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뉴 Sep 18. 2023

모녀의 막말 연대기

다툼의 발단은 내 입에서 나온 한 글자에서 비롯되었다.

짜증에 섞여 무의식 중에 튀어나온 그놈의 '처'. 처먹다, 처자다, 처놀다, 에서 볼 수 있는 접두사 '처' 말이다.



평소 엄마는 아이들의 양치 유무를 지나치게 신경 쓰는 편이다. 특히 하루 중 마지막으로 행해지는 '밤 양치'에 과도한 집착을 보이곤 한다. 마치 엄마의 일과 중 반드시 해내야 하는 일인 것처럼. 그래야 다리를 뻗고 편히 잘 수 있는 사람처럼. 이러한 엄마의 태도는 내게로 날아드는 반복적이고 '확인 사살적인' 질문을 통해 내 인내심의 한계를 건드리곤 한다. 그런데 사건이 벌어진 날에 엄마는 유달리, 아니 거의 병적인 수준으로, 아이들의 양치에 매달리는 모습을 보였다.



밤 11시 무렵, 조금만 있으면 아이들이 자기 전 양치를 할 시간이었다. 이미 둘째 녀석은 양치를 마친 후였고, 조금 더 늦게 잠자리에 드는 첫째만 양치를 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10시 반이 넘어간 무렵부터 일찌감치 엄마는 내게 '어서 아이들 양치를 하게 하라' 강요했고, 11시 즈음 나는 엄마의 반복되는 요구에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그러던 차에 엄마에게서, 내 인내심이 가까스로 부여잡고 버티고 있던 마지막 줄을 끊어내는 결정적인 발언이 나와버렸다.



  "둘째도 양치 안 했다. 이제 자야 하니까 얼른 하라고 해라!"

엄마는 이렇게 말하며, 안절부절못한 채 첫째의 방과 둘째가 있던 거실로 이어지는 중앙 통로를 몇 번이고 오가며 아이들 동태를 살폈다.



  "엄마, 쭈니는 양치 다 했어. 내가 좀 전에 봤어!"

 분명 둘째가 양치한 모습을 목격했던 내가 답답함과 약간의 짜증을 실어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다. 안 했다. 안 했어! 나는 쭈니 양치하는 거 못 봤어!”

엄마는 역시나 내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고, 자신이 보지 못했기 때문에 아이가 양치를 하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고 확신에 차서 말했다. 이 지점에서 그만 문제의 '처'가 내 입 밖으로 튀어나와 버린 것이다.



  "엄마가 맨날 그렇게 방에 '처박혀' 지내니까 못 본 거지!"

하루종일 몇 평 되지 않는 방에 갇혀 지내는 엄마에 대한 답답함과, 평소 내 말을 귀담아 들어주지 않는 엄마의 무심한 태도에 쌓여있던 그간의 묵은 감정들이 그만 '처'라는, 침이라도 튈 듯 거친 접두사를 통해 나로부터 엄마에게로 사정없이 날아들었고, 엄마는 놀란 표정과 함께 '얼음'이라고 외친 사람처럼 그 자리에 미동도 하지 않고 멈춰 서 버렸다. 말을 내뱉은 나도 순간 몹시 당황했고, 귀가 그리 밝지 못한 엄마가 그저 '처'를 제대로 못 들었기만을 바랐으나, 엄마는 희한하게도 그 한 글자만은 기가 막히게 알아듣고는 잠시 후 내게 성난 표정으로 반격하기 시작했다.



  "너 방금 엄마한테 처(!)박혔다 그랬냐?! 어떻게 된 딸이 엄마한테 그렇게 심한 말을 할 수가 있냐?!!"

잘못했다는 사실을 나 스스로도 인지하고 있었지만, 나는 엄마에게 쉬이 사과의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자존심 때문이라기보다는, 가슴속에 '한'처럼 맺혀있던 억울한 마음이 불쑥 솟아 나왔기 때문이다. '어떻게 그렇게 심한 말을...'을 이라고 엄마가 외치던 그 순간, 내 머릿속에는 엄마가 이제껏 내게 던졌던 막말의 ‘연대기’가 그려지고 있었다. 사과 한 번 받아보지 못한 채, 내 가슴속에 돌덩이처럼 남아 있는 지난 과거가. 그 역사를 떠올린 나는 방귀 뀐 놈이 성질낸다고, 엄마보다 더 목소리를 높여 이렇게 말하고야 말았다.



"내 말이 틀린 건 아니잖아?! 그리고, 심한 말은 엄마가 나한테 훨~씬 더 많이 했거든?!! 나 싹 다 기억해. 모조리 읊어볼까?!”

