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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뉴 May 27. 2022

<그대가 조국>을 보고 기억들이 되살아나다

짝꿍과 함께 실로 오래간만에 극장에 다녀왔다.  다큐멘터리 영화 <그대가 조국>을 보러.   

<그대와 조국>은 텀블벅에서 5만 명이 훌쩍 넘는 후원자들의 펀딩을 받아 극장에 걸리게 된 작품이다.   

애초 목표했던 금액의 52배를 달성했다고 한다. 상영시간은 총 124분.  


러닝타임이 2시간 넘어가는 작품들 앞에서 내 등과 엉덩이는  인내심의 한계를 드러낸다. 극도의 흡입력이 있는 작품이 아니라면 말이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다!'라고 말했던 영화 <타이타닉>이 내 인내심을 시험하지 않은 거의 유일한 작품이 아니었을까 싶다. ( <타이타닉>의 상영시간은 무려 194분이다)

그런데 <그대와 조국>을 보면서 다시금 경험했다. 시간이 다른 속도로 흘러가는 공간에 있는 듯한 느낌을.  

2시간 여의 시간이 빛의 속도로 지나간 것 같았다.


지금 여기서 영화 감상평을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영화에 대해서라면, 나보다 훨씬 더 잘 알고 웬만한 영화평론가 뺨치게 적으시는 분들 많다. 나는 이 작품을 본 후의 내 개인적 소회와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기억들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




이 작품을 보고 난 첫 번째 느낌은, 무척이나 섬뜩하다는 것이다. 또한 고구마 백 개쯤 먹은 답답함과 함께 분노인지 억울함인지 모를 감정들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상영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욕을 하시는 분들, 심지어 소화제 찾으시는 분도 봤다.-_-) 그래서인지, 피곤한 하루였고 평소 불면증과는 담쌓고 사는 나지만, 영화를 보고 온 그날 밤엔 쉬이 잠이 들지 않았다. 잊고 있었던 여러 가지 기억들이 생생하게 되살아나면서....


평소 스릴러나 공포물을 즐겨본다. 겁이 별로 없는 편이라 웬만큼 무서운 영화를 보지 않고서는 무서워하기보다는 귀신이나 살인마로 나오는 배우의 연기력을 관찰하며 평가하는 쪽이다.

그런데 공포물을 보며 섬뜩했던 기억이 하나 있다. 대학시절 자취방에서 새벽 3시쯤 홀로 영화 <주온>을 보았던 추억(?)이다.   


그날 난, 몸이 녹아내릴 것처럼 무더운 열대야의 한가운데 있었고, 전기값을 아끼느라 차마 에어컨을 켜지 못하고 새벽녘에 연신 욕실을 들락거리며 차가운 물로 샤워를 해댔다. 그러다 도저히 더는 참기 힘들어 텔레비전을 틀었다. 혹여 '납량특집'이라도 보면 땀이 좀 식을까, 그래서 열대야에서 조금이나마 해방될 수 있을까 해서였다.   

그때 마침 한 채널에서 일본 호러물인 <주온>을 방영하고 있었다. 때마침 관절이 100개쯤 될 것 같은, 얼굴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귀신이 등장해 섬뜩한 관절 꺾이는 소리와 함께 화면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무더운 여름밤, 불하나 켜지 않고 홀로 앉은 자취방에서 번쩍이는 텔레비전은 내게 엄청난 몰입력을 불러일으켰다. 텔레비전에서 금방이라도 튀어나와 내 코 앞에서 일대일로 대면할 것 같은 귀신의 모습과, 그 소름 끼치는 '관절 꺾이는 소리'에 솜털이 돋았던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그런데... <그대가 조국>을 보고 나는 그 무더웠던 여름밤 느꼈던 그 서늘함의 몇 배, 아님 몇십 배는 될 것 같은 섬뜩함을 느꼈다. 공포물과는 거리가 먼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고 말이다.


영화를 본 후 되살아나는 또 다른 기억 하나.

대학을 졸업하고 들어간 첫 직장에서였다. 나는 에너지 넘치고 앞날이 창창한 20대의 한가운데 있었고, 불의에 용감하게 덤빌 깡으로 충만한-세월이 갈수록 점점 비굴해지는 것 같은 이 서글픈 느낌-_-;;- 순수한 청춘이었다.  

