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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뉴 Jul 29. 2022

또 다른 시작

새로이 펼쳐질 삶을 눈앞에 두고…

여느 때처럼 어둠이 내려앉은 대교 위를 건너고 있었다. 매일의 일상이지만 이날만큼은 복잡하고 특별한 감정이 들었다. 후련한 마음이 컸지만, 차창 밖 다리 저 아래에 비치는 윤슬을 바라보면서 순간 울컥, 하고 눈물이 차올랐다.  

나는 마지막 퇴근길을 가고 있었다.     


십 년이 훌쩍 넘게 이어진 직장생활 동안 내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쳐갔다. ‘자아실현’이니 ‘자기 성장’이니 하는 따위들은 바라지도 않았지만, 주말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나머지 5일을 시간과 노동, 사람에게서의 고문을 버텨내는 심정으로 보내는 하루하루가 너무 힘겨웠다. 그렇게 참고 참다 보니 나도 어느덧 중년이라고 불러도 어색하지 않을 나이가 되어 버렸다.     

 

그사이 아이들은 대화가 통할만큼 자라 있었고, 자신의 자식이 힘들지 않게 하기 위해 ‘자식의 자식’을 봐주느라 애쓴 노년의 어머니는 병이 들어있었다.

‘이렇게 계속 살면서 나이 들어가는 게 정말 맞는 걸까?’ 어느 날부터인가 이런 물음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남들 다 그렇게 사니까 너도 그냥 그렇게 살아.’라는 말은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폭력적으로 들리기까지 했다.      


어떤 이들이 보기에는 이런 갈등을 하는 내가 어리석어 보일지도 모르겠다. 환갑이 다될 때까지 갚아나가야 하는 대출금에, 뒷받침해줘야 하는 어린아이들이 있는 내가 하는 고민이 ‘배부른 소리’로 들릴지도.... 그냥 회사에서 주는 돈 ‘따박따박’ 받아서 ‘차곡차곡’ 갚고 모으며 평범하게 나이 들어가는 인생을 살면 될 것을 왜 저러나 싶기도 할 테다.


그렇지만 난 그 강요되는 ‘평범함’이 싫다. 이렇게 정신없이 낭비되듯 보내버리는 시간들이 너무 아깝게 느껴진다. 단 한 번의 인생에서 중간 반환점을 앞두고 있는 내게 남은 후반기의 시간들은 전반기의 그것보다 더 빠르고 속절없이 흘러갈 것이기에….


최근에 읽은 소설책에서 내 마음으로 확 들어와 박힌 구절이 있다.

 

“... 일은 밥 같은 거였어요. 매일 먹는 밥요. 세상에는 허겁지겁 먹는 밥이 있고 마음을 다해 정성스레 먹는 밥이 있어요. 나는 이제 소박한 밥을 정성스레 먹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나를 위해서요....”


이제껏 계속 허겁지겁 밥을 먹어오다 체한 채로 계속 지내왔던 것 같다. 손을 따서 묵은 피를 손끝에서 흘려보낼 새도 없이 말이다. 그런데 더 이상은 그렇게 지내고 싶지 않다. 조금 경제적으로 부족할지언정, 나를 위해, 내 가족을 위해 조금 더 정성스럽게 밥을 지어 조금 더 천천히 음미하며 먹으며 살고 싶다.     


해서, 짧지 않은 기간 고민하며 마음속으로만 써왔던 사직서를 내 손으로 한 자 한 자 직접 써 내려갔다. 씩씩하게 내던지고 오는 상상을 하며, - 결국 내던지고 오지는 못하고 얌전히 들이밀고 왔을 뿐이지만 - 스멀스멀 올라오는 불안감을 애써 누르며 씩씩하게.... 포기에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하지 않는가. 그 용기를 자양분 삼아 새로운 인생을 음미하며 살아보리라 다짐했다.   

  

이제 난 그간 내가 한 번도 살아보지 않은 ‘프리랜서’로서의 삶을 살아보려 한다. 말 그대로 ‘프리' 한, 그래서 그 어떤 다른 곳에도 속하지 않고 오롯이 나 자신에게 속해 있는 직업인으로서의 삶. ‘자유’와 ‘불안’이 공존하는 삶. 위태롭지만 동시에 무한한 가능성이 열려 있는 삶. 인생의 시간에 주인공으로 한 걸음 더 다가서는 삶 말이다.    

 

사직서를 내고 돌아서 나오는 길에 동료들이 보였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다. ‘무모해 보이고 걱정스럽다’ 내지는 ‘부럽고 멋져 보인다’. 둘 다 이해가 간다. 나도 그러한 생각들을 했었으니까…

개중에 한 동료의 말이 계속 내 마음을 휘젓는다.


이제 마음껏 훨훨 날아가세요~!

음성이 아닌 사내 메신저로 날아온 문장이었다. 그런데 글자 하나하나에 그 동료의 진심 어린 마음이, 무어라 설명하기 힘든 애달픔이 느껴져 순간 울컥, 하는 마음이 됐다.


그래, 지금부터의 나는 타인의 시선보다 나 스스로에게, 내 마음이 들려주는 소리에 좀 더 집중하고 살리라. 그 끝이 어디에 가 닿을지는 알 수 없지만 날개를 펴고 훨훨 날아가 보리라. 그리하여, 내가 인내하는 고통이 결국 가족들과 타인에게 해로 돌아가는 그런 사람이 아닌, 스스로 좀 더 행복해져 그 행복의 기운이 다른 곳에도 골고루 퍼져나가게 하는 그런 사람, 내 인생의 끝자락에서 맛 깊은 술 한 잔을 기울이며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보리라. “그래, 이만하면 잘 살아온 ‘내 인생’이야.”라고....  

   

인생의 반환점을 앞두고 나는 다시 새로운 출발선 위에 서 있다. 달리기 시합을 앞둔 주자처럼 긴장되고 가슴은 두근거리지만, 힘내자. 응원한다. 파이팅이다!


*대화 인용문 출처-황보름 작가의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p.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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