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 여행 중 내가 가장 적응이 되지 않았던 건 '팁 문화'였다.
이전에도 해외여행을 하며 팁 문화를 경험해 본 적이 있었지만, 그때의 팁은 나의 '선택'이라는 느낌이 강했고, 지불해야 하는 총금액의 10~20프로 사이에서 자율적인 내 의지로 (현금으로) 내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하와이의 팁문화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한 줄로 요약해 보자면, 하와이의 팁은, 좀 더 시스템적으로 갖춰진, 사지(혹은 삼지) 선다형의 필수코스였다.
이러한 하와이의 팁문화를 제대로 경험하게 된 첫 번째 장소는, 숙소 근처의 한 스테이크 전문 레스토랑이었다. 와이키키를 오가며 걷던 길가에 위치한 스테이크 전문 레스토랑은, 풍기는 냄새만으로도 이미 반쯤 마음이 가 있던 곳이었다. 해질 무렵 와이키키에서 숙소로 돌아가던 길, 널찍한 공간의 야외테라스에서 스테이크를 즐기는 사람들을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던 우리는, 결국 큰맘 먹고 그곳의 손님이 되어보기로 마음먹었다. “우리가 이 정도도 한 번 못 즐길 만큼 거지는 아니잖아!"라고 부르짖으며.
ABC스토어에서 구입한 도시락만 까먹다가, 은은한 조명 아래의 쾌적한 공간에서 스테이크를 썰고 있자니, 흡사 삼등 칸 승객에서 일등 칸 승객으로 급격하게 신분 상승이라도 한 것 같았다. 우리 테이블을 세팅해 준 직원은 '이카이카'인지 '우카우카'인지 헷갈리는, 특이한 하와이안 닉네임을 가진 일본인 2세(혹은 3세)였는데, 처음 본 순간부터 자리를 비우고 나갈 때까지 연신 친절한 얼굴을 유지하며, 틈만 나면 '필요한 것'이 더 없는지 물어보았다. 졸지에 삼등 칸에서 일등 칸으로 넘어와 어리둥절한 즐거움에 빠져 있던 나는, 그의 미소와 상냥한 말투를 일본인 특유의 몸에 밴, '순수한 친절함'으로 받아들이며 점점 더 기분이 고양되고 있었다.
그러나, 식사를 마치고 받아 든 영수증에서 생각지도 못한 ‘사지선다'의 제안을 맞닥뜨리자, 조금 전까지 고양된 기분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당황스러운 고심이 그 자리를 치고 들어왔다. 영수증 아래에는 '팁 제안'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네 가지 종류의 팁이 기재되어 있었는데, 팁이 더해진 최종 금액을 확인한 내 머릿속에는, 좀 전까지 사람 좋은 미소를 내보이던 직원의 얼굴이 마치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스쳐 지나가며, 어쩐지 배신감 같은, 실망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하와이의 팁은 음식값과 함께 카드로 일괄 결제되는 시스템이었는데, 팁을 총 영수 금액의 18~25% 사이에서 지불하는 것 이외의 다른 선택의 여지는 내게 주어지지 않는 것 같았다. 하와이 물가에다 최근의 비싼 환율이 더해진 금액은 꽤나 큰 부담과 압박으로 다가왔고, “스테이크 한 번 썰어봤으니 다시 ABC스토어 도시락이나 사 먹자."라는 말이 절로 나오게끔 만들었다.
하지만 역시 인간은 망각의 동물인지, 이 이후로도 우리는 두 번이나 더 레스토랑에서 끼니를 해결했다. 그나마 '이카이카'씨와 빅아일랜드 '볼케이노 하우스' 레스토랑 직원의 서비스는 만족할 만했고, 금액적인 면에서 부담은 있었지만, 우리가 지불한 값에 대해 큰 불만은 없었다. 고객의 입장에서 팁 문화가 거의 폭력적으로까지 느껴진 건,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인이 운영하는 현지 식당에서였다.
하와이 하늘 아래에서 며칠 지내다 보니 필연적으로 한국 음식이 그리워졌다.
그러던 차에 짝꿍이, 숙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칡냉면으로 유명한 한국식당을 찾아냈고, 냉면에 떡볶이까지 함께 판다는 것을 알게 된 우리는, 길게 망설이지 않고 한국식당으로 향했다. 어쩌면 한국적인 서비스를 접하고 싶다는 기대감이 우리를 그곳으로 이끌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때까지의 우리는, 하와이의 거의 모든 서비스 분야에서 '미국적인 철저한 자본주의'를 처절하게 맛보고 있었기에.
그렇게 찾아간 곳에서 그녀를 만나게 된 것이다. 값비싼 팁을, '끊임없이 따라주는 물'로 대신하려던 '무서운 언니'를.
