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이는 점심 무렵 도착했다. 멸치로 가득한 봉지 하나를 들고서. 진호와 내가 멸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자 송이는 마치 비밀스러운 얘기를 하듯 속삭였다.
“갈매기들에게 줄 점심이야.”
그러고는 배가 고파 죽을 것 같으니 점심을 사달라고 당당하게 요구했다. 우리를 보기 위해 휴일 아침부터 먼 길을 달려온 자신을 위해 당연한 일이라고 주장하며. 내가 보기에 송이는 자기의 답답한 마음을 풀고 싶어서 온 것 같았는데 말이다.
송이의 배를 채운 뒤 우리는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송이의 제안으로 근처 섬으로 들어가는 배를 타기로 했다. ‘몽현도’라는 이름의, 왠지 도인들이 살고 있을 것 같은 섬이었다. 우리는 40분가량 대기하다가 몽현도로 향하는 배에 진호의 오토바이와 함께 몸을 실었다.
섬까지 들어가는 데에는 3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송이는 점심 값을 만회할 만큼 신기한 장면을 보여주었다. 뒷산에서 곤줄박이 사건을 경험한 나는 덜 놀랐지만, 진호는 연신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 장면이란 바로, 송이의 멸치를 갈구하는 갈매기들의 열정적인 몸짓이었다.
승객들이 서 있는 갑판 근처에는 갈매기 무리들이 마치 마라톤 코스를 함께 완주하는 ‘페이스메이커’처럼, 상공을 배회하며 뱃길을 따랐다. 갈매기들은 근사한 날갯짓을 보여주며 송이의 손끝에서 멸치를 날렵하게 낚아채 갔고, 그 후로도 줄곧 자연스럽게 우리 근처로 날아들었다. 갈매기들에게 그것은 일상과도 같은 일이었나 보다. 어른들이 말하는 먹고사는 것의 고단함은 바다 위 새들의 세상에서도 매일 반복되고 있는 듯했다.
갈매기 부리에 손이 물리며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즐거운 듯 연신 깔깔거리던 송이가, 어느 순간, 진호와 내게도 갈매기 모이주기를 시도해 보라고 권유했다.
“처음엔 좀 무서울 수도 있는데, 그다음부터는 기대되고 설렐걸?!”
송이가 확신에 찬 얼굴을 하고선 우리 쪽으로 봉지를 내밀었다. 진호가 먼저 비장한 표정으로 멸치 한 움큼을 손에 움켜쥐더니 갑판 뒤편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진호에게서 탄성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고개를 돌려 진호 쪽을 바라보니, 갈매기 무리를 이끌고 있는 듯한 진호가, 마치 어린 시절 읽었던 그림책 「피리 부는 사나이」 속 주인공처럼 보였다. 아주 잠시, 꿈속으로 빠져드는 기분이었다.
두려움이 지나가고 맞이하는 기대감이 어떤 것일지 궁금했다. 여전히 새에 대한 불편한 감정이 남아 있었지만, 용기를 내 나도 송이에게서 멸치 반 움큼을 얻어 갈매기 모이 주기에 동참했다.
매서운 눈빛의 갈매기들은 겁이 없어 보였다. 모이를 차지하겠다는 녀석들의 일념이 드넓은 공간 속 한 점으로 보일 멸치 한 마리에 놀랍도록 탁월한 집중력을 발휘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내가 공중으로 팔을 뻗어 들어 올릴 때마다 갈매기들이 떼로 달려들었다. 처음엔 손이 저절로 움츠러들었지만, 생각보다 녀석들에게 적응하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러자 갈매기들의 표정이 보이는 것 같았다. 모이를 아슬아슬하게 비껴간 녀석들이 아쉬워하는 눈빛이, 목표를 달성한 뒤 한층 우아하고 여유로워 보이는 자태로 뒤돌아 날아가는 갈매기들의 미소가. 나는 갈매기들의 멋진 날갯짓이 시야 밖으로 사라질 때까지 공중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아래에서 올려다보니 갈매기가 꼭 비행기 같아 보여. 멋지다.”
내 눈에는 정말 그래 보였다. 애초에 비행기를 설계한 사람들이 갈매기의 비행 모습을 참고한 게 분명하다는 확신마저 들었다.
“그러고 보니, 정말 그러네!”
송이가 내 시선을 따라가며 무언가 새로운 것을 발견한 듯 목소리를 높였다. 잠시 후 진호가 송이와 내가 있는 쪽으로 되돌아왔다.
