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츠부르크 1
한 도시에 며칠 씩 머무르는 여행을 선호하기에, 같은 호텔에서 몇 박을 묵게 되는 경우가 흔하다. 이러한 여행은 여러 숙소를 전전하지 않아도 되어 편리하고, 이동에 드는 비용과 수고로움을 덜 수 있는 장점이 있으나 한 가지 아쉬움을 동반한다. 그건 똑같은 아침 식단을 여러 날 먹게 된다는 것, 그리하여 아이들이 싫증을 낸다는 것이다. 잘츠부르크 여행을 계획한 데에는 이 같은 이유가 적잖은 역할을 했다. 비록 그것이 가장 중요한 연유는 아니었을지라도.
'빈 신년 음악회', '빈 소년 합창단'의 노래와 클래식 연주를 즐겨 듣던 중학생 시절부터, 오스트리아는 (죽기 전에) 꼭 한번 가 보고 싶은 나라였다. 더구나 모차르트의 고장인 잘츠부르크는, 내게 큰 감흥을 주었던 영화 '아마데우스'의 장면들이 녹아있는, 강렬하고도 애틋한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었다. 운 좋게도, 잘츠부르크는 뮌헨에서 기차로 두 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 거리였고, 나는 쾌재를 부르며 잘츠부르크 현지의 모차르트 콘서트 티켓을 예매했다. 우리가 그곳을 방문한 기간, 잘츠부르크는 때마침 모차르트 탄생 270주년인 동시에 '모차르트 주간(Mozartwoche)'이어서 도시 곳곳에서 모차르트 음악 축제의 장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1박 2일의 짧은 여정이었기에, 축제를 즐길 여유는 없었다.
잘츠부르크는 웬만한 곳은 걸어서 갈 수 있는 작은 도시였다. ‘아름다운 철제 간판’ 거리로 잘 알려진 게트라이데거리(Getreidegasse)가, 굳이 찾으려 애쓰지 않았음에도, 버스를 내려 발길 닿는 대로 잠시 걸으니 불쑥 눈앞에 모습을 드러낼 정도였으니. 모차르트의 생가도 게트라이데거리 인근에 있었고, 모차르트 콘서트가 열린 호텔도 마찬가지였다. 뚜벅이 여행을 선호하는 이에게 이보다 더 이상적인 곳이 있을까 싶었다. 주요 관광지가 반경 몇 백 미터 내에 오밀조밀 모여있는 곳이 잘츠부르크였다.
모차르트가 없었다면 어떻게 도시가 유지될까 싶을 정도로 잘츠부르크는 가는 곳마다 온통 모차르트였다. 기념품의 대부분에 모차르트의 얼굴이 박혀 있었다. 초콜릿 포장에도, 가방에도, 심지어 지우개 위에도....
"여길 봐도, 저길 봐도 저 아저씨(모차르트) 얼굴뿐이야. 으휴~"
친구에게 가져다 줄 기념품을 살펴보느라 분주하던 딸램은, 딱히 좋아하지도 않는 클래식 음악가의 얼굴로 도배된 물건들이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모차르트로 먹고사는 도시니까 당연하지."
모차르트를 마치 지나가는 동네 아저씨 부르듯 하는 딸의 입이 엄마는 내심 못마땅했지만, 큰 불만 없이 쫓아다니는 게 어디냐 싶어, 넓은 아량으로 품고자 했다. 그러다가 불현듯 궁금해지는 것이었다. 모차르트 탄생 이전의 이 도시는 어떻게 유지되었을지가. 한 명의 위대한 음악가는 그의 사후 수백 년이 지난 후에도, 수많은 후손들이 먹고살 길을 마련해 주며, 도시의 명맥을 이어주고 있었다. 다시금 거대하고도 강력한 문화의 힘을 느끼며, K-컬처가 앞으로 더 번성하고 지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해졌다.
잘츠부르크에서 모차르트가 살았던 집은 모두 두 곳이다. 하나는 게트라이데거리에 위치한 '모차르트 생가(Mozart Geburtshaus)', 다른 하나는 걸어서 5분 거리인 '모차르트 주거지(Mozart-Wohnhaus)다. 모차르트 생가는, 모차르트가 태어나 열일곱이 되던 해까지 살았던 곳인데, 지금은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누군가 내게 이곳에서의 거주를 제안한다면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싶을 만큼 음습한 분위기였다. 현재는 실내조명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어 그나마 조금 나아 보였지만, 실제 모차르트가 거주했을 당시 그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좁고 빛이 들지 않는 구조였다. 중세 유럽을 휩쓸었던 '페스트'의 기운이 서려있는 느낌이었달까. 이러한 곳에서 그의 재능이 빛을 발하고 아름다운 음악이 탄생했다니. 천재적 재능과 지극한 아름다움은 어둠으로도 결코 묻히지 않는 것인가 보다.
