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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뉴 May 20. 2022

완전한 '운'이란....

적극적으로 맞이하는 인생의 '운'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제가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나도 그러하다. 내가 이뤄낸 긍정적 성과에 대해 타인들이 나를 칭찬할 때 이렇게 말하곤 한다. 그러나 사실 이렇게 말하는 내 마음이 항상 나의 언어와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네, 제가 열심히 해서, 잘해서 이렇게 된 것 같네요.”라고 말하고 싶은 순간이 있다. 그러나 더불어 살아가는 삶, 타인에게 겸손이라고는 1도 없는, 인성이 덜 된 인간으로 보이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얘기한다. ‘제가 운이 참 좋았네요’라고.    

 

그렇지만 지금까지의 내 인생을 돌이켜보면 온전히 ‘운’으로 이루어진 일이 있었던가, 싶기는 하다. 심지어 ‘운’으로 결판난다는 복권조차 말이다.     


몇 년 전 연금복권으로 삼만 원이 넘는 금액에 당첨된 적이 있었다. 이것은 그 당시 끝자리 연속 세 자릿수를 맞혔을 때 받을 수 있는 금액이었다.

부푼 마음을 끌어안고 상금을 타기 위해 편의점을 다시 방문했을 때 직원 분은 내게 “우와! 운이 참 좋으시네요!”라고 말하며 상금을 건넸다.

내게 ‘운이 좋은 사람’이라는 말은 늘 듣기 좋은 말이다. 내 인생 자체가 긍정의 기운을 타고난 것 같은, 그래서 앞으로 남은 수많은 날들도 잘 굴러갈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나 할까....     


집에 돌아와 생각지도 않게 내게 떨어진 삼만 원으로 무엇을 사고 무엇을 먹을까 기분 좋은 고민에 빠졌다. 그러다 문득 이 ‘운’을 얻기 위해 내가 투자한 시간과 돈과 노력이 만만치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복권을 사기 위해 적어도 한 달에 만원 이상 꾸준히 투자했으며, 그에 따라 필요해진 현금을 구하려고 일부러 은행을 방문해 돈을 인출했으며, 굳이 그리 가깝지도 않은 편의점에 들러야 했다.      


수능시험을 치를 때까지만 해도 난 스스로 ‘인생에 운이라고는 별로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고 살았던 것 같다. 학창 시절 소위 모범생(?)이었던 나는 어른들이 정해놓은 틀 밖으로 벗어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며 살았다. ‘이렇게 하면 잘 될 거야’라고 말하는 어른들의 말만 철석같이 믿고 따랐던 나는, 수능시험 성적을 받았을 때 극복하기 어려운 ‘불운’에 큰 좌절감을 맛보았다. 수능 당일 유난히 내 컨디션은 최악이었고, 고심 끝에 신중히 찍었던 문제들은 죄다 오답이라는 결과로 돌아왔다.     


언제부터 ‘그래도 난 좀 운이 있는 사람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을까, 기억을 되짚어봤다. 돌이켜보면, 내 인생 ‘운’의 항로가 결정적으로 바뀐 시기는 내가 성인이 된 이후, 그러니까 내 나이 앞자리 숫자가 ‘2’로 바뀐 이후였다.  

나이가 내게 가져다준 ‘자유’를 얻게 되면서 난 무언가 새로운 것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그 이전까지 타인―대부분 어른들―이 정해준 것들을 지켜나가기에 급급했던 삶에서 벗어나 내가 스스로 생각해서 결정하고 시도하는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한 가지 깨닫게 된 것, 아니 발견하게 된 것이 있다. ‘나, 운이 좀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잘 다니던 회사를 박차고 나와 ‘교사가 되어야겠다!’고 선언하고 임용시험을 준비했다. ‘그냥 조용히 회사 잘 다니다 시집이나 잘 갈 것이지’라고 생각하는 주변 사람들의 걱정과 우려가 단순히 ‘기우’였음을, 그래서 내 결정이 옳았음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꼭 도전에 성공하고 싶었다. 그래서 수능시험을 준비하면서도 해보지 못했던 ‘하루 8시간 이상 책상 붙박이’로 공부하기를 실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전에는 늘 불안감과 걱정이 뒤따랐다. 그런데, 기가 막힌 운이 나를 살렸다. 나는 1차 시험에서 ‘문 닫고 들어가기’에 성공했다. 그것도 소수점 둘째 자리까지 정확히 일치하는 1차 커트 점수를 형성하며. 그 당시 난 그게 다 미치도록 좋은 내 ‘운’ 덕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소수점 둘째 자리 숫자가 내게 가져다준 그 ‘운’도 결국은 온전히 ‘운’ 그 자체로만 내게 주어진 것은 아니었다. 내가 멀쩡하게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지 않았더라면, 놀고 싶고 포기하고 싶은 내 욕구를 잠재우고 끝까지 도전하지 않았더라면 ‘운’이라는 녀석은 분명 내 운명을 저 멀리 비껴갔을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행운이 아닌 불운과 맞닥뜨릴 수 도 있었다. 그렇지만, 적어도 내 경우에는, 내 삶의 주체가 ‘내’가 될수록 내 인생의 추도 ‘불운’ 보다 ‘행운’ 쪽으로 기울었다.


해서, 나 자신에게도, 이 글을 읽고 있을 그 누군가에게도, 무엇이든 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지금 인생이 무기력하고 공허하게 느껴진다면, 무엇인가에 도전하며 당신에게 찾아올 '운'과 마주해 보라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생에 아무런 '운'도 찾아오지 않을 테니....

 그 과정에서 만나게 될 당신의 ‘운’은 그 자체로 완전한 ‘운’은 아닐 것이다. 그리하여, 당신은 앞으로 펼쳐질 삶에 좀 더 열과 성의를 다하게 되는 순간들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에 따른 인생의 재미와 자존감 상승은 덤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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