“치킨도 새인데 왜 못 날까? 날개 있는데 못 날아서 너무 답답할 것 같아.”
진호의 얼굴에 아쉬움이 드리워져 있었다.
“이 세상에 닭이 얼마나 많은데, 개중에 훨훨 날 수 있는 녀석이 한 놈, 아니 몇 놈은 있지 않을까? 우리가 볼 수 있는 세상은 너무 좁잖아. 우리는 우물 안 개구리, 아니, 좁디좁은 닭장 속에 갇힌 닭이라고.”
송이가 말했다.
봉지 속 멸치를 다 비워낸 송이가 두 팔을 양쪽으로 쫙 펼치더니, 훨훨 나는 닭이라도 된 듯 바람 따라 부드럽게 팔을 흔들어 보였다. 마치 금방이라도 하늘 위로 날아오를 것처럼.
더 이상 갈매기에게 줄 멸치가 남아 있지 않음을 확인하자 갑자기 햇볕이 못 견디게 따갑게 느껴졌다. 우리는 땀을 식히고 입가심도 할 겸 객실로 내려왔다.
땀이 채 마르기도 전에 배가 선착장에 도착했다. 몽현도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섬이었다. 사람보다 꽃과 나무와 새들이 더 많이 살고 있는. 딱히 무엇을 하겠다는 계획도 없이 우리는 그저 발길이 닿는 대로 섬 주위를 걸었다. 진호는 오토바이를 타다 끌기를 반복하며 지쳐가는 것 같았다.
“오토바이 나한테 넘기고 잠시 땀 식혀.”
내가 말하자, 진호가 기다렸다는 듯 오토바이를 냉큼 내쪽으로 밀었다.
쏟아지는 햇살에 온몸이 금세 땀으로 절었다. 그늘을 찾아 걷고, 연신 손부채질을 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그때, 다행히도, 내 시야에 카페처럼 보이는 건물이 들어왔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나면 이런 기분일까.
“우리, 저기 카페에서 시원한 음료라도 한 잔 할까?”
“이신우 네가 웬일? 먼저 카페 가자는 소릴 다 하고?”
송이는 갑자기 힘이 샘솟는지 진호와 나를 앞질러 카페 쪽으로 향했다.
20세기 초반에서 막 건너온 것 같은 빈티지 스피커에서 처음 들어보는 잔잔한 재즈가 흘러나오고 있던 카페에는, 주인이 기르고 있는 듯한 고양이 두 마리가 데칼코마니처럼 옆으로 나란히 누워 낮잠을 즐기고 있었다. 우리 외에 다른 손님은 보이지 않았다.
카페 한편에는 손님들이 남기고 간 메모들이 알록달록, 벽 한가득 전시되어 있었다. 주문한 음료가 나오는 동안 나는 잠시 메모들을 눈으로 훑었다.
‘힐링 잘하고 돌아갑니다. 또 올게요~’
‘여기 분위기 너무 좋고 커피도 완전 맛있어요. 최고!!^^’
‘사장님 짱 친절하세요. 복 받으세요!’
‘풍경이 죽여요~~!! 집에 가기 싫어요. ㅠㅠ’
‘사장님 넘 잘 생기셔서 깜놀 :)'
사람들은 먼 이곳까지 찾아와 치유의 시간을 갖는 듯했다. 사람들의 글에서 ‘행복’이라는 단어가 묻어 나오는 것 같았다. 마지막 메모를 보다 문득 카페 사장의 얼굴이 궁금해졌다. 음료를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는 사장 근처로 다가가 슬며시 앞모습을 훔쳐보았다. 같은 남자의 시선으로 봐서 그런 건지, ‘잘 생겼다’는 말에는 그다지 동의가 되지 않았다. 아마 카페를 다녀간 이들이 그때 그 순간, 이곳이 품고 있는 행복의 기운에 취해 착시현상을 일으킨 게 아니었을까. 그런데 메모들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려니 최면에 빠져드는 듯 기분이 묘해졌다. 진호의 목소리가 날아들지 않았다면 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을는지도 모르겠다.
“정말 이 세상에 하늘을 나는 치킨 있을까?”
진호가 불쑥,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아마도, 있지 않을까…?”
진호의 기대감을 굳이 꺾고 싶지 않았다.
