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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뉴 Aug 11. 2022

'자유'를 생각해보다

제한되어야 할, 대통령의 ‘멍청한 자유’

요즘 부쩍 드는 생각이, 지금 우리나라의 수장은 대단히, 스스로 '자유로운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한 사람으로 인해 한 나라가 거의 '무정부 상태'로 돌아가는 것을 보며, 누군가의 자유가 타인에게 큰 피해와 고통으로 돌아올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회사를 나오기까지 고민하고 주저하던 순간들이 많았지만, 막상 결정을 실행하고 난 요즘의 나는 참 홀가분하고 자유롭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진정한 자유란,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프리랜서의 영역에 들어서고 보니 자유의 본질은, '내가 하고 싶지 않은 것들을 하지 않을 수 있는 것'에 닿아있다는 생각이 점점 강하게 든다. 눈을 간지럽히는 아침 햇살에 초조해하지 않아도 될 자유, 아픈 아이를 남의 손에 맡겨 두고 회사에 나가지 않아도 될 자유, 피곤에 찌든 몸을 하루 왠종일 끌고 다니지 않아도 될 자유, 부당한 요구를 하는 민원인 앞에서 친절을 가장하지 않아도 될 자유가 존재하는 삶이 품고 있는 자유 말이다.




'자유'라는 주제로 글을 적겠다고 마음먹고 보니 문득 얼마 전 아이와 나누었던 대화가 떠오른다. 여느 때처럼 자기 전에 동화책을 읽고 난 후 아이와 나는 동화책 속 내용에 관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그러다 아이가 불쑥 내게 이런 말을 던졌다.


엄마, 사람은 죽어야 진짜 자유로워지는 거야.

너무 놀란 나는 이 말을 하는 아이의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봤다. 이제 겨우 열 살인 아이지만, 때때로 나는 아이가 무심코 내던지는 말에서 도인에게서나 풍겨 나올 법한 '득도'의 경지를 느끼며 소름 돋는 순간들을 맞닥뜨리게 된다.  사실, 아이의 말이 조금 걱정스럽기도 했다. 혹여라도 죽음을 동경하는 그 어떤 싹이 숨어 있는 건 아닌지 염려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에게 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해...?"

"왜냐하면, 죽으면 하기 싫은 거 억지로 안 해도 되잖아.”


뭐 그런 질문이 있냐는 듯 아이는 무심히 대답했다. 아이가 어지간히 학교 가는 게 싫은가 보다 싶어 순간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아이가 내뱉은 말이 간단한 것 같으면서도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래서 윌리엄 워즈워드가 그의 시에서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라고 추앙했던 것일까.


아이가 한 말에 어느 정도 납득이 갔지만 내게 죽음을 미화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나는 살아 숨 쉬는 내가 느끼는 자유를 갈망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죽기 직전 방어기제로 '엔도르핀'이 마구 솟아난다는 사실에도, 대학교 시절 거의 죽음 문턱에 이르렀던 친구가 '막상 죽음을 앞두니 마음이 편안해지더라'라고 말한 얘기에도 이런 내 생각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금빛 노을로 물든 하늘을 볼 때, 감동의 폭풍우가 휩쓸고 간 후 왈칵 눈물이 솟아날 때, 마음을 울리는 아름다운 음악을 들을 때, 비 온 뒤 말개진 하늘에 은은하게 걸려 있는 무지개를 발견하게 될 때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자유와 그로 인한 행복이 내겐 너무도 소중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내가 어떤 대상을 보고 들을 때 생의 자유로움을 느끼는가에까지 생각이 이르게 되었고, 다음과 같은 것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내게 살아있는 자유로움을 느끼게 해주는 순간들:

* 집시 음악을 들을 때,

* 거리 위에서 춤을 추는 사람들을 볼 때,

* 재즈 가수의 스캣 - 의미가 없는 음절을 가지고 즉흥적으로 노래하는 미국식 재즈 창법 - 을 들을 때,

* 피아노 건반 위를 유영하는 손을 볼 때,

* 새들의 날갯짓을 마주할 때,

* 숨 막히게 아름다운 대자연 앞에서 숙연해질 때,

* 아무 음악에 맞춰 아무렇게나 춤을 출 때…


인간의 삶에 자유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인류의 역사를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기나긴 역사를 걸쳐 사람들은 자신, 혹은 타인을 위한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자신의 소중한 것들 - 심지어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목숨조차 - 을 포기하고 피 흘려왔다. 그러니, 삶에서 이러한 자유를 얻고 지키는 것만큼 중요한 일도 없으리라.


그렇지만... 다시 우리나라 수장의 얘기로 돌아와서, 누군가의 자유가 여러 사람들에게 해로 돌아간다면 그러한 자유는 구속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이러한 자유는 결단코 '진정한 자유'의 영역에 속할 수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만약 회사를 접고 프리랜서가 된 나로 인해 내 가족들이 피해를 본다고 하면 나는 당장이라도 다시금 어딘가에 속박되는 삶으로 돌아갈 용의가 있다. 그런데 무척이나(!) 다행스럽고 고맙게도, 나만의 착각일지도 모르겠으나, 가족들은 지금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너무도 적극적으로 응원해주고 있다.


그래서 나 자신을 반성하게 될 때가 있다. 짧은 여름방학을 맞은 아이들이 한껏 즐기고 있는 자유가 때때로 내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 때, '이러면 안 된다'라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마음을 다잡는다. 자신의 자유만큼이나 중요한 타인의 자유를 지켜주기는 왜 이리 힘든 것일까, 생각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의 수장만큼은 지금이라도 제발(!!) 정신을- 들 정신이라도 있는지 심히 의심스럽긴 하지만- 좀 차리고 국민들을 위해, 이 나라의 미래를 위해 대통령 코스프레에 머무르는 '멍청한 자유'를 포기해주었으면 하는 게 내 절실한 바람이다. 한 나라의 수장이라는 자리는 그만큼의 무게와 책임감이 따르는 매우 ‘특별한’ 자리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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