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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뉴 Sep 16. 2024

#10 진호의 오토바이를 타고

  고모가 미야를 데리고 짧은 여행을 떠난 다음 날, 할머니는 저녁 시간이 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여느 때 같았으면 ‘오늘은 얼마를 벌었다’라고 자랑하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을 할머니의 얼굴이 그날따라 어두워 보였다.


  할머니와 단 둘이서 저녁을 먹었다. 미야의 빈자리가 커 보일 정도로 답답한 침묵이 이어졌다. 나는 아무 말하지 않는 할머니를 견디기가 힘들었다.


  “혹시, 쌤이랑 통화했어…?”


  결국 이번에도 할머니와의 기싸움에서 내가 졌다.


  “그래.”

  “그런데 왜 아무 말 안 해?”

  “… 신우야, 폭력은 절대로 안된대이. 절대로.”

  “그 새끼,가 먼저….”


  할머니가 나를 꾸짖듯 노려보았다.


  “할매는 무섭대이. 신우 니는 절대 아빠처럼 살면… 그카면 할매는 고마 콱 죽어뿔 끼라.”

  “그게 무슨 말이야? 아빠처럼 살면 안 된다니?”


  갑자기 분위기가 역전된 것 같았다. 잠시 멈칫하던 할머니가 젓가락으로 밥알을 휘적이기 시작했다. 당황할 때 나오는 할머니의 습관이다.


  “컥컥, 와 이리 목이 마르노.”


  할머니가 내 시선을 비끼며, 절뚝거리는 걸음으로 냉장고에서 식혜 한 사발을 꺼내왔다.


  “다리는 또 왜 그래?”

  “별 거 아니라. 쪼매 삐었다. 금방 낫을 끼라.”


  체할까 염려될 정도의 속도로 식혜를 들이켠 할머니가 긴 숨을 토해냈다. 그리고 또다시 찾아온 잠깐의 정적.


  “잘못했어. 앞으로 다시는 안 그럴게.”

  “그래. 그래야제….”


  내 착각이었을까, 그 순간 할머니 눈가에 눈물이 어른거리는 것 같았다. 태어나 한 번도 본 적 없었던 할머니의 눈물이.     


  여행에서 돌아온 고모는 예전보다 나를 더 숨 막히게 했다. 차라리 화내고 나를 비난했으면 좋았을 텐데, 고모는 마치 내가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처럼 말하고 행동했다.


  그랬던 고모가 할머니에게는 할 말이 많아 보였다. 할머니를 향한 고모의 시선에는 마음속 깊숙이 숨겨져 있던 온갖 화들이 실려 있는 것 같았다.     


  그날 밤, 나는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고모와 같은 공간에 있기 싫었고, 무엇보다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 침대에 누워 천장에 눌어붙어있는, 알 수 없는 물체의 흔적을 눈으로 집요하게 붙잡고 있다가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부엌 쪽에서 할머니와 고모가 조심스럽게 나누는 대화가 들려왔다. 고모는 나지막이 말하려 애쓰는 것 같았지만, 화가 난 듯한 목소리가 때때로 높아졌다. 나는 방문으로 다가가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엄마, 나는 신우 쟤만 보면 미칠 것 같아!”

  “야야, 목소리 낮추래이.”

  “아빠도, 오빠도… 신우 쟤라고 뭐 다르겠어? 그 피가 어디 가겠냐고?! 언니 그렇게 된 것도… 아빠랑 오빠 때문에 내 인생 충분히 망가졌어. 신우 때문에 더 망치고 싶지 않아… 엄마는 진짜 아무렇지도 않아?”


  “신우는 다르대이. 그런 소리 하지 마라.”

  “엄마는 뭘 믿고 그렇게 확신해? 이번에 신우가 저지른 일을 한번 봐! 암튼, 나는 학폭위인가 뭔가 못 가. 가고 싶은 생각도 없고.”

  “내가 알아서 할 끼라. 니는 신경 쓸 거 읍따.”


  ‘피’라는 한 마디가 화살처럼 날아와 가슴 깊숙이 박히는 것 같았다. 고모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내 몸 안에 흐르고 있는 피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그것도 혐오의 감정을 잔뜩 실어서. 순간 내 몸이 더러운 것으로 가득 차 있는 느낌이 들었다. 금방이라도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언니가 그렇게 된 거…’라는 건 무슨 말일까? 엄마에게 내가 알면 안 되는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걸까? 묻고 싶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하지만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감당할 수 없는 무언가를 알고 싶지 않은 마음이 용기를 붙들어 맸다. 갑자기 누군가가 목을 죄어 오는 듯 숨이 막혀왔다. 조용히 창문을 열고 심호흡을 했다. 집을 벗어나고 싶었다. 아무도 모르게.


