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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뉴 Jul 10. 2022

이제는 글을 쓸 수밖에

스스로의 동력으로 움직이는 삶을 위해

이번 주 브런치는 어떤 소재로 글을 써야 할지 도무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만큼 이번 한 주가 평범하게 흘러갔다는 걸 테다.

이런 고민을 하며 텅 빈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으려니 문득 인생은 참 알 수 없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내가 글쓰기에 대해 고민하고 시간을 투자하는 삶을 살게 되리라고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단 한 번도 생각지 못했으니 말이다. 이 생각에 이르자, 인생을 거쳐오는 동안 내가 얼마나 글쓰기와 인연이 있었는지 한 번 찬찬히 되짚어보고 싶어졌다.




초등학교 시절의 나는 글쓰기가, '글을 쓴다는 행위' 자체가 싫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학교에서 이뤄지는 글쓰기는 대체로 '비자발적 일기'와 독후감 과제였다. 특히,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류의 반공 독후감 쓰기 과제가 주어질 때면 나는 별로 하고 싶은 말이 없었고, 글쓰기 자체가 굉장한 '노역'처럼 느껴졌다. 일기도 마찬가지였다. 담임선생님께 검사(검열)를 필수로 받아야 하는 일기를 써야 한다는 사실이 어린 마음에도 무척이나 거북하게 다가왔다. 그런 상황들이 반복되다 보니 '글쓰기=힘든 노동'이라는 공식이 머릿속에 자리 잡아갔던 것 같다.


그러다 중학생이 되면서 검사받지 않아도 되는, 자발적 일기 쓰기를 시작했다. 사춘기 소녀 특유의 지나친 감수성과 허세가 작용했던 것 같다. 어쩌다 그 시절의 일기장을 들쳐보면, 손발이 오글거리다 못해 없어질 정도로 도저히 봐줄 수가 없는 지경이지만, 그때의 쓰는 습관이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고 있던 내게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주었던 것 같다. 그 무렵 처음으로 글쓰기에 대해 어렴풋이나마 긍정적인 느낌을 가지게 되었던 듯하다.

고등학교에 들어간 후부터는 학업에 집중한답시고 글쓰기와 다시 멀어지는 삶을 살았다. 그러한 삶은 내가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대화가 통할만큼 자랄 때까지 이어졌다.


돌이켜보면, '글을 잘 쓴다'는 칭찬을 받아본 기억이 거의 없다. 초등학교 시절 받았던 독후감 상장 몇 개와 대학 시절 전공과 교수님과 동아리 선배에게 들었던 말 한마디가 글쓰기로 내가 받은 칭찬의 전부이다.

중간고사를 치른 후였던가, 전공 관련 논술 시험을 치른 후 시험에 대한 피드백을 주면서 교수님이 한 말씀하셨다 'ㅇㅇㅇ은 필력은 좋은데 완전히 틀린 답을 적었다.'라고. 대학의 자유를 만끽하며 해방감을 맛보느라 공부를 소홀히 했던 건 사실이지만, 그 당시의 내게는 교수님의 말씀이, '완전히 틀린 답'이라는 말에 방점이 찍힌 채 무척이나 자존심 상하게 들렸고, 부끄러운 나머지 개미구멍에라도 숨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지금의 나라면 '필력은 좋은데'라는 말만 귀담아 들었을 것 같은데 말이다.

대학 시절 영화동아리 멤버였다. 동아리에서는 일 년에 한 번 영화와 관련된 책자를 발행했는데, 그 지면에 영화 감상평을 올린 적이 한 번 있었다. 채 두 페이지가 되지 않던 짧은 글이었다. 책을 발행하고 난 후 편집장이었던 선배가 쓰윽 지나가며 내게 던진 말이 있다. 'ㅇㅇ이는 글을 담백하게 잘 쓰네.'라고. 그런데 이상하게 그때도 내 귀에는 '담백하다'는 말이 '밋밋하다'는 말로 들리며 그다지 칭찬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내 마음이 삐딱선을 타고 있었던 것 같다. 어쨌든 이것들이, 짧지 않은 내 평생 동안 글과 관련해 내가 들어본 보잘것없는 칭찬의 전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글 쓰는 삶에 마음을 푹 담그게 된 계기가 있다.