“그나저나 너희 둘, 도대체 뭐야? 왜 둘이서 이 시간에, 여기서, 이러고 있어?”
송이가 눈을 게슴츠레 뜨며 진호와 나를 번갈아 봤다.
“그러는 송이 넌 무슨 일이 있었기에 휴일 아침부터 기분이 그 모양이야?”
나는 송이의 질문에 뭐라고 대답할지 생각할 시간을 벌고자 송이에게 되려 질문을 던졌다.
“나야… 우리 엄빠 때문에 일상인 거고… 너희는, 뭐지? 혹시 둘이 사귀기라도 하는 거야?”
하마터면 마시던 음료를 내뿜을 뻔했다. 진호는 어쩐 일인지 능글능글한 미소만 짓고 있었다. 평소에는 그리 오지랖을 부리더니, 이런 결정적인 순간에 침묵을 지키는 진호가 생경하면서도 조금 얄미워 보였다. 송이는 여전히 의구심 가득한 눈빛으로, 손가락 끝을 진호와 나를 가리킨 채 고개를 내젓고 있었다. 이제 막 ‘도리도리’를 배운 아기 시절의 ‘미야’처럼.
“내가 바람 쐬고 싶어 진호한테 오토바이 좀 태워달라고 부탁했어.”
내가 말했다.
“언제 온 거야?”
송이가 물었다.
“어젯밤에.”
“잠도 안 자고, 둘이서 여길 왔다고? 신우 네가 진호 허리 이렇게 껴안고?”
송이가 팔을 들어 능청스럽게 허리를 껴안는 시늉을 했다.
“그런 거지.”
내가 답했다.
“너희 둘 생각보다 참… 연구 대상이구나?”
“연구 대상? 그거, 뭐야?”
침묵하던 진호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그제야 진호가 진짜 진호처럼 느껴졌다.
“신기하고 재미있는 사람들이란 얘기야.”
내가 송이 대신 답했다.
“해석은 자유니까, 뭐.”
심드렁한 표정의 송이가 빨대로 요란한 소리를 내며 음료를 들이켰다. 음료 들이켜기에 집중하던 송이가 불현듯 “아!”하고 작은 탄성을 내뱉더니 말을 이었다.
“그러고 보니 새도, 비행기도, 닭도 다 날 수 있잖아? 물론 닭은 새나 비행기에 비하면 높이 날지 못하겠지만. 이 세상엔 분명 높이 나는 닭도 있을 테니까….”
“송이 말 맞는 것 같아!”
진호가 대단한 사실을 들은 사람처럼 박수를 크게 한 번 치며 장단을 맞췄다.
“그러게. 셋 다, 높이 나는 게 ‘꿈’ 일 것 같다.”
잠깐의 틈을 두고 나도 한 마디 덧붙였다.
“이신우 너, 오늘 평소와 뭔가 좀 달라 보이는데…?”
송이가 손가락으로 탁자를 가볍게 두들기며 탐정이라도 된 듯한 표정으로 내 얼굴을 살폈다.
“날지 못하는 비행기는 고철 덩어리고, 새가 날지 못하면 그건 죽음을 뜻하는 걸 텐데… 꿈을 향해 날지 못하는 인생은 진정 살아있는 거라고 말할 수 없는 거겠지?”
이 말을 하며 나는 왠지 마음이 조금 무거워졌다.
전면 창 밖으로 시선을 돌리자, 끝이 보이지 않는 수평선이 펼쳐져 있었다. 착각이었을까, 그 순간 수평선 위로 희미하게 무지개가 보이는 것 같았다.
“진호야, 혹시 신우 아침에 뭐 잘못 먹었어? 얘 아무래도 오늘 좀, 이상해.”
“아닌데, 그냥 회 맛있게 먹었는데?”
“아침부터 회라니, 너희들도 참….”
“얘들아, 저기 무지개 떴다!”
내가 소리쳤다.
“어디, 어디?”
손끝으로 수평선 너머를 가리키자, 송이와 진호가 동시에 창밖을 내다봤다.
“어디 있어? 난 안 보여.” 진호가 말했고,
“그러고 보니 수평선 위에 희미하게 보이는 것도 같다. 신기하네. 화창한 날에도 무지개가 뜨나?”
송이가 턱을 괴고 꿈꾸는 듯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얼마 동안이었을까, 우리는 아무런 말 없이, 보일 듯 말 듯한 무지개를 눈으로 열심히 좇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