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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뉴 Sep 23. 2024

#12 고모와 다툰 날

 밤이 이슥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할머니와 고모는 잠자리에 들지 않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집 안으로 발을 채 내딛기도 전에 할머니의 걱정 섞인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신우가? 와 이리 늦었노? 아침도 안 묵고 나가 전화도 안 받고?!”


  상 위에 빈 소주병들이 보였다. 할머니와 고모는 변변한 안주 하나 없이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꽤 오랜 시간 마신 듯 고모 얼굴에 취기가 가득했다.


  “엄마는 그저 신우 걱정이야? 쟤 때문에 요 모양 요 꼬라지로 사는 딸내미 걱정은 안 돼?!”


  고모가 허공에다 삿대질을 하며 억울하다는 듯 소리쳤다. 말로만 들었던 고모의 주사인 것 같았다.


  “야가 많이 취했는갑네. 신우 왔으니까 이제 고마 들어가서 자자.”


  할머니가 고모 팔을 잡아 끌어당겼으나, 버티고 있던 고모를 당해내지 못했다.


  “전… 고모한테 아무 짓 한 거 없어요.”


  어디서부터인가 용기가 솟아났다. 고모가 나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엄마, 저 자식 말 하는 거 좀 봐. 야! 이제 기어 들어왔으면 ‘죄송합니다’ 사과부터 해야 하는 거야. 그렇게 눈 똑바로 뜨고 대드는 거 아니고!”


  고모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내게 윽박지르는 고모가 낯설었지만, 이런 모습에 오히려 마음이 더 편해졌다. 그래서였을까, 마음속에 가둬놓고 있던 생각들이 말이 되어 흘러나왔던 이유는.


  “신우 씻고 얼른 들어가서 자라.”

  “아니야, 할머니. 나도 고모랑 할 얘기 있어. 할머니 먼저 들어가서 자.”


  고모와 내 얼굴을 번갈아 보는 할머니 표정이 몹시 불안해 보였다.


  “신우 네가, 나한테, 무슨 할 말이 있다고?”

고모가 비웃음인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표정을 던졌다.


  “제 방에 들어가서 얘기해요.”

내가 말했다.

  “그냥, 여기서, 얘기해!”

술이 잔뜩 오른 고모의 말이 간간이 끊어졌다.


  “싫어요.”  


  하고 싶었지만, 이제껏 고모에게 한 번도 해보지 못한 말이었다.


  “할머니도 알아야지. 그런 거 아니면, 나는 싫다.”


  고모는 물러날 기색이 없어 보였다. 고모의 눈빛에 지고 싶지 않았다. 나는 눈에 힘을 더 주며 고모의 얼굴을 정면으로 쳐다봤다.


  “아이고, 신우 니는 또 와 그라노? 밖에서 무신 일 있은 기가?!”


  할머니가 놀란 듯 소리쳤다. 이상하게도 할머니의 말이 저만치서 흐르고 있는 배경음처럼 아득하게 들렸다. 불현듯 심장 안쪽에서부터 불이 번져 나오는 듯 속이 뜨거워지며 화끈거렸다. 내 안 어딘가에서 잠자고 있던 용기가 마그마처럼 끓어오르는 느낌이었다.


  “고모는 내가 왜 그렇게 싫은 거예요?”

  “아이다. 신우 니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기다. 고모 술 취해서 그라는 거니까 니가 고마 참고 이해해라.”


  할머니가 고모를 제치고 대신 답했다.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할머니를 흘겨보던 고모의 시선이 이내 내 쪽을 향했다.


  “그래, 나는 네가 싫다. 나는… 네가 무서워. 너는, 네 아빠를 쏙 빼닮았거든. 네가 어떤 어른이 될지, 나는, 두려워.”


  고모가 마치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고 있는 사람 같다, 고 그 순간의 나는 생각했다.


  “또 ‘피’ 얘기가 하고 싶은 거예요? 아빠랑 같은 피?”

