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뉴 Apr 15. 2024

<바람의 세월>, 행동하는 기억

열 번째 4월이 돌아왔다.

십 년 전 '기억하겠다'라고 다짐하던 내 마음을 되새김질하며, 세월호 이후 10년의 세월을 담은 다큐멘터리 <바람의 세월>을 관람했다. 올해는 초등학생인 아들 녀석도 우리의 기억 의식에 동참했다. 실제 세월호 단원고 희생자 학생의 아버지이기도 한 문종택 씨가, 김환태 감독과 함께 공동감독으로서 제작에 참여한 <바람의 세월>은, '기록으로 남겨두겠다'는 아버지의 절박한 심정으로 시작한 촬영에, 전문가의 손길이 합쳐져 하나의 작품으로 탄생한 다큐멘터리다.



작품은 7년 전, 대통령 박근혜의 탄핵안에 대한 헌재의 주문이 발표되는 시점으로부터 시작된다.

탄핵을 선고하는 주문이 발표되자, 한 자리에 모여 헌재의 최종 결정을 애타는 심정으로 기다리던 세월호 유가족들 사이에서 기쁨의 환호와 안도의 탄식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다.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에 두어야 할 정부가, 국민의 소중한 생명을 지켜내기는커녕, 단식하는 유가족들 앞에서 폭식과 조롱을 일삼던 세력을 방관하며, 참사의 원인규명은 뒤로한 채 피해보상을 빌미로, 유가족들을 자식의 죽음으로 '시체 팔이'나 하려 드는 사람으로 내몰리게 만들었던 죗값을 치르던 순간이었다. 그때 유가족들이 흘렸던 눈물에는 처절하고도 간절한 ‘바람’이, 앞으로 이 사회가 더 나아지리라는 '희망'이 담겨있었을 것이다. 부모로서, 자식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미안함과 죄책감도 조금이나마 덜어낼 수 있었을 테다. 그렇게 타오른 민심은, 거대한 촛불의 행렬로 새로운 정권의 창출로 이어졌다.



그리고 칠 년이 흘렀다.

그날의 희망은 속절없이 사그라들었고, 우리는 길 위에서 또 다른 참사를 겪으며, 그때와 별반 달라지지 않은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 책임져야 할 사람들은 고개 빳빳이 들고 여전히 국가 요직을 차지하고 있건만, 10년 전 유가족들은 되풀이되는 참사가 자신들의 탓이라고 가슴을 치고 있다. 그들이 정부와 제대로 싸우지 못했기 때문에,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이끌어내지 못했기 때문에 비극적인 일들이 반복되는 것이라고 자책한다. 그렇게 죄인 아닌 죄인이 된 유가족들이 또 다른 유가족들을 끌어안으며 가슴 아픈 연대를 이어가고 있다.



언제쯤이면 우리 사회가 이러한 유가족들의 눈물을 따뜻이 품을 수 있는 곳이 될까?

다큐멘터리를 보는 100여 분, 함께 슬퍼하고 분노하며 다시금 잊지 않겠노라 다짐했지만, 돌아서 나오는 마음은 좌절감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한 가지 희망을 보았다면, 아이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다는 것. 그렇다면 우리의 미래가 조금은 나아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자식을 잃고, 살아도 살아있지 않은 나날들을 보내고 있는 유가족들과, 그들의 아픔을 공감하는 이들이 조롱받고 숨죽여 살아가야 하는 세상은 아니기를….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맞아, 여전히 길 위를 떠돌고 있는 유가족들을 보며 이렇게라도 잊지 않겠다는 마음을 끄집어내 다시금 윤을 내어본다. 세월호를 거론하는 것조차 색깔론에 내몰려 금기시되다시피 하는 이 사회에서, 미약하나마 도움이 돼 보고자 그 이름을 불러본다. 그들의 빛날 수 있었던 세월을 앗아간 '세월호'를. 이 작품을 보는 것 자체가 (용기 있는 기억연대의) ‘행동’이 되기를 바란다는 단원고 희생자 '고(故) 문지성'양의 아버지, 문종택 감독의 간절한 바람에 깊이 공감하며, 팽목항에 부는 바람이 더 이상 그들을 아프게 하지 않기를 바라며, 그들의 오랜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염원한다.




- 2015년 초, 단원고 2학년 교실 복도 -

어린이집에 다니던 딸아이는, 바다 위에서 하늘나라로 떠난 언니 오빠들에게 편지를 썼다.
이제 막 글자를 배우기 시작한 자그마한 손으로 포스트잇에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쓴 짧은 편지를 보며 울컥하면서도, 내가 목도하고 있는 상황이 믿기 힘들 만큼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그 시절 꼬맹이는 얼마 후면, 그때의 언니 오빠들과 같은 나이가 될 것이다.
과연 우리는, 지난 십 년의 세월 동안 이 세상이 더 안전한 곳이 되었노라 말할 수 있을까.


- 2024년 4월, 안산 단원구 -

세월호 참사 이후 10년. 안산 단원구의 4월은 온통 샛노란 빛깔로 가득하다.

동네 길가에 지천으로 널린 개나리꽃의 노랑은 그저 어여쁘기만 한데, 안산의 봄이 품고 있는 색채는 슬프고도 아련하다. 길을 걷다 마주친 구청간판과 현수막마저 마음을 아리게 한다.
그러다 시야에 들어온 컨테이너 가건물들. 유가족들이 모여 함께 얘기를 나누고, 행사를 여는 이곳. 도시 변두리 황량한 곳에 버려진 듯 자리하고 있는 모습에, 지난 10년 우리 사회가 세월호 유가족들을 대하던 모습들을 되짚어보게 된다.

세월호 관련 도서들

기억은 기록이 되어 꺼지지 않는 생명을 얻는다.

시간대별로 촘촘하게 새겨진 르포르타주로, 희생자 한 명 한 명이 그림과 글로 되살아난 에세이로, 영상을 보듯 생생하게 재현되는 소설*로.
* <<거짓말이다>> - 희생자들을 어두운 바다에서 뭍으로 올리기 위해, 국가가 사라진 자리에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한 고(故) 김관홍 잠수사의 이름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작가의 이전글 악몽의 시간이 되기까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