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영 기간: 2017. 3. 25. ~ 2017. 5. 21. (총 16부작)
* 방영 채널: OCN
* 장르: 범죄, 스릴러
* 주 시청 경로: OCN 본방 + 재방
그래서인지, 독자의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는 요즘의 웹소설들은, <재벌집 막내아들>처럼 타임슬립을 활용하는 것이 대세다.
특히, 스릴러 장르에 접목된 타임슬립 설정은, 극적 긴장감을 끌어올리고 시청자들의 흥미를 유발하는 데 매우 효과적인 역할을 한다. 무전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설정의, 김은희 작가의 <시그널>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번에 언급할 작품은, 범죄스릴러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매력적일 타임슬립 스릴러, <터널>이다.
드라마 <터널>의 시대적 배경은 1986년과 2016년이다.
<터널>, <시그널>과 이 글의 말미에 언급할 OCN의 또 다른 타임슬립 스릴러 <라이프 온 마스>도, 현재와 대비되는 타임슬립의 과거 배경으로 1980년대가 등장한다. 추측해 보건대, 70년대는 시대적으로 너무 멀어 보이고, 90년대는 컴퓨터와 스마트 기기가 본격적으로 출현하기 시작한 시기이기에, 현재 시점과 적절히 대비되면서도 심리적으로 지나친 거리감을 느끼지 않게 하기 딱 좋은 시기가 80년대이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여타의 타임슬립과 <터널>이 가장 차별화되는 지점은, 인물 설정이다.
다른 작품에서는 대개 같은 인물이 서로 다른 시간대에 존재한다. 예를 들어, <재벌집 막내아들>에서는, 현재 시점에서 기업의 샐러리맨인 윤현우(송중기)가 과거로 건너가 재벌집 막내아들 진도준이 되지만, 윤현우 자신도 주변 인물들도 겉모습은 시대를 불문하고 그대로이다. 따라서 인물에 대한 추리를 해볼 흥미로운 지점이 없다. 그러나 <터널>에서는 30년이라는 시간을 훌쩍 건너온 주인공 박광호(최진혁)를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주변 인물들의 모습이 (지나온 세월만큼) 변해있다. 특히, 박광호의 자녀, 30년 전 연쇄살인범, 30년 전 살인 사건 피해자의 아들 등, 드라마의 메인 축을 이루고 있는 주인공들의 모습이 과거와 현재시점에서 판이하므로, 사건을 따라가 보며 과거의 어떤 인물이 현재의 어느 인물인지 추측해 보는 재미가 있다.
이야기는 가상의 도시 '화양'에서 부녀자를 상대로 한 연쇄살인사건이 발생하면서 시작된다.
희생자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 뒤꿈치에 펜으로 찍힌 듯한 점이 발견되고, 그 점의 개수는 몇 번째 희생자인지와 일치한다. 희생자의 수가 늘수록 뒤꿈치의 점의 개수도 더해지는데, 희한하게도 다섯 번째 희생자에게서는 다섯 개가 아닌, 여섯 개의 점이 발견된다. (이유는 2016년으로 건너간 박광호에 의해 밝혀진다) 이를 의아하게 여기던 화양서 강력계 형사 박광호는, 연쇄살인 용의자로 추정되는 인물을 쫓던 중, 터널에서 용의자와 몸싸움을 벌이다 뒤통수를 얻어맞고 의식을 잃는다. 얼마 후, 다시 정신을 차린 박광호는 터널을 빠져나오게 되는데, 어쩐 일인지 그가 터널 밖에서 접한 세상은 그가 이전에 알던 곳과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그가 30년 뒤의 세월로 건너왔기 때문이었다.
시대적 배경과 도시 이름, 그리고 드라마 속 일련의 부녀자 살인사건은, 80년대 말과 90년대 초반에 걸쳐 발생했던 ‘화성연쇄살인 사건'을 연상시킨다.
30년 전 미제사건으로 남았던 연쇄살인사건은, 30년 전에서 2016년 현재로 건너온 주인공 박광호가, 이제는 성인이 된 그의 다음 세대와 공조하며 점차 실체를 드러낸다. 86년 당시 강력계 형사였던 박광호가, 졸지에 88년생 박광호로 살게 된 현재 시점에서, 동년배가 되어 버린 자녀 세대와 부대끼는 장면들을 지켜보는 즐거움도 드라마의 재미를 이끄는 한 축이다. 흡사 <성균관 스캔들>에서 남장 여자인 김윤희(박민영)의 정체가 드러날 위기에 처했을 때와 유사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여기에, 의문사로 죽은 '실제 88년생 박광호(차학연)'의 정체에 대한 수수께끼가 더해지며, 상황은 더욱 긴박하게 흘러간다.
<터널>은, 얼굴 뒤에 무언가 감추고 있는 듯한 주인공 캐릭터들이 스릴러 장르와 어우러져 긴장감과 궁금증을 더해주는 역할을 한다.
