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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뉴 Oct 20. 2023

모녀가 함께 한 생애 첫 연극

- 연극이 시작되기 전 -


엄마와 병원에 다녀오는 길, 도로변 가로등에 매달려 펄럭이는 광고물이 눈에 들어왔다.

바람에 팔랑팔랑 나부끼는 깃발 사이로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연극 공연을 알리는 홍보물이었다.

제목은 <친정 엄마와 2박 3일>. 친정 엄마를 곁에 두고 있으려니 더 눈길이 가는 공연이었다.



시선이 끌렸던 건, 이 연극의 대략적인 내용과 내력을 알고 있어서이기도 했을 거다.

딸의 죽음을 다루고 있는 이 연극은 실제 오랫동안 주연을 맡았던, 지금은 고인이 된 배우 전미선이 10년 간 강부자와 호흡을 맞춘 작품이기도 하다. (현재는 배우 윤유선이 그 역할을 이어나가고 있다)

홍보물이 매달린 가로등에 시선을 빼앗긴 그 순간, 엄마와 함께 이 작품을 보러 가야겠다는 마음이 솟구치듯 올라왔다.


 "엄마, 연극 보러 간 적 있어?"

 "아니."

 "나랑 저거 보러 갈까? 재미있을 것 같은데...?"

사실 큰 기대 없이, 나부끼는 깃발을 가리키며 툭, 던지듯이 내뱉은 말이었다. 엄마에게서 '안 한다.'라는 대답이 돌아올 거라 짐작하며.

 "가까이에서 하는 거면..."

어라, 웬일인지 엄마는 '싫다'는 반응 대신 '~라면'이라는 조건을 붙였다. 조건이 맞으면 가겠다는, 행동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 반응이었다. 그런데 공연 장소를 확인해 보니 그리 가까운 곳은 아니었다. 그리하여 나는 공연을 보러 가겠다는 마음을 반쯤 접은 채 한동안 우리가 나눈 대화를 잊고 있었다.



그러다 연극이 시작되기 며칠 전, '연극을 보러 가야겠다.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마음에 불현듯 휩싸였고, 들이닥친 공연 날짜에 다급해진 나는 일단 표를 질러버렸다.

그러고 난 후, 엄마를 설득하기 위해 써먹곤 하는 동생 찬스를 적극 활용했다. 나는 그 길로 동생에게 카톡을 날렸다.

 '엄마랑 처음으로 같이 연극 보러 갈까 하는데, 연극 보러 다녀오라고 엄마한테 바람 좀 팍팍 넣어주라!'

역시나 동생은 내 계획을 반기며 엄마를 구슬리는 데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연극 한 번 보지 못했다는 억울함이 작동한 것인지, 동생과 나의 설득이 효력을 발휘한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주연 배우와 제목에 이끌려 연극 그 자체가 보고 싶었던 건지 알 수 없으나, 엄마는 실로 오래간만에 '같이 보러 가자'라며 내게 긍정의 끄덕임을 보여주었다.



그때부터 내 마음은 분주해졌다. 흔치 않게 내게 온 '모녀 동반 관람'의 기회를 온전히 즐겨야 한다는 생각으로. '거리가 멀어 혹시 엄마가 멀미를 할지도 모르니 멀미약부터 사두어야겠다, 입고 갈 옷은 있느냐, 특별히 거금을 써서 좋은 자리로 예매를 했으니 배우들 얼굴이 잘 보일 거다...' 등등 온갖 얘기를 엄마에게 늘어놓으며 미리 필요한 준비물들을 확인했다.



엄마의 확답을 듣자마자 부리나케 약국을 들러 멀미약부터 샀다. 때마침 근처에선 일주일에 한 번 있는 아파트 장터가 열리고 있었다. 각종 먹을거리들에서 풍겨 나오는 달콤한 냄새가 기분 좋은 감정을 배가시켜 주는 듯했다. 나는 홀린 듯 부지런히 지갑을 열고 닫았고, 이성을 되찾았을 땐 엄마가 좋아하는 녹두전과 여러 주전부리들이 담긴 봉지를 두 손 가득 든 채, 리듬감을 실어 앞뒤로 살랑살랑 흔들어 대며 신이 난 발걸음으로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한 시간 남짓한 그 시간 동안 흡사 마법에 걸려 소풍을 앞둔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되돌아간 기분이었다.

