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무연고자의 죽음
해가 저물기 전, 한수복 씨는 산을 올랐다. 언제나처럼 성실하게.
무겁게 끌리는 오른쪽 다리가 힘겹게 느껴지지만 오른손에 쥐고 있는 지팡이에 힘을 주어 한 걸음 한 걸음, 그의 시선이 향하는 위를 향해 걷고 또 걷는다. 이제 며칠 후면 그의 생일이 다가올 것이다.
수복 씨는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있던 날 부산의 한 판자촌에서 부모님과 두 누나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상의 첫 빛줄기를 맞이했다. 지리한 전쟁의 끝과 함께 그들을 찾아온 새 생명에게 부모님은 '복을 받은 아이'라 해서 '수복'이란 이름을 지어주었다.
하지만, 그가 누렸던 그 많은 날들은 이제 기억할 이 하나 없는 한 줌의 가루가 되어 사라질 것이다.
수복 씨는 지금 그의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다.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예전의 행복했던 순간들이 마치 한 편의 파노라마처럼 그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누나들과 소꿉놀이하던 어린 시절, 철없는 막내아들에게 온 마음을 내어주시던 부모님, 자동차 공장에서 첫 월급을 받아 들었을 때의 뿌듯했던 마음, 미소가 맑고 수줍음 많았던 그녀와의 첫 데이트, 그리고 그의 눈을 꼭 닮은 여리고 작은 생명체를 품에 안았던 감격스러웠던 순간....
그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려버린 건 단지 수복 씨의 잘못 때문이었을까, 그가 좀 더 열심히 노력하고 살았더라면 이렇게 쓸쓸한 마지막을 맞이하지는 않았을까? 수복 씨는 스스로에게 수도 없이 질문들을 던지고 던졌다. 가슴속에 돌이킬 수 없을 생채기가 날 정도로.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서 들려온 대답은 '아니다'였다. 공장에서 열심히 일해 모은 돈을 쌈짓돈 삼아 일궈냈던 서울 외곽의 자그마한 자동차 부품 공장. 주말도 없는 성실함으로 키워나갔던 그곳이 바람 앞의 먼지처럼 날아가버린 건 1997년 IMF가 터진 직후였다.
그건, 아무리 돌이켜봐도 수복 씨 본인이 어찌할 수 없는 자연재해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것도 온몸으로 부딪혀 산산이 부서질 수밖에 없는… 하지만 그 누군가는 타인들의 고통과 희생을 자양분 삼아 아무렇지 않게 피해 갈 수 있었던….
수복 씨는 문득 30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님 생각이 난다. 수복 씨의 어머니는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날, 그의 손을 꼭 잡고 '행복하게 살라'고 유언을 남겼다. 그런데 이제 그는 자신이 없다. 저 먼 곳에 있는 어머니 얼굴을 제대로 다시 볼 용기가.
수십 수백 번 마음을 굳게 다잡고 왔지만 수복 씨는 자꾸 눈물이 날 것 같다. 이렇게 세상과 작별하면 그를 기억해주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을까? 세상에 남은 솜털만큼의 미련과 불안감이 때때로 그의 발걸음을 더디게 만든다. 그러나 이제 그의 곁에는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고 말해 줄 사람도,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 줄 이 하나 남아있지 않다.
수복 씨의 눈앞에 미리 봐 두었던 나무가 보인다. 수복씨가 잠시 숨을 고르고 마지막 의식을 치르듯 주변의 풍경을 찬찬히 둘러본다. 그리고 배낭 속에 준비해 온 줄을 꺼내 든다. 이곳에서 죽음을 맞이하면 한동안 아무도 그를 찾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면서.
멀쩡한 몸뚱이로도 환영받지 못했던 인생, 썩어가는 몰골로 사람들에게 발견되고 싶지는 않았다. 지독한 냄새를, 죽음의 공포를 안겨주며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싶지도… 그저 조용하고 깔끔하게 그의 마지막을 이 세상에 남겨놓고 가고 싶었다. 그건 수복 씨의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었다.
언젠가 누군가 그를 발견하리라. 그렇지만 그 순간이 조금은 천천히 다가오길 수복 씨는 바란다. 그래야 시간이 그의 마지막 남은 살결까지 다 날려버린 후일 테니까.
그의 마지막 숨을 내쉴 장소로 이곳을 택한 것도 그런 마음 때문이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란 때론 스스로도 알기 어려운 것이 아니던가. 발견되지 않고 싶은 마음만큼이나 누군가는 자신을 찾아주기를, 그가 남긴 마지막 말들을 기억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자꾸만 그를 뒤흔든다.
수복 씨가 오른쪽 바지 주머니에 넣어 둔 유언장을 꺼내 마지막 몇 줄을 덧붙여 적어 내려간다. 여기까지 오르느라 끝까지 애쓴 그의 손끝이 힘없이 떨려온다.
