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나 다를까, 오늘도 점심이 되기 전 딸에게서 전화가 걸려온다. 무언가 부탁할 것이 있거나 용돈이 필요할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전화하는 법이 없는 딸이, 나흘 전부터 이 시간이면 어김없이 내게 전화를 한다. 그것도 기운 빠지고 축 처진 목소리가 아닌, 에너지가 실린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말이다. 그런데 목소리의 톤과 달리 전하는 내용에는 실망과 분노가 담겨있다. 나에게로 향한 것은 아니지만, 내용과 형식이 전혀 일치하지 않는, 이 아니러니한 딸의 전화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나는 여전히 난감하다. 그럼에도 딸이 매일같이 나를 이토록 간절히 찾아준다는 사실이 감사할 따름이다. 비록 오래 지속될 일은 아니라 할지라도.
얼마 전 딸은 고등학교 입학 후 첫 중간고사를 치렀다. 중학교를 졸업하기 전부터 고등학생이 되는 것을 두려워했던 딸이었다. 그럴 법도 하겠다 싶은 것이, 중학교 1학년 시절 울면서 학원을 뛰쳐나온 이후로 사교육의 도움을 거부하고 있는 처지인 데다가, 오래 앉아 있으면 금세 허리통증과 피곤함을 느끼는 저질 체력이라, 고등학교 생활이 시작 전부터 꽤나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딸의 예민한 성격을 잘 알기에, 중학교 시절에도 웬만하면 부모로서 아이에게 학업 스트레스를 주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시험 성적표를 받아 오면 거친 말들이 꿈틀꿈틀 목구멍으로 기어오르곤 했다. 이제는 그런 상황에도 제법 이력이 붙어 쿨하게, '정 안되면 우리 네안이 (고등학교) 정규교육 접고 검정고시 공부하자.'라는 말이, 짝꿍도 나도, 자연스럽게 나온다. 반은 진심이고 반쯤은 딸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해서다.
아이들마다 학습 능력이나 속도가 다를 진대, 지금의 학교 현장은 너무 버겁게 돌아가는 것 같다. 입학과 거의 동시에 시작된 과목별 수행평가는, 지필평가 기간을 제외하고 거의 한 학기 내내, 한 과목당 몇 번을 거치며 진행되고, 그 시험들을 준비하다 보면 아이는 가족들과 함께 체험학습 한 번 가기도, 본인이 좋아하는 취미생활을 하기에도 큰 어려움을 겪는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딸이, 학업 부담과 스트레스 때문에 그림이 도무지 그려지지도 않고, 그릴 수도 없다는 한탄을 떨치지 못하고 있는 이유다.
"엄마, 나 이러다가 방학 때도 학교 나가야 되면 어떡해?! 선생님이 그러시는데, 일정 점수 이상 못 받으면 방학도 없고, 진급도 유예될 거래. 아니, 이게 말이 돼? 나처럼 수학 못하는 애들은 어떡하라고!"
올해부터 고등학교에서 '고교학점제'가 실시되면서 학사일정이 예전과 사뭇 다르게 돌아가는 모양이다. 수학과 도무지 가까워지기 힘들어, 몇 번의 호소를 거쳐 급기야는 울고불고 눈물 바람에 이르러서야 사교육의 장을 탈출해 나온 딸은, 수학만 아니면 그래도 공부가 할 만하다고 자신감을 실어 말한다. 들입다 암기해서 토해내야 하는 공부도 받아들이기가 힘들지만, 그것까진 까라고 하면 까겠으나, 수학이 자신에게 주는 괴로움은 버티고 극복해야 하는 대상으로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중학교와 급이 다른 고등학교 시험 문제를 처음으로 경험하고선 적잖이 충격을 받았던지, 시험 기간 내내 분노와 좌절감과 넋두리가 섞인 전화를 걸어온 것이다.
며칠 째 이어진 딸의 전화에는 학업에 대한 고충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시험을 마치고 귀가하는 길, 파란 하늘을 보며 답답한 그 마음을 토로할 대상으로 가장 먼저 그리고 거리낌 없이 떠오른 사람이 바로 엄마인 나였던 것이다. 역시나 하소연은 수학 시험을 치른 날에 정점을 찍었다. 격앙된 말들이 딸에게서 폭포수처럼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학창 시절 수학을 좋아해 본 기억이 없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사칙연산 말고는 수학적 회로를 돌려 본 기억이 거의 없는 나로서는, 딸의 하소연에 조언을 주기보다는 연신 '그건 그렇지',라고 말하며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는 형편이다. 수학을 좋아하고 잘하는 짝꿍이 이런 우리를 본다면 혀를 끌끌 차며 한심해할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엄마, 나 00점 나올 것 같아, 큰일이야."라며 부리나케 전화를 걸어오는 딸과의 이런 상황이 나름 고맙기도 하니, 시험을 어렵게 낸 출제자들에게 감사할 일인가 싶기도 하다. 문제가 어려웠다기보다는 딸이 시험지로 실컷 죽을 쑤고 왔을 확률이 더 높아 보인다는 것이 문제긴 하지만. 오래전, 학교 시험을 치르고 나면 엄마가 생각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던 나로서는, 그래도 내가 딸에게 꽤 괜찮은 엄마인가 보다,라고 위안 삼으며 이마저도 소소한 일상의 행복처럼 느끼고 있다. 그래도 대책은 필요할 테다. 시험 때마다 계속 이런 통화를 주고받다가는, 딸이 대학도 아닌 고등학교를 정말로 4년씩 다니게 될지도 모를 일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