모차르트 생가에서 느꼈던, 애틋하고 짠한 마음은 모차르트 주거지에 방문하면서 희석되었다. 모차르트 주거지는 생가와는 달리 양지바른 곳에 자리 잡고 있어 전체적으로 환한 분위기였다. 모차르트는 17세가 되던 해부터, 빈으로 이사 가기까지 약 8년 동안 이곳에 머물렀다고 한다. 멀리까지 내다 보이는 창 밖 풍경에다가 실내 공간도 넉넉해, 막혀있던 숨통이 탁 트이는 느낌이었다. 실내악 콘서트가 열리면 좋을 법한 넓은 홀까지 있어, 그의 음악적 재능을 펼치는 데 든든한 환경이 되어주었을 것 같았다. 몇 백 년 전 이곳에서 일상을 꾸려나갔을 모차르트의 숨결이 아직도 집안 곳곳에 남아 방문객을 맞이하는 듯했다.
마침 모차르트 주거지는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도레미송'이 촬영된 '미라벨 정원' 입구와 마주 보고 있는 곳에 있었고, 두 장소 사이에는 꽤 괜찮은 셀프 카페가 있어, 저렴하고 맛있는 식사 후 두 곳을 돌아보기에 좋았다.
모차르트의 생가와 주거지에서 받은 낭만적 음악의 기운은, 모차르트 바이올린 콘서트가 열린 장소까지 이어졌다. 지은 지 수 백 년은 된 듯한, 시내의 한 호텔에서 열린 콘서트를, 백 유로가 채 되지 않는 금액으로 온 가족이 즐길 수 있었다.('잘츠부르크 카드'를 소지하면 20% 할인을 받을 수 있다) 삼십 석 규모의 작은 홀을 찾은 대다수의 관객은 희끗희끗한 머리의 유럽인이었고, 가족 단위로 온 경우는 우리가 유일했다. (우리를 의식한 연주자가 중간중간 독일어 대신 영어로 설명을 곁들여 주었다) 흐리고 추운 날씨 탓인지 빈 좌석이 더 많았지만, 그래서 더욱 연주자의 손짓 하나하나에 집중할 수 있었다. 잘츠부르크의 대학에서 유학 중이라는, 칠레에서 온 바이올린 연주자와 이탈리아 출신의 피아노 연주가가 들려주는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는, 그 어떤 장벽도 허무는 음악의 위대함이란 이런 것이다, 하는 것을 보여주는 듯했다. 비록 언어도 문화도 다르지만, 아름다운 것을 느끼고 예찬하는 마음에는 경계가 없었다. 훌륭한 연주자의 손끝에서 재탄생한 위대한 작곡가의 소나타가 울려 퍼지는 실내에 따스한 기운이 퍼지며, 어둠에 추적추적 물들어 가는 잘츠부르크 거리와 묘한 대비를 이루었다. 아쉬움 속 마지막 연주가 끝나자, 객석에서 일제히 소박하고도 알찬 박수가 터져 나왔다. 모차르트의 고향에서 마주한 그의 음악은, 배가 된 아름다움이 가슴 깊이 스며들어 온몸이 고양되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이런 연주일지 몰랐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좋았어!!"
"그랬어?!"
평소 클래식 음악을 듣지 않는 짝꿍이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고, 이날 나와 짝꿍은 생애 처음으로 모차르트로 대동단결하는 귀한 체험을 했다. 비록 아이들은 큰 감흥이 없어 보였지만, 아이들에게도 잘츠부르크는 모차르트의 도시로 오래도록 기억되리라. 위대한 음악가 모차르트의 도시이건, 지겹도록 얼굴 내비치는 모차르트 아저씨의 도시이건 간에 말이다.
콘서트가 끝나고...
잘츠부르크에는 부활절 계란을 파는 가게들이 여럿 있었다. 다채롭게 장식된 계란들로 가득한 공간이 어찌나 신비롭고 아름다워 보이던지. 김치가 낳은 계란을 기증하고 싶은 맘이 스멀스멀 올라왔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