회사에 불미스러운 사건이 생겼다. 흔히 그렇듯 회사는 희생양을 찾았다. 그 희생양을 조지고-다소 격한 말 양해 부탁드린다-.-;-잘라내 회사에는 불똥이 하나도 튀지 않게, 그래서 회사 이미지가 실추되지 않게 하려고 부단히 애썼다. 그 과정에서 여러 말단 직원들이 힘든 상황을 겪었다. 나도 그 말단 직원 중 한 사람이었다. 생애 처음 직접적이자 온몸으로 겪는 '사회적 불의'였다. 나는 이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 곳인지 모르는, 그래서 더 겁 없었던 청춘이었고, 회사의 행태를 도저히 참고, 눈 뜨고 봐줄 수가 없어 무엇이든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희생양을 찾는 데 앞장선 상사를 고소했다. 20대의 나는 이 사회에 최소한의 정의는 있을 거라고 믿었고, 우리나라의 법과 그 법을 수행하는 검사라는 사람과 그 조직을 믿었다. 드라마에 나오는 정의로운 검사의 이미지에 눈이 가려져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생생하게 기억난다. 피해자의 얘기를 듣겠다고 나를 대면한 검사가 했던 말과 보였던 태도가.

  "얼마를 원해요?"

삐딱한 자세로 앉아 있던 검사가 '세상 귀찮다'는 표정을 지으며 내게 던진 질문이었다.

 처음에 난 내가 잘못들은 줄 알았다. 그래서 검사에게 반문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원하는 합의금이 있을 거 아니에요?" 얼마쯤을 생각하고 있는 거예요?"

 순간, 얼굴에 열이 확 올라왔다. 이건 뭐, 드라마 <가을동화>에서 원빈이 송혜교에게 던진 대사도 아니고, 검사라는 작자가 원고를 앞에 두고 던지는 질문 꼬락서니라니!!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마치 나를 돈이나 뜯어내려고 상사를 고소한 사람으로 여기는 것 같은 태도였다. 회사에서 느꼈던 모멸감보다도 더 극렬한 모멸감이 밀려들었다.

  "돈 같은 거 필요 없습니다!"

내 대답을 들은 검사의 얼굴에 또다시 '세상 귀찮다'는 표정이 어렸다.

그 뒤로도 검사가 보인 태도는 내게 의구심을 자아냈다. 회사 측과 '모종의 무엇인가'가 있은 게 아니었을까 하는....

그날 알 수 있었다. 이 나라의 법은, 법을 수호한다는 조직과 그 안의 사람들은 결코 약자의 편에 서 있지 않다는 것을. 그리고 느꼈다. 그들이 맘을 먹으면 나 같은 한 사람쯤 그들이 원하는 대로 요리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것을.




영화를 보고 되살아난 기억들은 사실 내겐 별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들이다. 그런데  기억들 속에서 <그대가 조국> 보였다. 그리고 생각이 든다. 수많은 이들의 목숨을 앗아가고, 그들의 가정을 풍비박산 냈던 간첩조작 사건들과 지금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완전히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죄를 졌으면 벌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지만 그 당위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정의롭게, 그리고 그 크기에 맞게끔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아무리 보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우리나라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사태들은 그렇게 돌아가고 있지 않은 것 같다.


시간이 갈수록 확연히 깨닫게 된다. 이 나라 수장을 위시해 가장 큰 세력으로 군림한 그 집단은, 없는 죄를 만들어낼 수도, 있는 죄를 없는 것으로 요리해낼 수도 있으며, 그 썩은 뿌리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깊고도 단단하다는 사실을. 또한 그들의 필요를 위해서라면 그 요리의 대상은 '그 누구'라도 될 수 있다는 것을.

해서, 나는 이 작품이 그 어떤 공포영화보다도 더 섬뜩하게 다가온다.



p.s.

아이러니한 풍경. 그러나, 한 사람 한 사람의 에너지가 모이면 상상밖의 이런 풍경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에서 희망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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