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진주만>을 다시 보다
어쩌면 우리 가족의 하와이 여행은 지금으로부터 이십여 년 전 개봉된 한 편의 영화에서 시작된 건지도 모르겠다.
때는 바야흐로 2001년이었다. 나는 엄마와 함께, 조시 하트넷과 벤 에플렉 주연의 <진주만>을 보러 극장을 찾았다. 엄마와 둘이서 극장을 간, 몇 되지 않는 기억 중 하나로 남아있는 날이다.
내게는 비극적 주인공에 대한 잔상이 마음에 오래도록 남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그 인물이, 어쩐지 고혹적이기까지 한 눈빛을 지닌 주인공이라면, 그 강렬함은 곧잘 배가되기도 한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은 훨씬 덜하지만, 구르는 낙엽만 봐도 촉촉한 감성에 젖어들던 20대 청춘의 나는, 눈빛이 매력적인 주인공이 등장하는 작품을 보고 나면 폭풍 같은 감정에 휩싸이는 나 자신을 주체하지 못하곤 했다. 영화 <진주만> 속 조시 하트넷도 그러한 인물 중 하나였다.
하와이 여행을 준비하며 가장 먼저 떠올랐던 것도 영화 <진주만>이었다. 개인적으로 '다크투어'를 선호하고, 전쟁 영화를 즐기는 편이긴 하지만, 그보다는, 내 풋풋한 청춘의 기억이 녹아있는 이 영화를, 인상 깊었던 주인공을 꼭 다시 만나보고 떠나야겠다는 의무감 같은 것이 솟구쳤다. 그리하여 나는, 하와이 여행을 준비하기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나와 함께 <진주만>을 감상할 가족 구성원을 찾았고, 고맙게도 초등학생 아들 녀석이 흔쾌히 내 제안에 동참하며, 우리 모자- 이번 여행에서 텐션이 더 높았던 구성원들이었다-는 즐겁게 하와이 여행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스무 해를 지나 다시 봐도 그는 매력적이었다. 영화에서는 장렬히 전사한 그였지만, 진주만을 찾아가면 어쩐지 세월을 거스른 그가 여전히 그곳에 머무르고 있을 것만 같았다. 아무래도 영화에 너무 푹 빠졌나 보다. 부작용이 꽤 심각했던지, 진주만 바다 아래 잠들어 있는 'USS Arizona' 기념관 예약 티켓을 가만가만 쓰다듬으며 나는 알 수 없는 설렘에 빠져들었다. 아마도 짝꿍은, 내가 2차 세계대전에 미국이 참전한 결정적 계기가 된 그날의 흔적들을 찾아가 보고 싶은 마음에서 진주만 방문을 제안했을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진주만을 우리 여행의 첫 번째 코스로 잡은 데에는 다분히 내 사심이 작용했다.
그러고 난 후, <벌거벗은 세계사>의 '태평양 전쟁'편을 시청했다. 때마침 진주만과 미드웨이 해전에 관한 이야기가 나와, '이토록 시기적절한 프로그램 편성을 보았나!'라고 기뻐하며, 짧지 않은 시간 초집중 모드를 발휘하는 모범생이 되어, 강사가 전해주는 이야기들을 스펀지처럼 흡수했다. 야자수와 에메랄드 빛 바다의 휴양지인 하와이로 떠나기 전 태평양 전쟁 관련 자료만 찾아다니는 내가 이상했던지, 사춘기 딸내미가 이해불가능한 사람 쳐다보듯 제 엄마를 바라보았지만, 나는 나름의 명분이 있었고, 영상들은 기대 이상으로 흥미로웠다.
사실, 딸의 미심쩍어하는 눈초리를 마주하자 걱정이 슬그머니 올라왔다. 아름다운 들판이 펼쳐진 비현실 세계에서 급작스럽게 콘크리트 건물로 가득한 현실로 돌아온 것 같았달까. 어느 순간부터 AI와도 같은 표정을 기본값처럼 장착한 채, 일상의 거의 모든 것들에 시큰둥한 저 소녀를, 말도 잘 통하지 않는 하와이까지 끌고 가서, 짧지 않은 여정을 어떻게 잘 굴려나갈까, 우려스러운 마음이 가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내 의중을 읽은 것일까. 내가 아주 잠시 쳐다보고 있었을 뿐인데도 역시나, 딸은 무심한 표정으로 익숙한 한 음절을 내뱉었다.
"왜?"
"네안이 너, 하와이 가기 전 옷 좀 사야 하지 않겠어?"
나는 최대한 상냥하게, 구슬리듯이 말을 건넸다.
"나, 옷 있는데?!"
헛웃음이 나오려 했다. 딸은 옷 돌려 입기의 달인이기 때문이다. 옷을 고르는 취향이 무척 까다로운 딸이 가장 애정하는 옷은 '학교 체육복'이다. 평소에도 옷을 거의 구입하지 않고, 마음에 드는 옷 두 세벌이 닳아 해질 때까지 입고 또 입는다. 의도한 바는 아니겠지만, 엄마 입장에서 가계 상황에 도움을 주는 딸의 이런 습관이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옷도 좀 사고, 친구들과 떠들썩하게 놀러 다니며 바깥 활동도 좀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때때로 내가 이런 속마음을 슬쩍 비추기라도 하려 치면 딸에게서 으레 돌아오는 말은,
"귀찮아."
귀에 화석이 되어 새겨질 것만 같은 세 글자다.
그래도 생애 처음으로, 드넓은 에메랄드 빛깔이 우리를 태평양의 너른 품으로 맞아줄 터인데, 이번만큼은 저 하자는 대로 그냥 놔두고 싶지가 않았다. '그래. 가기 싫다고 뻗대지 않는 것만 해도 장하지.' 평소의 딸을 생각한다면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최근 들어 이보다 더 협조적인 때가 있었던가, 다행인지 불행인지, 곰곰이 생각해 봐도 떠오르지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