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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뉴 Nov 03. 2023

아파트 건설 시행사 설명회를 다녀와서

후기 1. - 걱정과 분노

첫째가 다니는 학교 알리미 앱으로 아파트 공사 관련 설명회(도시개발사업 교육환경평가)를 개최한다는 안내 공지가 날아들었다.

조만간 학교 주위로 1,800 세대에 가까운 아파트를 건설할 예정인 모양이었다.

평소 건물이나 부동산에 관해서 크게 관심이 없는 나와 짝꿍이지만, 아이가 절대적인 시간 몸담고 있는 학교 주변으로 3년 간의 공사 기간을 거쳐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선다고 하니 아무래도 신경이 쓰였다.

며칠 생각해 본 우리는, 그들이 '무슨 얘기하는지 한 번 들어보기나 하자'는 생각에 설명회에 참석하기로 의견일치를 봤다.



평일 오후라 그런지 생각보다 참석한 학부모들이 많지는 않았다.

우리는 입구에 비치된 설명회 자료와 생수 한 병을 집어든 채, 단상에서 멀리 떨어진 좌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잠시 후, 학교장의 간단한 인사말에 이어 시행사 측에서 나온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참석한 학부모들에게 무대 위 ppt에 올라와 있는 자료들을 보며 천천히 설명을 이어갔다.



처음에 무심코 듣고 있던 나는, 시간이 갈수록 단상 위 시행사 측 직원에게 온 시선과 청력을 집중하게 되었다. 설명을 들으면 들을수록 공사에 대한 위기감과 경각심이 커져갔다.

그러한 위기의식은, 설명이 끝난 후 이어진 질문과 답변 시간 동안 흡사 오븐 안에서 구워지고 있는 빵처럼 급격히 부풀어 올랐다. 머리로 열감이 올라오는 것 같았다. 나는 분노하고 있었다. 학부모가 던지는 구체적이고 핵심을 찌르는 질문에 대한 시행사 측의 대답이 신뢰를 주기는커녕, 일단 대충 무마하고 넘어가겠다는 태도가 엿보였기 때문이다. 시작하기도 전에 저런 태도를 견지한다면, 나중에 혹여 공사과정에서, 혹은 공사 종료 후 위험한 사태가 발생했을 시 어떻게든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려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정적으로 내가 분노하게 된 지점이 있었다. 그건 바로 무의식적으로 드러난 시행사 측의 '오만함'이었다. 제대로 된 대책 하나 없이 공사를 강행하려는 듯한 시행사 측의 태도에, 학부모들이 여러 차례 공사 자체에 대한 반대 의견을 표명하자, 시행사 측 직원은 급기야 '여러분들이 반대한다고 해서 (어차피) 인허가에 영향을 미치지는 못한다'라는 대꾸를 내뱉었다. 그 말의 속내는, '당신들은 설명회를 듣기나 하면 되고, 당신들이 내는 의견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리라. 그 말을 하는 직원의 말에는 확신이 서려 있었다. 이제까지의 경험을 통해 단언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자리에 참석한 학부모들은 그저 시행사 측의 설명을 듣고 수긍하기나 하면 되는 들러리란 말인가? 그렇다면, 도대체, 학부모 대상 설명회는 왜 개최하는 것인가.



학교 앞도 아니고, 학교를 포위한 채 이루어지는 공사다. 주변의 연약한 지반으로 인해 학교 건물에 금이 가고, 날아드는 비산 먼지로 인해 체육 시간을 제대로 운영하지도, 교실 창문을 열지 못해 환기도 못하는 기간이 3년 간이나 이어지는 공사. 어쩌면 건물이 붕괴되는 최악의 상황까지 갈지도 모르는 공사다. 아이들 등하교 길을 수시로 위협하며 오고 갈 거대한 공사 차량에 아이들과 학부모들은 매일같이 가슴 졸이며 지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내년에 착공에 들어가겠다는 대규모 공사에 아직 명확히 정해진 게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반복해서 한다는 얘기가 기껏 ‘학교 측과 협의해 OO 하도록 하겠습니다.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문제없습니다..'였다.  모르는 내 눈에도 문제가 산더미만큼 쌓여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말이다.



솔직히 말해, 나는 이제 주최 측에서 무슨 말을 해도 일단 의심부터 하게 된다. 이 사회가 시민을 그리 만들고 있지 않은가. 가만히 있으면 안전하다고 주장하던 '힘' 앞에서 가만있지 않았던 사람들이 결국 살아남았고, 안전하다는 마크를 달고 있었던 살균용품은 위생을 지키기는커녕 사람들의 목숨을 소리 소문 없이 천천히, 그리고 잔인하게 앗아갔다. 길을 가다가도 수많은 목숨을 잃는 세상이 펼쳐지고 있는 지금, 그럼에도 책임지는 이 하나 없는 현실 속, 눈에 선명하게 그려지는 위험을 앞에 둔 학부모들에게 '의견을 내도 소용없을 것'이라고 말하는 자들을 어떻게 믿고 아이들을 학교로 내몰 수 있을까.



사람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이어지던 어느 순간, 학부모 중에서 이 사안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듯한 남성 한 분이 신랄하고도 통쾌하게 반박 의견을 냈다. 기다렸다는 듯이 학부모들 사이에서 박수와 응원의 환호가 터져 나왔다. 설명회장 한 편에서는 '시청 앞에 가서 피켓 시위라도 해야 하는 건 아닌가요'라는 말까지 들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시행사 직원의 표정은 당혹감으로 가득했다. 난처한 모습의 직원은 이후로 도무지 설득력 없어 보이는, 뜬구름 잡는 듯한 말을 이어갔다.



무엇보다 내가 가장 납득할 수 없는 것은 지자체의 태도다.

왜 이런 공사를 진행하라고 허가해 준 것일까? 조금만 신경 써 들여다본다면, 아이들의 건강과 안전에 상당한 위협이 있는 공사라는 걸 알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모르면서 허가해 준 건지, 알면서도 그냥 눈 감아 준 것인지. 사실 전자도, 후자도 모두 다 대단히 큰 문제지만.

결국 지자체가 더 중요시하는 건, 아이들에게 건강하고 안전한 환경을 제공하는 것보다 건설업 부흥과 개발로 인한 도시의 양적 성장에 있는 것인지... 이런 환경의 나라에서 과연 사람들이 안심하고 아이를 낳고 키울 결심을 할 수 있을지 몹시도 의심스럽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우리 아이가 살아갈 미래가 어두워 보여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리고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정말 시위라도 해야 하는 것인지, 시행사 측의 말대로 우리의 목소리가 무시되는 거라면 각자도생 할 길을 찾아야 하는 건지.

이래도 저래도 한숨과 분노가 솟아 나오는 상황이다.


이날 설명회에 뒤이어 소름 돋는 에피소드가 있었어요. 다음 글에서 전해 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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