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후 학폭위(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가 열렸다. 아픈 미야를 돌보느라 오지 못한 할머니를 대신해, 담임인 신이나 선생님이 내 보호자로 참석했다.
근수를 마주하면 할 말이 많았는데, 아쉽게도, 피해 학생과 가해 학생은 따로 심의를 받는다고 했다. 단 한 번의 사건으로 나는 근수에게 가해자가 되었다.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수는 더 오랜 시간 진호를 괴롭혀왔다. 근수는 다친 곳을 치료하고 나면 언제나 그렇듯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웃고 떠들어댈 것이다. 자존심에 조금 금이 갔을 수는 있을지언정. 그런 근수는 진호에게 지워지지 않을 상처를 주었다.
세상의 많은 일들이 우리의 시야밖에서 일어나고 있는데도 왜 사람들은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만 집중하는 걸까. 우리가 볼 수 있는 모습은 이 세상의 지극히 일부에 불과한데 말이다. 그래도 세상이 큰 탈 없이 굴러가고 있다는 사실이 나는 때때로 신기하게 느껴진다.
회의실에는 깔끔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사람들이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앉아 있었다. 종이를 넘기는 소리와 간간이 들려오는, 소곤거리는 말소리 외에는 적막감이 감돌았다. 회의실에 들어서려니 큰 죄를 지은 사람처럼 몸이 한껏 움츠러들었다. 이나 선생님이 나를 바라보며 ‘너무 쫄 필요 없어’라고 입모양으로 말해주지 않았더라면 나는 더 움츠러들었을는지도 모르겠다. 그 자리와 어울리지 않는 듯한, 선생님의 장난기 어린 표정을 보던 순간, 나는 선생님이 어른이 아닌 개구쟁이 아이 같다는 생각을 했고, 조여들던 온몸의 근육이 느슨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내게 여러 질문을 던지던, 정장 입은 어른들이 회의를 마치기 전에 덧붙여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고 물었다. 마치 선의를 베풀어주기라도 하듯, 무슨 말이든 들어줄 용의가 있다는 듯. 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그곳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기보다 그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해야만 하는 자리라는 걸. 그들이 내게 기대하는 건, 반성하는 내 모습과, 그걸 뒷받침해 주는 내 말이라는 것을. 그걸 깨닫는 순간, 오히려 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침묵했고, 그들은 내게 차가운 시선을 보냈다. 이나 선생님의 목소리가, 긴장감으로 얼어붙은 공기를 녹인 건 그 순간이었다.
“저는 이신우 학생 보호자를 대신해 들어온 담임교사입니다. 제가 한 말씀드려도 될까요? 신우가 긴장을 많이 해서 얘기를 잘 못하는 것 같은데….”
정장 입은 사람들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신우 학생은 평소, 인상만큼이나 태도가 바르고, 친구들에게 모범이 되는 친구입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내 얼굴을 훑었다. 당황스러웠지만, 선생님의 다음 말이 궁금해져 길게 당황할 새가 없었다. 선생님이 잠시 말을 멈추는가 싶더니 목소리를 가다듬고 천천히 말을 이었다.
“원래 그런 학생이 아닌데, 친구가 부당한 일을 겪는 걸 보고 순간 화를 참지 못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물론, 폭력을 쓴 건 그 어떤 말로도 정당화되지는 못하겠지만, 그 점에 있어서는 신우도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할머니 모시면서… 빗나가지 않고… 꿋꿋하게 잘 살아가고 있는 친구입니다. 정상참작을….”
선생님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기 시작했다. 나는 선생님을 바라봤다. 선생님의 눈가에 어려 있는 물기가 빛을 받아 반짝거리고 있었다. 그 순간, 뜨거운 무엇인가가 내 가슴을 훑고 지나가는 것 같았다.
“죄송합니다.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그들이 원하는 말이 튀어나왔다.
그 이후에 어떤 말들이 오고 갔는지 정확히 기억나질 않는다. 머릿속에 명징하게 떠오르는 건, 그즈음부터 정장 입은 사람들의 표정이 부드러워졌다는 것. 그리고 선생님과 얘기를 나눠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학폭위는 생각보다 허무하게 끝이 났다. 나머지는 위원들의 판단에 맡겨졌다. 오늘 하루 나를 본 그들의 결정에, 남은 2년의 학교생활이 달려있다고 생각하니, 두려우면서도 억울한 마음이 올라왔다.
“신우, 오늘 수고 많았다.”
회의실을 빠져나오며 이나 선생님이 내 등을 가볍게 두드리면서 말했다.
"선생님도요…. “
“다음에 또 얘기 나누자. 앞으로는 욱, 하지 말고 침착하게, 알지?”
선생님이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며 미소를 짓더니 이내 교무실을 향해 돌아섰다.
“저, 선생님…?”
발걸음을 멈칫하며 이나 선생님이 내 쪽을 돌아봤다.