주민센터에서 말단 공무원으로 일하던 때였다. 그해 따라 유난히 길고 지루한 여름 장마가 이어졌다. 지자체 공무원의 경우, 여름철 장마기간-호우주의보, 호우경보가 뜨면-이면 종종 비상근무를 선다. 호우주의보가 떴던 그날, 나는 밤을 새워 비상근무를 서고 있었다. 민원업무가 없는 밤을 주민센터에서 지새우는 건 지극히 따분하고 지치는 일이었다. 나는 밀린 업무를 하고, 책을 읽고, 너튜브로 영상들을 돌려보다 이내 정신이 몽롱해지기 시작했다. 피곤에 절었지만 불편한 자리에서 잠은 잘 오지 않았다.


그런데... 더디 가는 시간과 한창 싸우고 있던 새벽, 주민센터 앞 벤치에 앉아있는 웬 낯선 남자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고 지나가는 사람 하나 없는 시간이었다. 시계를 보니 새벽 3시 즈음이었다. 정자 아래 있는 벤치라 비를 맞고 있진 않았지만, 그 시간 그곳에서 비를 마주 보며 일말의 움직임도 없이 앉아있는 남자의 뒷모습은 기이하다 못해 섬뜩하게 다가왔다. 당시, 함께 일하던 팀장님은 잠시 눈을 붙이고 오겠다며 숙직실로 올라가 있는 상태였고 사무실에는 나 홀로 있었다. 섬뜩한 느낌이 들자마자 나는 주민센터 문이 제대로 잠겨있는지 잽싸게 확인하러 갔고, 앉아있는 남자의 뒷모습을 더 가까이에서 보게 되었다. 문 너머로 보이는 남자의 모습을 한동안 세심히 살펴봤다. 혹여 조금이라도 움직임이 있지 않을까 하여. 그런데 남자는 꿈쩍도 하지 않고 있었다. 남자에게선 그 흔한 담배연기 한 가닥 올라오지 않았다. 살짝 겁이 났지만, 그 남자와 나 사이를 단단히 버티고 있는 문이 있어 그나마 안심이 되었다.


얼마쯤 지났을까, 한창 딴청을 피우다 다시 바깥쪽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그 남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안도의 한숨이 절로 흘러나왔다. 그때였다. 머리에 전기로 충격이라도 받은 듯 번쩍, 하고 문장 하나가 떠올랐다. '새벽이 깊어가던 시간, 비를 맞으며 미동도 없이 앉아있던 남자의 등을 보았다...'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한글 창을 열고 글자들을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그게 시작이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일주일에 한 번 올리는 브런치 글을 적고 있다.

사실 글에 대한 갈망은 늘 있어왔다. 허나, 그 갈망은 주로 타인이 쓴 글을 흡수하고 소화하고자 하는 것에 닿아 있었고, 글로 나를 표현한다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어쩌면 내 안의 갈증과 욕망을 나 스스로도 잘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우연히 시작하게 된 글쓰기지만 이제 '글을 쓴다는 것'은 내 삶에 없어서는 안 될 운명처럼 느껴진다.

글을 쓰는 동안의 나는  평소보다 '좀 더 즐겁고 행복한 나'가 된다. 마음속에 불쑥불쑥 밀려드는 삶의 공허감, 허무함을 밀어낸 채 '충만한 나'로 탈바꿈한다. 누군가의 명령과 지시에 따르는 수동적인 삶이 아닌, 스스로의 동력으로 움직이는 독자적이고 창의적인, 그래서 더 아름다운 삶의 시간을 살아가게 된다. 글쓰기가 선사해주는 이런 '짜릿한 맛'을 알게 되어버린 나는, 더 이상 '글을 쓴다'는 매력적인 행위를 멈출 수가 없다.


지지부진하고 공허한 삶에 빠져 허우적대는 자신이 무기력하게 느껴지는 누군가 있다면 글을 한번 써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것이 어떤 형태이든지 간에. 잘 쓰든 못 쓰든 그건 문제가 아니다. 일단 시작한다는 게 중요하다.

그러면 당신은 당신의 삶에 의미 있는 한 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그리고 그 걸음은 당신을 또 다른 세상으로 이어지는 문 앞으로 데려다줄 것이다. 마치 <나니아 연대기> 속에 나오는 옷장의 문처럼 신비로운 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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