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뉴 Jun 05. 2022

이토록 아름다운 교차점의 탄생

6.1 지방선거 경기도지사 개표 결과를 지켜보며

막판 뒤집기의 정수를 보여준, 역대급 대환장 반전 스릴러!!

6.1 지방선거 경기도지사 개표 결과를 한 줄로 요약하라면, 나는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나는 그날의 짜릿함과 여운이 가시지 않은 마음으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나는 1300여만 경기도민을 이루고 있는 한 구성원이고, 경기도지사가 누가 되느냐가 삶의 중요한 관심사인 1인이다. 그래서 이번 지방선거 결과를 가슴 졸이며 지켜보았다.

사실, 처음에는 말도 되지 않는 게임이라고 생각했다. 정치경험이라고는 전무한, 국방부에 어거지로 집무실을 튼 사람의 뒤만 졸졸 쫓아다니며, 영혼이라고는 1도 없어 보이는 앵무새 같은 말만 내뱉는 사람이 경쟁자라니... 게다가, 16억이라는 돈쯤은 지나가는 개를 줘도 아까워하지 않을 듯한 발언을 일삼으며. 내게 16억이 생기면 지금 당장이라도 모든 것을 내려놓고 몰타로 달려가 여생을 바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내 초라한 재산이 더 초라하게 느껴지게 만드는 이런 괘씸한 예비 지사라니,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지방선거공보물을 차지하고 있는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생면부지의 후보들을 보며, 지지하던 당의 행태가 너무도 실망스러워 투표하러 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잠시 들기도 했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연일 떠들어대는 미덥잖은 여론에서 그 괘씸한 사람이 점점 입지를 굳혀가더니, 선거 직전에는 오차 밖 범위로 내가 지지하는 후보를 뛰어넘는 해괴망측한 상황으로 판세가 돌아가고 있었다. 나는 심각한 위기의식을 느꼈다. 경기도지사만은 사수해야 한다는 절박감이 치고 올라왔다. 나는 비장한 마음으로 투표소로 향했고, 투표지에 주름이 잡힐 정도록 내가 지지하는 후보 이름 옆에 도장을 꾸욱 누르고 돌아왔다.


그리고 그날 밤 또다시 비장한 마음이 되어 개표 결과를 지켜보았다. 그런데, 내 기대와는 다르게, 내가 지지하는 후보가 생각보다 많은 표차로 처음부터 빨간색 후보에게 뒤처졌다. 나는'도대체, 어떻게, 무슨 생각을 하면! 앵무새 같은, 16억쯤은 돈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표를 줄 수 있는'지 개탄하다가, 속으로 욕을 날리다가, 이내 지치고 슬픈 마음이 되었다. 그리고 자정이 조금 넘은 시간, 더 이상 결과를 지켜보기가 두려워 억지로 잠을 청했다.

새벽 3시쯤 잠시 잠을 깼다. 어둠 속에서 떨리는 맘으로 핸드폰 창을 켜고 개표 진행 상황을 확인했다. 초반 5% 가까운 차이를 보이던 표차가 1%대로 줄어들어 있었다. 갑자기 화들짝 정신이 들었다. 그러나 새벽 3시라는 시간이 내가 희망을 걸기 힘들게 만들었다. 나는 다시 잠을 청했다.

그리고... 새벽 5시 반이 넘은 시간이었다. 새벽의 정적을 뚫고 카톡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야간 교대근무를 하고 있던 짝꿍이었다. 나는 비몽사몽간에 다시 핸드폰 창을 열었다.


  완전 소오름!! 5시 반쯤 뒤집혔어!!!


머리에 번개를 한 대 맞은 듯 정신이 번뜩 들었다. 나는 이불을 걷어차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황급히 텔레비전을 틀었다. 사실이었다. 조금씩 좁혀지던 표차는 새벽 5시 30분을 기점으로 뒤집혀 있었다. 이미 빌어먹을 일부 신문에서는 앵무새 후보를 '당선자'라고 기사까지 내보낸 상황이었다. 텔레비전에서 두 후보 간의 득표 차이를 파란색과 빨간색 선으로 표시해 화면에 띄우고 있었다. "우와!!!"

'2002 한일 월드컵' 이후 새벽에, 그것도 홀로, 그렇게 소리 질러 보기는 처음이었다. 연일 하향을 그리던 빨간 선과 상향을 그리던 파란 선은 새벽 5시 30분, 개표가 97% 가까이 진행된 상태에서 교차점을 찍었고 , 그 후 뒤집히더니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해 아름답게 나아가고 있었다. 그 어여쁜 교차점을 본 순간 마치 머리 위에서 폭죽이 터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더 이상 잠을 잘 수 없었다. 경기도민임이, 포기하지 않고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한 내 손이 자랑스러웠다. 학창 시절 계주 경기에서 나를 앞서가던 얄미운 친구를 제치고 역전승했던 그 짜릿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정말, 인생은 소설보다 더 소설 같구나! 영화 <식스센스>나 <디 아더스>를 처음 봤을 때 느꼈던 충격과 짜릿함이 무색해질 정도라니.…‘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1300만 경기도민중 580만여 명이 투표에 참여했다. 최종 표차는 8,913표. 득표율 차 0.15%. 박빙 중의 초초박빙이었다. 그 8,913표에 내 한 표도 모래알만큼은 기여했다고 생각하니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의 감동이 밀려들었다.


네가 한 표 행사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어.

라고 내게 말했던 사람들에게 이번 선거 결과를 보고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사실, 20대 후반이 될 때까지도 난 그다지 정치에 관심이 없었다. 내일 무엇을 입고 무엇을 먹을까에만 관심이 있던 철없는 청춘이었다. 그래서 요즘 '이대남' 얘기가 나오면 혀를 끌끌 차다가도, '나도 크게 할 말은 없는 입장'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치에 무지'했던 나는 누가 지도자가 되어도 별다를 게 없다고 생각했고, 심지어 엄마-엄마는 조*일보를 하루 몇 시간씩 정독한다-가 마음에 들어하는 후보에게 생각 없이 한 표를 던지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도 창피한 흑역사다.


그러나 정치에 관심을 갖는 건, 내가 속해 있는 사회에 대해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가져야 할 기본적 예의이자 도리라는 생각이 점점 커져갔다. '전교조 집회에 나가면 가만히 두지 않겠다'는 협박성 공문이 심심치 않게 학교로 날아드는 것을 보며, 학교 도서관에 이*만-6.25 전쟁 때 위기에 처한 국민들을 뒤로하고 저 혼자 살겠다고 멀쩡한 다리를 폭파하며 빤스런 한 인간-관련 서적이 없다고 사서 선생님을 나무라던, 교장의 납득하기 힘들 만큼 떳떳한 태도를 보며.


나는 목격했다. 한 나라의 수장이 바뀌면서 내가 '부당하고 불합리하다'라고 생각했던 일상 속 풍경이 완전히 바뀔 수 있음을. 그래서 이번 선거의 결과가, '8,913'이라는 숫자 속의 소중한 한 점을 이루었을, 그래서 세상 그 어느 ‘점’보다 아름다워 보이는 ‘교차점’을 만들어낸 개인들의 마음이 더 애틋하고 귀하게 느껴진다.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 다시금 그날의 감동이 뭉클하게 되살아난다. 오늘 밤이 가기 전 짝꿍과 함께 다시 한번 샴페인 잔을 기울여야겠다.


값진 하나의 점과, 그 점에서 뻗어나간 아름다운 선을 만들어낸 모든 이들에게, 건배를!



작가의 이전글 <그대가 조국>을 보고 기억들이 되살아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