“응? 왜, 뭐 할 말 있어, 신우…?”
“다음에 말고, 그냥, 오늘 마치고 잠시 얘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좀 있으면 방학인데….”
말을 뱉어놓고도 나 스스로 놀랐다. 의지와는 상관없이 내 마음이 건넨 말. 그렇게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을 것 같다. 선생님의 얼굴에 호기심 어린 표정이 스쳤다.
“그래? 그럼, 커피라도 한 잔 하면서 얘기 나눌까, 우리?”
“커피, 요?”
“응, 커피.”
선생님이 눈을 크게 뜨고 나를 올려다봤다.
“아, 네. 좋아요.”
학생들에게 커피를 마시라고, 아니, 같이 마시자고 하는 어른은 흔치 않다. 아니, 나는 여태껏 그런 어른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커피는 학생에게 있어 담배나 술과 같은 영역에 있는 것이라고 어른들은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커피는 어른들보다 우리 같은 고등학생들에게 더 필요한 게 아닐까 싶다. 우리 키는 이제 자랄 만큼 자랐고, 학업 스트레스를 술로 달래기도 어려우며, 어른들보다 훨씬 잠을 덜 자야 하는 지극히 팍팍한 삶을 살고 있으니 말이다. 물론 할머니의 바람대로라면, 김우빈만큼 키가 더 자라야 하는 나는 커피 따위는 절대 마시면 안 되겠지만. 그래도 왠지 이날은 이나 선생님과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싶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을까.
평일 오후의 카페에는 생각보다 사람이 많지 않았다. 이따금 우리 쪽을 흘끔흘끔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좀 불편하게 느껴지긴 했지만. 그것보단 나 자신이 문제였다. 내가 먼저 제안을 하고서도 막상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선생님과 마주 앉아 있으려니 생각했던 것보다도 어색해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나는 괜스레 테이블 위에 놓인 냅킨을 접었다 펴기를 반복했다.
“신우 너, 많이 어색하구나?”
“네? 아, 네… 조금이요.”
이나 선생님이 내 표정과 동작이 재미있다는 듯 빙그레 웃었다.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던데…?”
“네? 그런 것보다는…”
어쩐지 내 말투가 진호의 것을 닮아가는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 말할 땐 그냥 편하게 ‘쌤’이라고 불러줘.”
“전, 괜찮아요.”
“나는, 안 괜찮은데?”
내가 놀란 표정을 짓자 선생님이 소리 내 웃었다.
“미안, 미안. 농담이야. 그냥 신우가 편한 대로 해.”
“아, 네….”
“반성은, 하고 있는 거지?”
“네… 그런데 선생님, 근수는요…?”
“근수가, 왜?”
“근수는 아무 벌 안 받는 건가요? 진호를 괴롭혀 왔잖아요.”
선생님은 잠시 바깥 풍경을 바라보더니 얼음이 녹아 묽어져 가는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켰다. 선생님의 입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간 얼음조각들이 경쾌하게 바스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세상이 참, 불공평한 것 같지?”
“….”
“불공평하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사람들 보면 막 화가 나고, 분노가 치밀어 오르고, 그치?”
이나 선생님이 내 반응을 기다리는 듯 잠시 말을 멈췄다.
“네… 어떻게 아셨어요?”
“그래서 신우야, 더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야 하는 거야. 그냥 세상은 원래 그런 거니까, 하고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사는 거, 그거 정말 위험한 태도라고 쌤은 생각해. 그럼, 억울한 사람들은 더 억울해지고 세상을 업신여기고 만만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더 기고만장할 거거든. 그런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니?”
“참, 어려운 일 같아요. 늘 정신 차리고 산다는 거요.”
“물론, 이따금은 정신 줄 놔도 돼. 아니, 그럴 필요가 있어. 사람 정신에는 정말 ‘줄’ 같은 게 있어서 계속 팽팽하게 당기고 살다 보면 어느 순간 확 끊어져버리기 십상이거든.”
선생님이, 마치 1인 연극이라도 하는 사람처럼 과장되어 보이는 동작을 취하며 말했다. 순간 웃음이 새어 나오려는 걸 참았다. 분명 좀 전까지만 해도 마음에 큰 돌덩이를 달고 있는 것 같았는데.
“근수도 벌 받을 거야. 여기가 아니라면 다른 곳에서라도… 분명 덜 불공평하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올 거야. 정신 차리고 살다 보면, 분명히.”
선생님이 마치 긍정 확언이라도 하는 사람처럼 ‘분명히’라는 말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하고 싶은 얘기가, 그거였어?”
“아니요.”
“그럼…?”
“아깐, 왜 그러셨어요, 선생님? 눈물, 봤어요….”
나는 손으로 눈 아래를 가리키며 선생님 눈을 바라봤다. 이나 선생님이 쑥스러워하는 표정으로 한동안 커피 잔을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신우 할머님이 학교에 왔다 가셨어.”