  “그래. 아빠한테 물려받은 피… 그 피가, 얼마나 무서운 건지, 너는 모를 거야!”

  “도대체, 아빠가 어떤 사람인데 그래요? 다 얘기해 줘요. 나 이제 어린애 아니에요!”


  고모와 내 목소리가 마치 기싸움이라도 하듯 점점 더 높아졌다.


  “너희 아빠는, 사람을… 사람을….”


  고모가 말을 끝맺지 못하고, 버퍼링 걸린 음성파일처럼 같은 단어를 반복했다. 그때였다. 할머니가 실성한 사람처럼 울부짖기 시작했다.


  “내가 고마 혀 깨물고 콱 죽어뿌야지. 이 꼴 보고 우째 살겠노!”


  급기야 할머니는 바닥에 드러누워 초상집에 온 사람처럼 아이고, 아이고 곡소리를 내뱉었다. 별안간 정신이 번뜩 들었다.


  “걱정 마세요. 계속 여기서 살 생각 없어요. 전… 엄마가 계신 하와이로 갈 거예요.”


  하와이에서 살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그 순간만큼은 진심으로 그러고 싶었다.

고모가 발작적으로 웃어대기 시작했다.


  “너희 엄마는, 하와이에 없어. 누가 그래, 엄마가 하와이에 있다고?”

  

  나와 고모의 시선이 거의 동시에 할머니 쪽을 향했다. 할머니가 곡소리를 멈추고, 내 시선을 비끼며 천천히 몸을 일으켜 앉았다.


  “그럼, 어디 계시는데요?”


  고모가 천천히 손가락 끝으로 천장을 가리켰다. 고모의 손짓이 무얼 뜻하는지 이해하지 못해 잠시 어리둥절한 채로 서 있다가 이내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그게 무슨 뜻이에요? 엄마가, 죽었다는 말이에요?”


  고모가 무언의 압박이라도 하듯 할머니를 쏘아봤다.


  “이게 무슨 말이야, 할머니?!”


  나도 모르게 높아진 목소리 끝이 갈라졌다.


  “이기, 와 이라노?!!”


  어느샌가 고모 곁으로 온 할머니가 소리를 내지르며 두 손에 힘을 가득 실어 고모의 팔을 잡고 흔들었다.


  “왜? 내가 없는 말 했어? 이제 신우도 알아야 해. 엄마는 왜 자꾸 애를 감싸고돌아? 얘도 뭘 알아야지 앞으로 조심하면서 살 거 아니야?”

  “제가 뭘 그리 조심하면서 살아야 하는 거죠?!”

  “니 아빠 같은 사람 안 되게 조심해야지. 그 더러운 피를 없앨 수는 없는 거니까!”

  

  고모의 입에서 다시 나온 ‘더러운 피’라는 말에 내 몸속 피가 한꺼번에 머리 위로 솟구쳐 오르는 것 같았다.


  “왜 계속 제 피를 더럽다 그래요? 제 피는 그냥 제 피일뿐이에요. 고모가 더러운지 깨끗한지 봤어요, 봤냐고요?!”


  “고마 안 하나?! 니 그럴 거면 이제 요기 다시는 오지 마라. 미야도 니가 델꼬 가 키우고!!”


  고모를 향해 있는 할머니의 눈이 날카롭게 번뜩였다. 미야 얘기에 한풀 기세가 꺾인 고모가 할머니에게 하소연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엄마 가고 나면, 저 불쌍한 거 나 혼자 어떻게 키우고 살까… 응, 엄마? 우리 미야, 불쌍해서 어떡해….”


  고모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흐느꼈다. 울음소리를 따라 고모의 등이 조그맣게 흔들렸다. 고모의 눈물에 마음이 약해진 듯 할머니가 어쩔 줄 몰라하는 얼굴을 하고선 고모의 등을 쓰다듬었다.


  “니 힘든 거 다 안대이. 내 오래오래 살 끼니까 걱정하지 말고 고마 가서 자라. 마이 취했다. 니 땜에 미야 깨긋다….”