이렇게 말하는 내 앞에서 이번에는 엄마가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결국 엄마의 표정이 내가 엄마의 막말 연대기를 소리 높여 읊어대게 만들었다. 내가 항변한, 아니 폭로(?)한 딸에게 한 엄마의 막말을 이번 기회에 내 얼굴을 알지 못하는 독자들에게 다 일러바쳐야겠다. 짐스럽게 내 안에 알알이 맺혀있는 막말의 기억들을.



1. 고등학교 시절, 어떤 문제(정확한 사안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로 나와 다투던 엄마 왈,

   "너는 내가 죽어도 눈물 한 방울 안 흘릴 애다!" 


- 난 그럴 만큼 매정하고 무도한 딸은 아니다.ㅠ 그리고 정말 얌전하게 사춘기를 거쳐왔다. 그로 인해 사춘기에 대한 면역력이 없는 엄마는 정작 할머니가 되어 손주들의 사춘기에 적응하지 못해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중이다.



2. 20대 때 짧지 않은 기간 사귀었던 수련의 자식과 헤어진다고 말했을 때 엄마 왈,

   "걔랑 헤어질 거면 엄마랑 인연 끊자!" 


- 엄마는 도대체 누구 편인가?! 딸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엄마는 이유조차 제대로 들어보려 하지 않았다. 엄마에게 중요했던 건 그 자식이 '수련의'였다는 사실이었다. 겨우 그런 녀석 때문에 천륜을 끊자는 말을 딸 앞에서 그리 쉽게 내뱉다니… 이러니 내가 배신감에 치를 떨며 거실 바닥에 드러누워 시위를 할 수밖에!(자세한 건, 브런치북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아서>의 ‘2대에 걸친 이성의 흑역사를 끊어내다’를 참고)



3. 첫째를 돌봐주고 있었던 당시, 엄마가 내게 요구했던, 그렇지만 내가 부당하다고 생각했던 일에 대해 내가 거절의 의사를 밝히자 엄마 왈,

  "너는 나한테 토 달지 마라!"


- 분명 엄마는 '너도'가 아니라 '너'이라고 말했다. 남동생에게는 결코 하지 않을 표현! 이 발언 뒤에 엄마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하고 싶어 하는 듯했다. '내가 너의 첫째를 키워주고 있으니, 너는 내 신세를 지고 있는 거다. 그러니 너는 무조건 엄마 말을 들어야 한다…’



아마도 그때의 엄마는 엄마 평생에 딸자식의 신세를 질 일은 결단코 없으리라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사람일이 어찌 그러한가. 엄마는 노년에 나와 내 짝꿍의 집에서 불편한 동거를 하게 되리라고는 눈곱만큼도 생각하지 못했을 터이나, 어찌 될지 모르는 게 세상사. 어제의 '공(攻)'이 내일의 '수(守)'가 될 수 있는 것이 인생인 것을… 어째서 나보다 강산이 세 번은 더 바뀌도록 긴 세월을 살아온 엄마가 이랬을까, 지금도 난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물론, 이것 말고도 더 있다. 하지만 다음을 위해 조금 아껴둘 필요도 있는 듯하여 난 이쯤에서 멈췄다. 그럼에도 엄마는 내 앞에서 표정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저 ‘그걸 아직도 기억하냐?! 내가 언제 그랬냐?’라고 반복해 말할 뿐이었다.



원래 상처가 되는 말을 던진 사람은 던지고 나서 돌아서면 잊기 마련이다. 자신이 던진 돌이 어디로 어떻게 날아갔는지, 그것이 상대에게 얼마큼 깊고 심각한 상처를 냈는지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 상처를 입은 사람만이 오래도록 아물지 못한 상흔을 끌어안고 사는 법이다. 아빠와의 관계에서 그런 상황을 충분히 겪어왔을 엄마가 왜 나와의 관계에서 그때의 경험과 교훈을 못 살리는 것일까, 답답한 마음이 컸다.

가장 큰 위로도, 가장 큰 상처도 내가 가장 믿고 가깝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서 얻는 게 아니던가. 그래서 편한 사이이지만 그 관계를 너무 수월하게 대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고.




결국, 나는 얼마 버티지 못하고 '처'라고 뱉어버린 내 막말에 대해 엄마에게 사과를 했다. 엄마에게선 이번에도 끝내 사과 비슷한 것도 받아내지 못했으나. 역시나, 아빠와의 지난 세월을 꿋꿋이 견뎌낸 엄마가 무심하게 버티는 데 있어선 나보다 두 수는 위인 듯하다.

이리하여, 처’ 한 글자로 인해 촉발된 모녀간의 다툼은, 켜켜이 쌓여온 ‘증(憎)'의 역사에 선명한 테두리 하나를 더하며 마무리되고야 말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다시, 독서왕으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