반가운 인사를, (입에 발린 말일지라도) 고국의 언어로 건네 듣는 친절한 말 한마디를 내심 기대하고 간 한국식당에서, 반가운 인사는 고사하고, 오히려 팁을 강요하는 분위기에 우리는 씁쓸한 실망감만 잔뜩 안고 돌아왔다. 게다가, 내 생애 먹어본 중 가장 퍼석퍼석하고 맛없는 떡볶이를 이곳에서 경험했다.
내가 한국식당의 그녀를 ‘무서운 언니'라고 말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정말로 그 존재 자체가 부담스럽고 두렵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그 직원은, 테이블에 세팅되어 있는 스테인리스 컵의 물 수위가 조금이라도 내려가려 치면, 어디 있다가 나타난 건지, 물병을 치켜들며 물을 넘치도록, 반복적으로 채워 담았다.
그녀는 아들내미의 컵에 유난히 더 집착하는 모양새였는데, 아들이 물을 마시나 안 마시나 곁에 우두커니 선 채로 확인하며, 5분 대기조처럼 한참을 머물러 있다 가곤 했다. ‘노려보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아들의 컵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말이다. 그녀가 손에 받쳐 들고 있던 물병에 거부감이 들 정도였다. 좀 더 편하게 먹어보자고 간 자리에서 하와이에서의 가장 불편한 식사를 하게 되었다는 것이, 더욱이 물마저 체할 것 같았던 불편을 감수한 우리가 되려 팁을 지불해야 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지던 순간이었다.
"엄마, 나 물 그만 마시고 싶은데 아줌마가 내 옆에 서 계속 물 따라서 조금 무서웠어. 물 안 마시면 안 될 것 같아서 억지로 계속 마셨더니, 물로 배가 가득 차서 나 지금 배가 터질 것 같아."
식당을 나서며 아들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할 지경까지, 그녀의 '물 따르기'는 계속되었다. 하와이의 한국 식당에 가서 냉면도 떡볶이도 아닌 물로 배를 채우고 나오는 불상사가 그녀 덕분에 발생한 것이다. 마르지 않는 물보다 다정한 말 몇 마디가 있었더라면 그토록 팁이 아깝게 느껴지지는 않았을 텐데, 어쩐지 물로 위협을 당하다 온 것 같은 기분에, 팁만큼의 금액을 왕창 털리고 나온 듯 뒤끝이 좋지 않았다. ‘내가 이 정도 했으니 당신은 당연히 팁을 내야지?!’라고 말하고 싶어하는 표정의 그녀 덕분에.
하와이의 팁문화는 전방위적으로 널리 퍼져 있었다. 심지어 배스킨라빈스와 유사한 아이스크림 가게마저도 팁을 요구했다.
팁이 없음에도 훨씬 더 훌륭한 서비스를 제공해 주는 우리나라 가게의 수많은 직원들을 떠올리며, '우리나라가 참 좋은 곳이구나', 감사한 마음이 드는 동시에, 서비스 하나에도 ‘헝그리 정신’을 요구하는 한국 문화가 문제인 것일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아무튼 한 가지 확실히 깨우친 건, 미국이 자본주의만큼은 우리네보다 훨씬 더 매정하고 강력하게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이다.
팁 같은 것 없어도, (거의) 무한 리필로 맛깔 난 반찬을 먹을 수 있는 우리나라가, 상냥한 말을 건네주는 '이모님'이 있는 우리네 식당이, 물 정도는 직원 눈치 보지 않고 자유의지로 얼마든지 가져다 마실 수 있는 분위기가 그리워지던, 하와이에서의 날들이었다.
이번 여행을 하며 '미국 진짜 제대로 자본주의네!'라는 탄식이 흘러나오게끔 한 요금들이 있었다.
기본 룸 사용료에, 거의 배와 배꼽이 전도될 만큼의 엄청난 '청소비'와 추가 금액이 붙어 있었다.
청소랄 것도 별로 없었던 작은 공간이었는데 말이다.
이런저런 명목으로 가격을 붙여서 총 결제 금액을 올리는 데에 도가 틘 자본주의 시스템이 아닌가 싶다.
코나의 리조트에서, 방값을 제외하고, 추가로 정산한 내역.
세탁실 세제비와 주차비 등이 추가되었고, 우리나라에는 없는 '리조트피'라는 게 따로 있었다. 리조트피에는 ‘칵테일바 이용 쿠폰' 등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우리처럼 아이들이 있는 가족 단위의 관광객들이 활용하기 힘든 쿠폰을 리조트피에 기본적으로 포함시키는 것이 다소 불합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