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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뉴 Sep 01. 2023

아이는 그렇게 성장해 간다

또한 어른도…

아이가 드럼을 시작한 건 지금으로부터 1년 전쯤이다.


코로나 이후 등교를 거의 하지 않고 집안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진 아이는, 부쩍 모든 대외 활동에 흥미를 잃어가는 듯했다. 컴퓨터 게임을 하거나 유튜브를 시청하는 것 이외에는 무엇이든 선뜻하려고 들지를 않았다. 코로나가 완화기에 접어들며 다시 주 5일 등교가 시작되었지만, 무기력한 하루 일과에 익숙해진 아이는 급기야 매일 등교하는 일상적 행위에 극심한 혐오감마저 드러냈다. 그렇게 아이의 신체활동은 점점 줄어갔고, 그와 반비례하여 몸집은 성실하게 불어갔다. 무거워진 몸에 아이는 활동하기를 더 꺼려했고, 몸은 제 크기를 더 키웠고... 그야말로 악순환의 반복이었다.



  어느 날, 아이를 도저히 이대로 두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가급적 어떤 일이든 스스로의 흥미와 관심을 통해 자발적으로 하는 환경을 만들어주자는 게 우리 부부의 생각이지만, 위와 같은 상황에도 아이를 하고 싶은 대로 놔두는 것은 부모로서 직무유기를 범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나는 고심 끝에 아이를 드럼 학원에 보내기로 결정했다. (예술인 가족을 이루고 싶다는 나의 오랜 소망이 반영되긴 했다) 역시나 아이는 '결단코 하고 싶지 않다'라고 강력하게 주장했지만, "매일 수학 학원 갈래, 그냥 1주일에 한 번 드럼 배울래?"라고 묻는 내 약삭빠른 질문 앞에서 별다른 대답을 하지 못하다 결국엔 우물쭈물 나를 따라나섰다.



드럼 수업 첫날, 아이는 마치 벼랑 끝으로 끌려가기라도 하는 사람 같은 표정을 짓더니, 입을 있는 대로 삐죽 내밀고는 잊을 만하면 나이 지긋한 영감님처럼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그렇게 시작한 아이의 드럼 연주는 최근 들어 비트가 제법 빠른 '브루노 마스'의 <Uptown Funk>를 악보를 보지 않고도 꽤 능숙하게 연주할 정도가 되었고, 학원 초등부 대표로 드럼 발표회를 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아이는 그간 점차적으로 늘어가는 본인의 실력을 체감하며, 주변 사람들의 칭찬을 받으며 내심 드럼에 대한 흥미를 키워가는 듯했다.



그러던 중, 아이는 또 다른 난관에 봉착했다.

발표회가 얼마 남지 않은 어느 시점부터 아이는 ‘도저히 자신이 없다. 나는 아직 그럴 실력이 안된다.'며 자꾸 뒤로 도망가려는 자세를 취했다. 지도 강사가 '잘한다'며 초등부 대표로 추천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 아이는 학교에서 꽤 내성적인 학생이다. 웬만해선 발표 같은 것은 하려고 들지 않는다. 타인 앞에 나서는 상황을 몹시 쑥스러워한다.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것을 못 견뎌한다. 나와 밤 드라이브를 하며 신나게 드럼 연주 연습을 하고 나서도 '발표 생각만 하면 너무 긴장된다. 아무래도 못 할 것 같다’며 온 세상 걱정을 끌어안은 사람처럼 불안해했다.



나는 나의 국민학교 시절 피아노 학원 발표회에서 있었던 상황을 전해주었다.

그때 엄마인 내가 얼마나 떨렸었는지를. 그럼에도 열심히 연습하고 나간 실전에서는 막상 긴장이 별로 되지 않아, 내 손이 기특하게 제 할 일을 해내더라는 것을. 그리하여 결국엔 걱정했던 사실이 무색해질 정도로 무사히 발표회를 잘 마쳤다는 결말을.

그리고 덧붙였다.


  "쭈니가 무섭고 자신 없는 그 마음을 잘 극복하고 나면, 자신감이 생겨서 분명 앞으로 있을 일들을 더 잘 해낼 수 있을 거야!"

  "정말이야, 엄마??"

  "정말이지! 엄마 말 믿고 한번 해 봐."

그 후로도 이와 비슷한, 설득과 격려를 담은 대화들이 몇 번이고 우리 사이에 오갔다.



그리고 마침내 며칠 전. 아이는 무사히, 아니 기대 이상으로, 드럼 발표회를 잘 해냈다. 아이가 처음으로 어린이집에서 재롱잔치를 할 때 느꼈던 그 뭉클했던 감정이 내 마음속에서 되살아나던 순간이었다.

나는 아이가 연주하는 동안 아이의 모습을 내 두 눈으로, 핸드폰으로, 그리고 귀로 성실하게 담았다. 비록 학원 내 좁은 공간에서 이루어진 '미니 발표회'였지만, 그것은 이제껏 내가 봐왔던 그 어떤 연주회보다 멋진 순간을 내게 선사해 주었다.



은은한 오렌지빛 조명아래 그간 갈고닦은 실력을 아낌없이 발휘하던 저마다의 빛나는 마음들과, (딸과 사위가 지켜보는 가운데 열정적으로 '나 어떡해'를 드럼으로 연주하는 노신사도 있었다!) 그 연주들을 누구보다 애정 어리게 감상하고 응원해 준 관객들이 함께 뜨겁게 공명하던 자그마한 공간은, 18세기 유럽의 권세 대단한 어느 귀족의 호화로운 대저택에서 이뤄졌을 음악 연주회보다 더 멋지고 아름다우며 감동적인 풍경을 그려냈다.



연주를 마치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내게 돌아온 아이가 나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진짜 엄마 말이 맞았어! 막상 실전에 들어가니까 별로 안 떨리더라고. 나 잘했어, 엄마?"

  "그럼! 우리 쭈니 완전 멋졌어!"

  "사실, 실수 한번 했는데...”

  "그건 중요한 게 아니야. 쭈니가 어려움을 이겨 내고 목표한 일을 해냈잖아? 그게 중요한 거야. 쭈니 이제 자신감이 막 생기는 것 같지 않아? 앞으로 무슨 일이든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고?"

  "응, 그건 그래."

  "쭈니야, 바로 그거야! 오늘을, 오늘의 이 기분을 기억해!"



그날, 아이와 나는 발표회 참가 기념으로 받은 선물 꾸러미와 함께, 환상적인 냄새를 풍기는 치킨 한 마리를 사들고 금의환향하는 사람처럼 위풍도 당당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이날을 잊지 않으리라, 맘에 꼭꼭 새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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