 모르고 있었던 건지 모르겠으나, 이거 참 물건이다. 대기 진동벨을 탁자 위 저 동그란 구역에 올려두면, 진동벨이 울리자마자 종업원들이 기똥차게 손님이 앉아있는 자리를 찾아서 음식을 내온다. 우리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앉은자리에서 그대로 주문한 식사를 맞이할 수 있다.
알고 보니, 종업원들의 팔목에 무선 신호기의 역할을 하는 시계(?)가 하나씩 장착되어 있다. 진동벨이 울리면 종업원들의 시계에 신호가 가는 것이다. 누가 발명한 건지는 모르겠으나 참으로 신박하다. 우리나라를 방문한 외국인들은 식탁 옆 서랍에 비치된 수저들, 짐을 보관하게 만들어진 의자들만 보고도 엄청 신기해한다는데, 아무래도 이것은 불편한 걸 참기 어려워하는 우리나라 사람이 만들어낸, 고심의 결과물이 아닌가 싶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지인에게 좋은 일이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순수하게 부러운 마음만 들지는 않았던 것 같다. 내가 아끼는 가족이나 친구들이 아니고서는. 대체로 부러워하는 마음 한 구석에는 질투의 감정이 불순물처럼 섞여있었다. 그건 아마도, 내가 그 사람과 기꺼운 마음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아서였기 때문이 아닐까.
얼굴 한번 보지 못한 브런치 작가들의 선전을 지켜보며 ‘잘 되어서 좋다, 그저 부럽기만 하다’라는 이 마음을 신기해하다가, 그동안 내가 이곳에 알게 모르게 정이 많이 들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들의 글을 통해 쉽지 않게 내어 준 마음들을 들여다보고, 함께 웃고, 울고, 때론 분노하기도 하면서 말이다.
글을 쓰며 위로받고 행복해지기도 하지만, 꾸준히 써 나가는 그 마음이 어떤 것인지 알기에, 소리 내 말 한번 섞어보지 않은 사이임에도 내가 이리도 그들에게 맘을 기대고 있었나 보다.
전시에 다녀온 날, 괜스레 가슴이 웅장해져 집에서 짝꿍과 술 한 잔 기울이며 생각했더랬다.
나 브런치 시작하길 잘했다.
하트 가뭄이어도, 구독자 수 죽어라 안 늘어도
꾸역꾸역 버텨오길 참 잘했다.
그러니, 앞으로도 낙오하지 말고
찰거머리처럼 찰싹, 달라붙어있어 보자.
이곳, 브런치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