'…그래서 이렇게 마지막 편지를 남겨놓고 갑니다. 부모님이 보고 싶습니다. 나를 발견하게 되면 내 남은 뼈를 그곳에 묻어주면 정말 고맙겠습니다. 여기에 적힌 주소로요. 제 이름을, 제 모습을 기억해주지 않아도 좋습니다. 다만, 제가 이 세상을 열심히 살다 간다는 것. 그것 하나만은 꼭 기억해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다시 종이를 곱게 접어 주머니에 넣은 그의 몸에서 무엇인가가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수복 씨는 마지막으로 크게 심호흡을 하고 발밑에 놓인 줄을 천천히, 집어 들었다.
2020년 8월.
장마인지 기후변화 탓인지 모를, 유난히도 지루하게 이어졌던 비가 물러간 어느 주말 오전, 김춘기 씨는 부인 정숙자 씨와 함께 김포 문수산 등산로를 오르고 있었다. 살짝 습기를 머금은 나무들과 흙에서 흘러나오는 자연의 향기에 취한 춘기 씨 부부는 상쾌한 기분으로 즐겁게 대화를 나누며 여느 때와 같은 등산 코스를 훑어가고 있었다.
등산을 시작하고 30분쯤 지났을까, 산등성이 위쪽에서 뭔가 둔탁한 물건이 굴러 내려와 춘기 씨 부부의 발 앞에서 멈췄다. 돌 같기도 하고 흙 뭉치 같기도 한 그 둥그런 물체는 춘기 씨 부부의 눈에 별로 특별한 물건처럼 보이지 않았다. 춘기 씨는 무심결에, 장마철에 쓰레기 더미 같은 것이 쓸려 내려왔나 생각하며 그냥 지나쳐 가려했다. 그런데, 그 낯선 물체를 뒤로하고 걸어가던 춘기 씨의 뒤통수가 순간 싸늘해져 왔다. 춘기 씨는 무언가가 등 뒤에서 잡아끄는 듯한 느낌이 들어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
- 여보, 기분이 좀 이상한데… 저게 뭔지 한 번 가까이 가서 확인해 봐.
부인 숙자 씨가 춘기 씨와 같은 느낌을 받은 모양이었는지 살짝 움츠러든 모습을 하고는 말했다.
춘기 씨는, 숙자 씨에게 그러겠다고 얘기했지만 막상 직접 만져볼 자신은 없어 근처에 있던 길쭉한 나뭇가지 하나를 집어 들어 그 물건을 이리저리 굴려보았다.
그때였다. 숙자 씨의 날카로운 비명소리와 함께 춘기 씨는 자신도 모르게 뒤로 물러나 주저앉아 버렸다.
그 물건은, 춘기 씨가 60년 넘는 인생을 사는 동안 단 한 번도 직접 보지 못했던 백골 상태의, 사람의 두개골이었다.
이틀 후 배달되어 온 조간신문 귀퉁이 한 편에 조그맣게 기사 하나가 실렸다.
지난 토요일 오전 8시 30분경, 김포 문수산 등산로에서 신원미상의 두개골이 발견되었다. 두개골은 등산을 하던 김 모 씨 부부에 의해 최초로 발견되었는데, 당시 사체의 몸통은 발견되지 않았다. 이에 김포경찰서는 문수산 일대에 대한 밤샘 수색을 진행하였고, 일요일 새벽 6시경 산책로 인근 야산에서 해당 두개골의 몸통으로 추정되는 사체 1구를 추가로 수습하였다. 김포경찰서 관계자에 따르면, 사체는 성인 남성으로 추정되며, 백골화 진행 상태로 볼 때 사망 후 꽤 오랜 시간이 흐른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또한, 몸통을 감싸고 있던 바지 주머니에서 유서로 추정되는 종이 뭉치가 발견되었으나 내용은 알아볼 수 없는 상태이며, 사체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물품은 현재까지 발견하지 못했다고 경찰은 발표했다.
한편, 경찰은 두개골과 몸통의 동일인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사체와 주변 물품들을 국과수에 감식 의뢰하였으며, 결과는 추후 발표할 예정이다.
기사는 여기서 끝이 나 있었다.
신문을 읽던 숙자 씨의 눈시울이 살짝 붉어졌다.
-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말없이 눈시울을 붉히는 숙자 씨를 바라보던 춘기 씨가 물었다.
- 그 사체 몸통이 발견된 것 같다네... 몇 년 전에 죽은 오빠 생각이 나.
숙자 씨의 오빠는 삼 년 전 자신이 기거하던 빌라 안방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연락이 닿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숙자 씨의 남동생 근배 씨에 의해 발견된 오빠의 상태는 처참할 정도였다고 숙자 씨는 들었다. 근배 씨는, 시체 썩는 냄새가 완전히 사라지는 데 한 달은 걸린 것 같다고 말했다.
한동안 신문 귀퉁이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숙자 씨가 혼잣말인지 춘기 씨를 향한 질문인지 알 수 없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 그런데, 종이에 뭐라고 적혀 있었던 걸까?
숙자 씨의 말에 춘기 씨도 호기심이 어린 듯한 표정으로 숙자 씨 곁으로 와 신문을 힐긋, 들여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