심리학 교수지만 자신의 심리를 잘 드러내 보이지 않는 신재이(이유영), 싸가지 없지만 어쩐지 말 못 할 사연을 안고 있는 듯한 강력계 형사 김선재(윤현민)와, 주인공 박광호를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비밀스럽게 관찰하는 강력 1팀 팀장 전성식(조희봉) 형사까지. 등장인물들은 때로는 심각하게, 또 때로는 짠하게, 그리고 또 어떤 때는 코믹한 관계를 엮어나가며 적절히 시청자와 밀고 당기기를 이어간다.
<터널>에 등장하는 두 범인들 사이에 일어나는 갈등도 볼 만하다.
실제로 연쇄살인범에게는 자신이 저지른 행위에 대한 자부심 같은 것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누군가 자신이 '대단하다'라고 생각하는 지위에 흠집을 내거나 도전장을 내민다고 생각되면 몹시 자존심 상해하기도 한다고. 드라마 <터널> 속 진범도, 자신의 자긍심을 건드린 가짜 범인 때문에, 30년간 멈추고 있었던 연쇄살인을 다시 시작한다. 한 명은 30년 전 연쇄살인사건의 진범, 또 다른 한 명은 사건 현장의 목격자였다. 누군가는 '어둠' 속에 숨어 있었고, 다른 누군가는 '빛'에 숨어서 우리의 일상을 함께 누리고 있었다. 착하고 성실한 시민의 얼굴 뒤에 본모습을 감춘 채, 음흉한 눈빛으로 또 다른 희생자를 물색하면서 말이다. 비단 드라마뿐 아니라, 미제 사건으로 남은 범인들 대부분이 그렇게 지금 우리 곁에 머물고 있을 것이다.
<터널> 속에는 '실적'에 시달리거나 집착하는 형사는 나오지 않는다.
그들은 억울하게 죽은 피해자를 위해 몸을 사리지 않고 사건을 파헤치고 범인과 대적한다. 흉기에 찔리는 것마저 감수하며 그야말로 '강력한' 강력계 형사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에게는 30년 동안 묵혀져 있던 미제 사건도 현재 사건 못지않게 중요하다. 영문도 모른 채 괴롭게 버텨온 희생자 가족들의 세월을 안타까워하며, 더 이상 억울하고 분통한 죽음은 없어야 한다는 마음 가짐으로, 어제도 오늘도 사건에 집요하게 매달린다. 이러한 형사들과 심리학자의 공조로, 드라마 2/3 지점에서 드디어 가면 뒤 진짜 범인의 얼굴이 드러난다. 체스판의 체크메이트가 던져지듯, 주인공과 범인은 30년 만에 마침내 얼굴을 마주하고 선다.
<터널>은 드라마가 보여줄 수 있는 이상적인 결말로 끝맺는다.
연쇄살인범은 응당한 죗값을 치르고, 아들은 억울하게 죽은 엄마의 복수를 하며, 30년 전 살인 사건의 용의자를 눈앞에서 놓쳤던 형사는 성공적으로 범인을 검거한다. 손에 땀을 쥐며 달려온 과정에 비해 다소 순한 맛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선이 승리하는 순간을 가슴 졸이며 기다려온 시청자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성실한 결말이다.
시청자는 현실에서 맛보기 힘든 즐거움과 위안을 얻고자 드라마를 찾는다.
어떤 이들은 '현실이 이토록 버거운데 굳이 범죄스릴러나 공포물을 보고 싶지 않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범죄스릴러물이 주는 가슴 쫀득쫀득한 긴장감을 즐기는 나조차도, 드라마를 보는 매번 현실과는 다른 '완전한 해피엔딩'을 바라는 마음이 있다.
그런 자각이 들 때마다, 드라마를 찾지 않아도 될 만큼 현실이 편안하고 정의로웠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드라마의 결말이 조금 더 어둡고 씁쓸하더라도, 그저 아무 거리낌 없이 ‘이 드라마 재미있었어.'라고 말하며 미소 지을 수 있는 현실이었으면, 억울한 죽음을 최소화하기 위해 진심을 다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인다.
진정으로 건강한 사회란 무릇, 시민들이 자신이 속한 사회를 전적으로 믿고 마음 편히 지낼 수 있는 곳일 테니 말이다.
= 함께 보면 좋을 OCN의 타임슬립 범죄스릴러 =
* 방영 기간: 2018.06.09. ~ 2018.08.05. (16부작)
* 주인공: 한태주(정경호), 강동철(박성웅), 윤나영(고아성) 외
* 원작: 영국 BBC의 <Life On Mars>(2006)
* 타임슬립 연도: 1988년 - 2018년
- 정경호와 박성웅의 활약이 돋보이는 웰메이드 타임슬립 범죄스릴러물
- OCN은 범죄스릴러 마니아들을 위한 작품들을 많이 선보인다. 여기에 언급한 드라마 이외에도 숨어있는 보석 같은 작품들이 꽤 있으니, 스릴러물을 좋아하신다면 OCN에 방영된 그간의 리스트들을 한 번 훑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 하루를 마감하는 깊은 밤, 긴장감 넘치는 스릴러물에 맥주 한 잔을 곁들여, 밋밋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