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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뉴 May 14. 2022

나의 마스크 해방일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스크를 쓰는 풍경

드디어, 해방이다!!

사람들의 표정을 가로막던 장막. 내 숨이 자연의 내음을 맘껏 들이마실 자유를 앗아간 그것. 마.스.크.

어마 무시한 미세먼지가 몰려온다며 매스컴에서 연일 으름장을 놓는 와중에도 갑갑하다며 마스크 쓰기를 거부했던 나였다. 미세먼지에  생명줄이 짧아진다 할지라도 마음껏   자유를 택하고 싶었다. 그런 내가 무려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실내, 외를 가리지 않고 마스크를 쓰고 있었으니 정말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물론, 좋은 점이 없는  아니었다. 화장 하나 하지 않고도, 아니, 심지어 세수조차 하지 않고도 거리낌 없이 외출을 감행할 용기가 생겨나게  준다는 점 한 가지.


최근 '나의 해방일지'라는 드라마를 재밌게 시청하고 있는데, 문득 나도 '마스크 해방일지'를 적어보고 싶어졌다. 물론 실내에서는 여전히 마스크를 착용하지만, 실외에서만이라도 떳떳하게 마스크를 벗어던질 수 있음에 무척 기쁜 마음이 드는 요즘이기에....


그런데 사실, 마냥 기쁘기만 한 건 아니다. 왜냐하면,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실외 마스크 착용 자율화'를 발표하고 나서도 현실의 거리 풍경은 이전과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머릿속으로 그려보고 그려봤다. 머지않은 시간에 그러한 날이 오기를 소망하며. 봄꽃들만큼이나 화사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마음껏 수다 떠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날을. 그래서 정부의 발표가 있던 날 나는 '만세삼창'이라도 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발표가 있던 날, 과감하게 마스크를 벗어던지고 집을 나섰다. 역시, 코끝에 느껴지는 공기의 '클라쓰'가 완전히 달랐다. 공기 중에 부유하고 있는 미세먼지마저도 반갑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래, 바로 이거야!' 코끝을 살랑거리며 스쳐 지나가는 봄바람에, 유부녀임에도, 가슴이 마구마구 설렜다. 그런데 실로 오래간만에 호강하고 있던 나의 후각, 촉각과는 달리 내 시각은 그러질 못하고 있었다.    

거리는 여전히 마스크를 쓴 사람들로 가득했다.


생각했다. '아직 첫날이라 그런 거겠지.'라고. 그러나 하루, 이틀, 일주일이 지나도록 별 변화가 없었다.

궁금해졌다. 너무도. '사람들은 왜 여전히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걸까?' 그러고 보니, 내 아이마저도 실외에서 마스크를 벗지 않으려 했다. 아이에게 말했다.

  "이제 실외에서는 마스크 벗어도 돼!"

  "나도 알아."

  "그런데 왜 계속 쓰고 있어? 갑갑하지 않아?"

  "그냥... 이제 마스크 쓰는 게 더 편해."

그 순간, 누군가 내 뒤통수를 망치로 한 대 내려치는 것 같았다. 마스크 쓰는 게 갑갑하다며 짜증내고 떼쓰던 아이였다. 그런데 지난 2년여간 무엇이 아이의 태도를, 마음을 이토록 변하게 만든 것일까? 잘못돼도 뭔가 단단히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이후로, 여전히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지인들에게 물어보았다. 도대체 어떤 마음이 마스크를 계속 쓰고 다니게 만드는 건지. 내 지인들의 경우 아래의 세 경우로 나뉘었다.

케이스 1.

"그냥... 마스크 쓰는 것에 익숙해진 것 같아. 이제 마스크 안 쓰면 뭔가 허전해."

케이스 2.

"사람들이 다 쓰고 다니더라고. 그래서 나도 벗기가 좀 그렇더라."

케이스 3.

"그래도 쓰고 다니는 게 더 안전하겠다 싶어서...."


그 어떤 얘기에도 나는 납득이 잘 되지 않았다. 화장하기 귀찮아서, 맨 얼굴을 가리고 싶었다고 말했으면 오히려 쉬 수긍이 됐을 것 같다. 성인 여성에게 있어 그건 충분히 설득력 있는 변명이니....


사람들의 얘기를 듣고 걱정스럽고 한편으론 두려운 마음이 일었다. 힘을 가진 자들이 그렇지 못한 다수의 사람들의 마음과 태도를 지배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길들여진다는 것, 그렇게 자신도 모르게 무엇인가를 습관화하고 내면화한다는 것은 정말 무서운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과정을 통해 한 번 형성된 '군중심리'는 미처 길들여지지 않은 나머지 사람들의 태도마저 지배하고 있다, 는 생각도. 그러한 군중심리는 분명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2년여를 지켜본 나는 이제 알 것 같다. 마스크로 우리가 '코로나 바이러스'에서 결코 자유로워 질 수는 없다는 것을.

 

우리의 건강을 해치는 바이러스로부터 우리 몸을 지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만큼, 아니, 어쩌면 그것보다 더 우리가 소중히 지켜내야 하는 것은 '우리의 자유의지'가 아닐까...?

해서, 나의 '마스크 해방일지'속 ‘해방’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소망으로 남아있다….




마지막으로, 떠오르는 짧은 이야기 하나.

여자는 태어날 때부터 집을 벗어나 본 적이 없었다. 여자는 늘 주눅이 들어 있었다.

여자의 부모는 엄격하고 권위적인 사람들이었다.

여자의 부모는 말했다.

"너에겐 여기가 안전한 곳이야. 밖은 위험하니 절대 밖으로 나갈 생각은 하지 말아라."

부모는, 여자를 홀로 두고 외출하는 날이면 밖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나갔다.


집안은 어두웠다. 창밖으로 조그맣게 보이는 풍경이 여자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눈부신 햇살, 끝없이 펼쳐진 하늘, 바람에 살랑거리는 초록의 나뭇잎들....

여자는 이따금 창문을 빼꼼 열고 바깥의 공기를 코끝으로 느껴보곤 했다. 그러나 결코 밖으로 나갈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렇게 세월은 흘러갔고 여자의 부모가 죽었다.

드디어, 밖으로 향하는 문이 활짝 열렸다.

이제 여자는 자신이 원하면 언제든지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여자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여자가 말했다.

"내겐 여기가 가장 안전하고 편한 곳이야....’’

여자는 그렇게 나이를 먹어갔다.

여자가 집을 벗어난 때는, 마지막 숨을 거두고 난 뒤였다....

                                                       - story by Ji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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