“저희 할머니가요? 언제요?”
나는 다른 사람에게서 할머니 얘기를 들으면 급격히 예민해진다. 진호가 할머니를 언급했던 그날처럼.
“지난 주였을 거야.”
“무슨 말씀, 나누신 거예요?”
“신우에 관한 이런저런 얘기들… 그런데 확실히 알겠더라고. 신우 할머님이 신우를 얼마나 아끼시는지… 동생인가, 귀여운 꼬마친구도 같이 데리고 오셨던데?”
“사촌동생이랑 같이 살고 있어요.”
잠시 생각에 잠긴 듯하던 선생님이 다시 말을 이었다.
“할머니가 좀 힘들어 보이셔서 쌤이 1층 현관까지 배웅해 드렸거든….”
“감사해요.”
“아니, 그런 말 듣자고 하는 얘기는 아니고…. 현관 앞에 웬 손수레 하나가 세워져 있더라고. 거기에 꼬맹이를 싣고 돌아서서 가시는 뒷모습을 보고 서 있자니 마음이 좀, 그랬어. 쌤 할머니 생각도 나고 해서. 아까 그 모습이 떠올라서 그랬던 것 같아. 쌤이 본의 아니게 신우 당황하게 만들었나?”
“아니요. 괜찮아요. 그냥 좀, 궁금했어요.”
사실 괜찮지 않았다. 손수레에 미야를 태우고 학교까지 찾아온 할머니가 원망스러웠다. 이나 선생님이 그 모습을 봤다고 생각하니 어디론가 숨고 싶어졌다. 고모가 할머니에게 화를 낸 이유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다행이고.”
선생님이 빙긋이 웃었다. 그러고 난 후 찾아온 어색한 정적. 나는 무슨 말이든 하고 싶어졌다.
“처음이에요. 선생님과 이렇게 얘기 나눠보는 거요.”
“그랬어? 앞으로는 선생님들한테 먼저 말도 붙여보고 그래. 쌤들, 학생들이 먼저 말 걸어주는 거 은근히 좋아해.”
“네…. 선생님?”
“응?”
“전 이제 어떻게 될까요? 학교를 그만둬야 하는 건가요?”
“신우, 너 겁나는구나?”
“조금이요.”
“이렇게 겁 많으면서 어떻게 근수를 그렇게 만들어놨을까?”
선생님이 마치 신기한 물건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표정으로 내 얼굴을 살폈다.
“죄송해요.”
“쌤한테 미안해할 건 없고. 궁금해서 그러는데, 신우는, 꿈이 뭐야?”
“잘, 모르겠어요.”
“그래 뭐, 사실 쌤도 아직 꿈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니까….”
선생님의 말이 조금 이상하게 들렸다. 선생님이 되었으니 꿈을 이룬 게 아닐까, 내심 생각하고 있었나 보다. 선생님 나이쯤 되면, 아니, 어른이 되면 꿈은 으레 이루어져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건지도….
“그거 알아? 사실은 쌤 이름 개명한 거다!”
일급비밀을 흘리는 사람처럼 선생님이 손으로 입을 감싸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원래 이름은 뭐였는데요?”
“그건 특급비밀! … 어느 순간 사는 게 참 재미없더라. 돌아보니까, 시간과 끝나지 않는 씨름을 하며 억지로 버티기만 하고 있더라고. 한 번 사는 인생 너무 억울하잖아? 그래서 좀 신나게 살아보고 싶어서 과감하게 이름 바꿨는데, 그래서인가 조금 내 인생에 ‘신’이 붙은 것도 같고… 근데 쌤이 너 앞에서 왜 이런 얘기를 하고 있지?”
선생님이 머쓱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선생님의 목소리와 미소에서 온기가 풍겨 나오는 것 같았다. 꽃향기가 실려오던 어느 봄날의 실바람처럼.
“아무튼, 너무 걱정하지는 마. 신우가 생각하는 그런 일은 없을 거야. 하지만 신우도 약속해. 앞으로는 이런 일 절대 없을 거라고.”
“네. 약속드릴게요.”
“그래, 그거면 됐어. 할머님 생각해서라도 앞으로는 절대로!!”
선생님이 또다시 주먹을 불끈 쥐어 올려 보였다. 어느새 내 손도 선생님의 손짓을 따라 하고 있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신우의 꿈을 응원할게. 참, 지난번 과제 한 거 보니 신우 글 잘 쓰던데, 블로그 글 같은 거 꾸준히 써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참고해.”
그 순간, 내가 살아온 날들을 통틀어 가장 큰 격려를 받은 것 같았다. 내가 좀 더 괜찮은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선생님과 얘기 나눌 용기를 낸 나를 칭찬해주고 싶었다. 내가 그렇게 하기를 선택하지 않았다면, 그토록 따뜻한 커피를 마셔볼 기회 같은 건, 분명, 나를 찾아오지도 않았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