  할머니와 고모의 목소리가 잦아들 때까지 기다렸다. 밖이 잠잠해진 걸 확인하고 무작정 집을 빠져나와 정신 나간 사람처럼 밤거리를 돌아다녔다. 막상 집을 나왔지만 딱히 갈 곳도,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영업이 끝난 가게 입구에 멍하니 걸터앉아 있다가 새벽녘이 되어서야 진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진호가 전화를 받았다. 신호가 대여섯 번쯤 가고 난 후, 자다가 일어났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활기차게 들려오는 수화기 너머의 진호 목소리가 그토록 반가울 줄은 몰랐다.


  “신우, 이 시간에 무슨 일이야?”

  “지금 혹시, 오토바이 탈 수 있어…?”

  “내 오토바이?!”


  왠지 모르겠지만, 어두운 하늘을 보며 진호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바다가 생각났다.


  “응…. 혹시, 바다 보러 갈 수 있을까?”

  “너, 무슨 일 있어?”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진호가 내게 질문을 더 하면 전화를 끊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진호는 더 이상 내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내가 어디 있는지 확인한 진호는, 조금만 기다려달라는 말과 함께 핸드폰 너머로 황급히 사라졌다.


  정확히 30분 후, 진호가 오토바이와 함께 응급 구조사처럼 내 눈앞에 나타났다.


  “내 허리를 꽉 잡아”


  진호가 파란색 헬멧 하나를 건넸다. 작게만 보였던 오토바이였는데 , 진호에게 내 몸을 밀착시키자, 신기하게도, 그다지 자리가 비좁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안정감 있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중학교를 졸업한 이후로 오토바이를 탄 건 처음이라 조금 긴장됐지만, 국도에 접어들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바람결에 묻어나는 자유가 마음을 다독여주는 것 같았다. 우리는 끝이 보이지 않는 새벽의 도로 위를 달리고 또 달렸다. 드문드문 우리 앞을 내달리고 있는 차들과, 도로와 하늘 사이 알알이 박혀 빛을 발하는 가로등들이, 우리가 갈 길을 안내해 주는 것 같았다.      


  어둠이 깃든 공기를 가르며 한 시간쯤 달린 후 바닷가에 도착하니, 아침 해가 서서히 수평선 위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내 생애 맞이한 가장 환한 토요일 아침이었다. 우리는 해변에 오토바이를 댄 후 모래사장에 나란히 앉아, 날이 밝아오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해가 수면 위로 솟아오르는 광경을 직접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빛이 부리는 찰나의 아름다움이, 엉망으로 구겨져 있던 내 마음을 부드럽게 펼쳐주는 것 같았다.


  도서관에서의 꿈이 머리를 스쳤다. 눈부시게 빛나던 바다와 송이의 옆모습이. 문득 지금 송이가 무얼 하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할머니 너가 여기 온 거 아셔?”


  내 생각을 비집고 들어오는 진호의 목소리에 어젯밤 일이, 할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할머니에게 연락을 해야겠다는 마음과 그러고 싶지 않다는 마음 사이에서 십수 번은 오간 것 같다.

  결국 나는 핸드폰 창을 열었다.


  ‘친구랑 있어. 조금 늦을지도 몰라.’


  잠시 망설이다 전송 버튼을 눌렀다.  


  “너, 괜찮아…?”


  진호가 걱정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나도 잘 모르겠어. 그냥, 내가 한심해….”

  “왜 그런 생각해? 신우 너… 좋은 사람인데?”


  진호가 평소보다 더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좋은 사람’. 진호 이외의 다른 사람들로부터 이 말을 들어본 기억이 없던 나는, 그 상황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신우 너 좀 멋져. 잘 생기고, 키도 크고, 싸움도 잘하고, 남한테 나쁜 짓 안 하고…. 이번에 친구를 때리긴 했지만, 그건 나 때문이잖아? 나 한국 와서 힘들 때 많지만, 신우 같은 좋은 사람들 때문에 견딜 수 있어.”


  진호는 한 번 더 내게 ‘좋은 사람’이란 표현을 했다.


  그러자, 몸속 더러운 피가 씻겨 나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고맙다. 그렇게 말해줘서.”

  “아니야. 내가 신우한테 고마워. 나 때문에 힘들어서 미안하고….”


  내가 미소를 지어 보이자 진호가 더 환한 미소를 내게 보냈다.


  우리는 그 자리에 머문 채로 해가 완전히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바다를 마주하고 있었다. 점점 강해지는 햇살에 눈이 부셨지만, 어쩐지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고 싶지 않았다. 갓 떠오른 빛이 천천히, 온몸으로 스며들었다.


  “이제 우리 뭐 해?”


  진호가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여름 햇살이 볼을 따갑게 했고, 배꼽시계가 기다렸다는 듯 울리기 시작했다. 쑥스러운 웃음이 빠져나왔다.


  “웃으니까 더 보기 좋아. 신우 많이 웃어. 앞으로도.”


  진호의 말이 마음 한 편을 건드렸다. 많이 웃으면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걸까? 그렇다면 난 매일매일, 얼마든지 웃어줄 수 있을 것 같다.


