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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뉴 Aug 21. 2023

해가 지면 운전대를 잡는다

꼬리가 긴 여름 해가 서서히 산 아래로 자취를 감추면, 엉덩이가 조금씩 들썩이기 시작한다.

저녁상을 물리고 나자 내 마음이 본격적으로 나갈 채비를 한다.



이제 운전대를 잡을 시간이다. 어둠이 내려앉은 도로 위를 오늘도 그와 함께 내달릴 작정이다.

때마침 나의 '그'가 내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한 마디 던진다.

  "엄마, 오늘도 드라이브??"

  "당근, 좋지!"

씩, 미소를 짓는 아들램의 표정이 신나 보인다.



요즘 들어 나는 둘째 녀석과 함께 '야간 드라이브'를 종종 즐긴다.

나만큼이나 어둠 속 질주를 - 시내 도로라 시속 50킬로를 잘 넘기진 않지만 - 좋아하는 아들램은, 여러모로 나와 취향이 비슷한, 호흡이 잘 맞는 꼬마 친구다.



'야행(夜行)'을 함께 하며 우리가 주로 듣는 음악은 재즈다. 밤을 닮은 재즈, 재즈를 닮은 밤. 

우리가 밤의 드라이브를 하며 재즈를 들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 둘이 지닌 공통점 때문이다.

묘한 편안함을, 모든 생산적인 것들을 내려놓고 몸과 마음이 가는 대로 흐느적거리는 느낌을 이 두 단어는 품고 있는 듯하다.



'쳇 베이커'의 나른하게 젖어드는 목소리에 어우러진 트럼펫 연주가 맘을 울리는 보컬 재즈도, 탭댄스를 권유하듯 자유분방하고 유쾌한 '빌 에반스'의 피아노 재즈도 우리의 플레이리스트에 자리 잡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브루노 마스'의 'Uptown Funk'가 여기에 더해졌다. 곧 있을 아들램의 드럼 발표회 때문이다. 아들램은 내가 운전하는 동안 차창 밖 야경을 눈에 담고 음악에 귀를 기울인 채, 제 두 손을 드럼 스틱 삼아 두 허벅지를 드럼이라 상상하며 열심히, 그리고 신나게 발표곡을 연습한다. 어찌나 힘차게 두들겨 대는지, 집에 돌아올 무렵이면 허벅지가 시뻘겋게 달아올라있다.



열정적인 순간이 지나고 나면 다시 둘만의 수다가 이어진다. 옛날이야기 - 아들램에게 옛날은, 본인의 초등 저학년 내지는 유치원 시절이다 -부터 시작해서, 서로의 관심사, 일상의 불만 내지는 만약이라는 ‘가정'이 들어간 이야기까지. 예를 들면, 이런 대화들.


  "엄마는 만약에 주말 동안 나랑 몸이 바뀐다고 (가정)하면 뭘 제일 해 보고 싶어?"

  "어려지는 것 자체가 좋은데!! 뭘 하고 싶은지는… 아, 어렵다…. "

  (확실히 어른이 아이보다 상상력이 부족하다.)

  "그럼, 쭈니는 만약 엄마가 된다면 뭘 해 보고 싶어?"

  "그건… 어린이가 못 하는 거. 아마도, 맥주 한 잔 마셔보기…?"

아… 평소에 아이 앞에서 술 마시는 모습을 너무 가감 없이 보여줬나 보다. 어른이 되면 기껏 해 보고 싶은 게 맥주 마시는 것이라니!



이렇게 이어지는 둘만의 '밤의 일탈'은 한 시간이 채 되지 않는다. 그러나 길지 않은 그 시간을 우리는 알토란 같이 활용한다. 예전에 살았던 동네를 둘러보며 기분 좋은 추억을 곱씹고, 편의점에 들러 야식으로 먹을 맛난 군것질 거리들을 품 안 가득 골라 담고, 이따금은 차에서 내려 손을 맞잡고 산책로를 걷기도, 그러다 때로는 눈 맑은 냥이 친구들을 맞닥뜨리기도 한다. 마치 게임 속 곳곳에 등장하는 금딱지들을 줍줍해 포인트를 불려 가듯, 우리의 즐거운 기억을 차곡차곡 쌓아간다.

그렇게 돌아온 집은 어찌나 아늑하고 정겨워 보이는지!



오래전 언젠가, 스트레스가 극도로 쌓이는 날 밤이면 드라이브를 나간다는 친척 어른의 말에 의아해했었는데, 야간 드라이브의 대체불가한 매력을 알아버린 지금은 그분의 마음이 십분 이해되고도 남는다.

기름값이 많이 오른 요즘, 내려가는 계기판의 눈금이 신경 쓰이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 이상으로 일상의 행복과 즐거움을 주는 이 시간을 결코 포기할 수가 없다.



그리하여, 앞으로도 계속 나는 ‘밤의 운전사’가 되어 볼 심산이다.

"오늘도 드라이브 나갈까?"란 나의 물음에 아들램이 심드렁한 반응을 보이는 그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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