오묘하게 기분 좋은 조합

- 연극의 막이 오른 후 -


노모와 딸의 얘기를 담은 연극인지라 보통의 공연에서는 마주치기 힘든 어르신들이 많이 보였다. 나는 엄마보다 더 연륜 있어 보이는 분들이 보일 때마다 평소 활동을 거의 하지 않는 엄마를 향해 (각성을 촉구하는) 말을 쏟아냈다.


 "저기 봐! 엄마 보다 더 나이 많아 보이시는데... 와, 지팡이 짚고서도 연극 보러들 오시네... 강부자도 엄마보다 훨씬 나이 많은데도 2시간 가까운 연극 공연을 하잖아..."

내 말을 따라 엄마의 시선이 부지런히 사람들 사이를 오고 갔다.

 "어떻게 다들 알고 오는 거야...."

엄마는, 평소라면 엄마가 집안에만 머물러있을 그 시간에 비슷한 연배의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이 공연을 보러 온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신기했던 모양이다. 단순히 몸을 움직이는 것을 넘어서, 공연 정보를 인지하고 친구들과 함께 즐기러 오는 동년배들의 모습이 엄마에게는 ‘문화충격’처럼 다가왔던 것 같다.



엄마는 신기해하는 와중에도 '평생 돈 버는 기계처럼 살아온, 그럼에도 제대로 돈 한 푼 써보지 못했던' 날들이 더 억울하게 느껴졌던 건지, 엄마의 퇴직금이 아빠로 인해 순식간에 날아갔던 그 순간을 다시금 떠올리며 분노를 표출하기도 했다.

어쩌면 지금 엄마에게, 남은 인생을 그나마 덜 억울하게 보내기 위해서 필요한 건 이런 '적극적 분노'의 감정인지도 모르겠다. 단순히 집에 앉아서 느끼는 '체념에 가까운 분노'가 아닌. 하이브의 설립자 방시혁도 말하지 않았던가, 자신의 성공에는 '분노'가 가장 큰 원동력이 되어 주었다고.

(좌) 어르신들로 가득한 공연장 (우) 공연 시작 전과 공연 종료 직후

연극은 인터미션 없이 두 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4층으로 이루어진 극장 가득 쩌렁쩌렁 울려 퍼지던 배우들의 연기는 관객들의 눈물샘과 웃음 버튼을 쥐락펴락, 자유로이 오가며 시간이 순식간에 흐르게 하는 마력을 발했다. 특히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극한의 감정연기를 열정적으로 보여준 노배우의 연기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연극이 끝난 후 이어진 배우들의 무대인사 시 관객들은, 역시나, 노배우에게 가장 큰 환호와 박수로 화답했다.

한 가지 문제는, 넓은 공간으로 인해 소리의 울림 현상이 있다 보니 귀가 밝지 못한 어르신들에게 대사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는 것이었다. 엄마의 경우에도 거의 반 정도의 대사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 공연이 끝난 후 내가 장면장면 부연 설명을 해주어야만 했다.



그럼에도 엄마는 생애 처음으로 공연장이라는 곳에 몸을 담근 채, 다른 관객들과 함께 호흡하며 연극을 감상했다는 사실 자체에 묘한 감동을 느끼는 것 같았다.

사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함께 본다는 마음으로 나선 길이었다. 그러나 하나의 연극이 막을 내리고 나자 다음을 기약하고 싶어졌다. 언제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것이 머지않은 시간이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억울한 과거를 조금이나마 보상받기 위해서라도 다음, 또 그다음을 맞이하고 싶다는 소망을 품은 채, 선선한 가을바람 속 생애 첫 모녀의 '연극 나들이'는 이렇게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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