  “바다에 오면 꼭 회 먹어보고 싶었어”


  진호가 말했다. 내 배에서 나는 소리를 진호도 들었던 모양이다.


  “너무 비싸.”


  나도 회를 좋아하지만, 먹을 기회가 별로 없었다. 회는 할머니에게 사달라고 하기 미안한 음식 중 하나다.


  “이럴 때 쓰려고 돈 버는 거야. 신우 힘들어 보이니까 오늘은 내가 살게.”


  진호가 내 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입꼬리를 씩 올렸다.


  “그럼, 다음번엔 내가 살게.”


  다음이 있을지 확신도 없으면서 괜스레 큰소리를 쳤다. 얻어먹기만 하는 건 나를 불편하게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오늘은 진호에게 기대보고 싶었다. 아주 조금만.


   우리는 횟집이 문을 열 때까지 바닷가 근처를 배회하다가 가장 먼저 영업을 시작한 가게로 들어갔다.

  주문을 하고 기다리는 동안 진호는 몹시 신이 나 보였다.


  “그동안 회를 한 번도 안 먹어본 거야?”

내가 물었다.

  “응.”

  “왜?”

  “같이 먹을 사람 없어. 우리 엄마는 회 싫어해. 아빠는 바빠. 그렇지만 너와 이렇게 먹게 되어서 좋아.”


  진호의 말이 어쩐지 마음을 아리게 했다.


  “… 학교 애들이 너 많이 힘들게 해?”

  “이제 익숙해. 그리고 좋은 친구들도 있어. 신우 너처럼. 어디에나 나쁜 사람들은 있으니까 나, 견딜 수 있어.”


  진호는 이곳에서 견뎌내는 삶을 살고 있는 듯했다.


  사실 내게도 그건 마찬가지다. 언제쯤이면 견디지 않아도 살아지는 삶이 오는 걸까. 어쩌면 이런 내 생각 자체가 잘못된 건지도, 삶이란 본디, 나를 위기에 빠뜨리는 적을 버텨내고 물리쳐야 제대로 된 끝에 도달할 수 있는, 난도 ‘상’의 게임과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 겨울 방학 때 베트남 갈 건데… 신우 너 나와 같이, 안 갈래? 너 방에 있는 사진과 닮은 풍경 보러.”

  “나 돈 없는데? 진호 네가 비행기 표 끊어준다고 하면, 한번 생각해 볼게.”


  장난스럽게 말하려다가 순간 멈칫했다. 누군가에게 가벼운 농담을 건넸던 기억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


  진호의 표정이 꽤 진지해 보여서 조금 당황스러웠다.. 진호는 매사에 넘치도록 진심인 친구인 것 같다.


  한참 회를 먹고 있는데 할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받지 않았다. 조금 있으려니 이번에는 송이에게서 문자가 왔다.


  ‘날씨는 미치도록 좋은데 내 마음은 지옥. 오늘 나를 좀 위로해 줄 수 없냐?’


  마음이 지옥 같다는 송이의 말이 궁금하면서도, 한편으론 동지의식 같은 게 느껴져 위로가 되었다. 하지만 답은 하지 않았다. 답을 보내면 송이가 기다려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핸드폰 벨이 울리며 화면에 송이의 이름이 떴다. 잠시 주저했지만, 내 손이 생각을 앞질러 통화버튼을 눌러버렸다.


  “야, 왜 내 문자 씹어?! 설마 아직 자는 거야?”


  핸드폰에 귀를 대기도 전에 송이의 목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아니야. 그래서 전화받았잖아.”

  “너 지금 뭐 해?”

  “나?”

  “너지 그럼 누구야?!”

  “나 지금 좀, 멀리 있어.”


  쩌렁쩌렁 울리는 송이의 목소리에 진호는 웃었지만, 내 어깨에는 나도 모르게 힘이 잔뜩 들어갔다. 지난번 학교 뒷산에서 송이가 말한 것처럼, 나는 정말 송이를 무서워하고 있는 걸까?


  “어딘데?”

  “바닷가.”

  “바닷가 어디? 나한테 말도 안 하고 너 혼자 가기야?!”


  송이의 논리가 다소 억지스러웠지만 싫지는 않았다.


  “혼자 아니고, 진호랑 같이 있어.”

  “뭐?! 너희 둘이 갔다고? 나는 놔두고…. 너희 둘 좀 이상해!”


  우리가 있는 위치를 말해주자, 송이는 자기도 금방 올 테니 조금만 기다리라며 전화를 끊었다. 다시 전화하면 오 초 안에 받으라는, 부탁인지 협박인지 알 수 없는 말과 함께.


  자신을 두고 왔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송이가 어색했지만, 그것도 잠시, 도서관에서의 꿈이, 송이의 여리고도 강인한 입술이 생각났다.


  좀 전에 먹은 회가 체한 듯 속이 울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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