  잠시 후, 축 처진 어깨를 한 채 울음소리를 삼키던 고모가, 할머니 손에 이끌려 미야가 자고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고모의 흐느끼는 소리가 잦아들자 할머니가 부엌으로 다시 나왔다.


  “할머니, 고모가 한 얘기… 뭐야? 엄마는 어디 있어? 정말, 엄마가 죽은 거야? 사실대로 말해줘.”


  할머니가 가만히 나를 바라보더니 중요한 일을 앞둔 사람처럼 깊은숨을 내쉬었다.


  “그래, 고모 말이 맞다. 니 엄마, 죽었대이. 얼마 전에. 니 맴 아플까 봐 말 몬하고 있었다. 하지만 좀만 더 있다가 말할라 켔다….”


  가슴 한 구석 무언가가 무너지는 것 같았다. 앞으로 엄마를 못 볼 수도 있다는 생각은 했었다. 그러나 못 보는 것과 어찌해도 볼 수 없는 것 사이에는 극복하기 힘들 만큼의 간극이 있었다. 비행기를 바라보며 하와이로 떠나는 나를, 엄마와 재회하는 나를 상상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바보 같은 나 자신을 견딜 수가 없었다. 나 스스로도 어찌할 수 없는 극한의 감정이 치밀어 올랐다.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르고 싶었다. 무엇이든 부숴버리고 싶었다. 그렇게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만들고 싶었다.


  옆에 있던 빈 소주병을 집어 바닥으로 힘껏 내던졌다. 병이 바닥과 격하게 부딪히는 소리를 내더니 산산조각이 나 여기저기로 흩어졌다. “아이고!” 할머니가 놀라 소리쳤다.


  “왜 나한테 얘기 안 해? 내 엄마잖아. 내가 먼저 알아야지, 안 그래?! 감추지 말고 다 얘기해 달란 말이야. 전부 다!!"


  “할매가 잘몬했다. 앞으로는 그라께. 미안하대이. 신우 화 풀어래이. 그라고 고모 말 너무 맘 쓰지 마래이. 요즘 고모가 힘든 일이 있는데, 술이 마이 취해가꼬 그카는 기라… 할매는 신우가 이렇게 잘 커줘서 참말로 고맙대이.”


  할머니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내 손을 꽉 잡았다. 갑자기 온몸의 힘이 쭉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울컥, 하고 ‘무엇’인가가 저 깊숙한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것 같았다. 할머니에게 그런 내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알았어.”


  나는 황급히 손을 빼내며 말했다.


  잠시 내 얼굴을 살피던 할머니가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부엌바닥을 유심히 둘러봤다. 그러고는 굽은 등을 더 구부리며 바닥에 널브러진 유리 파편들을 줍기 시작했다. 웅크린 아이처럼 작은 할머니 등을 마주하고 있자니 그 ‘무엇’을 더 이상 감출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홱, 등을 돌려 방으로 들어갔다.


  그날 밤 꿈을 꿨다. 손끝으로 느껴지는 감각이 소름 끼치도록 생생한 꿈이었다. 나는 누군가의 위에 올라앉아 힘주어 목을 누르고 있었다. ‘안 된다’는 생각과는 다르게 내 손이 점점 더 그 사람의 목 위로 내 무게를 싣고 있었다. 물기 어린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듯한 얼굴은,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인 것 같기도, 또 어느 순간엔 고모의 모습을 닮아 있는 것도 같았다.


  그 사람의 입이 내게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힘겹게 내뱉은 말은 소리가 되어 전해지지 못했다. 나는 손끝에 힘을 주면서 입모양에 집중하려 애썼다. 반복적으로 다물었다가 살며시 벌어지는 입술의 움직임. 익숙한 모양새였지만, 무엇을 말하려는 건지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가슴 한 구석이 감당하기 힘든 무게에 짓눌린 듯 답답해져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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