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대중교통

뮌헨을 중심으로

by 지뉴

여행지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즐거움은 꽤나 쏠쏠하다. 현지인의 삶을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에서 관찰하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하와이는 지형 특성상, 섬 이곳저곳을 둘러보기에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데에 한계가 있었고, 차량을 렌트해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독일 뮌헨은 촘촘히 얽혀있는 체계적인 대중교통망이, 우리가 가고자 하는 곳 어디든 데려가 주었다.


SNS를 하다 보면 뉴욕이나 여타 선진국의 대중교통보다 한국의 대중교통이 시간을 정확히 지키고 깨끗하다며, 자긍심 어린 시각으로 만들어진 콘텐츠들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실제 내가 이용했던 영국이나 프랑스의 대중교통과 비교해 보면 이러한 말이 과장이 아닌 듯했다. 그러나 독일의 대중교통은 달라 보였다. 우리의 그것만큼이나 잘 정비된 동시에 오히려 더 쾌적한 느낌이었다. 특히 독일의 지하철 (이 글에서는 내가 이용한 뮌헨 지하철을 중심으로 다룬다)은 플랫폼의 층고가 매우 높고, 너비도 넓어 답답한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아파트 오 층높이는 족히 될 것 같은 지하철 천장을 올려다보며, 전쟁이 나면 이곳에 많은 사람과 물자를 수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플랫폼에 서서 둘러본 공간은 실제 전쟁 중의 벙커 같은 분위기가 풍겨 나오기도 했다.


이런 독일도, 노이슈반슈타인 성에서 퓌센 역까지 운행하는 버스가 한 시간 늦게 도착한 사실로 봤을 때, 운행 시간표의 정확도 면에 있어서는 다소 신뢰가 떨어져 보였다. 우리나라만큼 대중교통이 제 시간을 지키는 곳도 드문 모양이다. 그 이면에는 분명 승객과의 약속을 지키고자 하는 관계자들의 노고가 있을 테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근면 성실하게 책임을 다하는 모든 노동자에게 고마운 마음이 먼 나라 독일에서 불쑥 솟아날 줄이야. 그럼에도 위의 문제를 제외하면 독일의 대중교통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었다. 그중에서도 독일의 지하철 시스템은 퍽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거미줄처럼 얽히고설킨 뮌헨 지하철 노선도를 보며 제일 먼저 떠올랐던 건, 서울 지하철을 처음 이용할 당시의 내 모습이었다. 지방에서 갓 상경해 지하철 환승이 수행하기 어려운 미션으로 다가왔던 순간들, 때론 반대 방향으로 가는 차량에 올라 발을 동동 구르고, 또 때로는 환승할 곳을 찾지 못해 역사를 돌고 돌아 진땀 흘리며 어리벙벙해했던 내가.. 뮌헨의 지하철 노선도는 내가 처음 접했던 서울의 그것보다 더 복잡해 보였고, 도전 의식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서울에서 쌓아온 나의 '지하철 환승 내공'을 이곳에서 충분히 발휘해 보겠노라 자신만만해하고 있었는데, 독일에서는 그러한 내공 따위 그다지 쓸모가 없어 보였다. 뮌헨 지하철은 우리식의 환승이 거의 적용되지 않는, 우리와는 사뭇 다른, 독특한 구조를 지니고 있었기에.

뮌헨의 지하철 노선도(환승역들을 중심으로)

독일 지하철 시스템을 요약해 보자면 이러하다.

독일은 도심과 교외를 오가는 도시 고속철도인 S-Bahn과 주로 도심 내에서 운행되는 U-Bahn이 있다.

그러니까, 서울 지하철 1호선에서 9호선에 해당되는 것이 U-Bahn, 숫자로 이어지는 'N호선' 체계에 포함되지 않는 신분당선, 경의 중앙선 같은 라인이 S-Bahn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겠다.

복잡한 노선들로 연결되어 있기에 환승이 이루어지는 역들이 있다. 위 지도의 중앙역(Hauptbahnhof) 같은 곳이 대표적인데, 이미지에서 보다시피 여러 노선으로 갈아탈 수 있는 환승역이, 중앙역을 중심으로, 하나의 일자 라인으로 이어져 있다. 이는, 교통 수요가 집중되는 구간을 따라 노선을 설계했기 때문이다. 특히 U-Bahn의 경우, 1972년 뮌헨올림픽을 대비해 계획적인 건설이 이루어져 이러한 '선형 구조'가 가능했다고 한다. 이는 환승 거리를 짧게 하고, 열차 운행 패턴을 단순화하게 해 주었다.

결과적으로 뮌헨 중앙역 등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역으로 가면, '지하철을 타고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신뢰가 생긴다. (실제 우리는 중앙역에서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까지 수월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독일에서의 환승은, 국내 지하철처럼 역사의 위아래를 오르내리며 이동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대체로 지하철을 내린 플랫폼 그 자리에서 (이동 없이) 다른 노선으로 갈아타면 되는 방식이다.

도심 내외를 오가는 다양한 노선들이 환승역에서 하나의 철로로 합쳐지는 시스템이기에, 서로 다른 노선을 통해 온 승객들이 결국 지하철 역 내 동일한 플랫폼을 이용해 환승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지하철역 공사 단계에서 노선에 따른 선로를 ,*깊이를 달리 하여 여러 군데 파지 않고, 이용객들은 환승을 위한 이동에 수고를 들일 필요 없이 자신이 오르고자 하는 차량을 기다리면 된다. 지하철 역사를 건설할 때 공사비를 최소화할 수 있는,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신기했던 것이, 같은 노선의, 서로 반대 방향으로 향하는 차량 두 대가 한 플랫폼에 거의 동시에 들어온다는 사실이었다. 같은 플랫폼의 오른편으로 서울역으로 가는 공항철도 차량이 들어오는 동시에, 왼편으로는 인천공항 터미널 행 공항철도 차량이 들어오는 장면을 상상하면 되겠다.

만약 실수로 목적지 반대 방향으로 승차해 난감한 상황에 처한 이가 있다면, 지하철 문이 열리자마자 맞은편 방향으로 잽싸게 차량을 옮겨 타면 되는 것이다. 이용객 입장에서는 환승에 대한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겠다 싶었는데, 특히 나 같은 방향치들에게는 몹시 편리한 방식으로 느껴졌다. 다만, 환승 과정 또한 걸음수를 늘이는 일상 속 운동의 일환으로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다소 아쉬움을 남길 듯하다.


지하철의 효율성은 에스컬레이터에도 유사하게 적용되고 있었다. 독일의 에스컬레이터 일부는 상행과 하행이 동시에 운행된다. 만약 상행하는 이용객이 에스컬레이터에 먼저 탑승하면 에스컬레이터는 위로 운행되고, 하행방향을 이용하고자 하는 이는 에스컬레이터의 상행 움직임이 멈출 때까지 대기하고 있어야 하는 것. 빨리빨리 문화에 익숙한 한국에서는 이런 식의 운행이 이루어지기는 어렵겠으나, 독일에서는 꽤 효율적인 방식으로 보였다. 물론 이런 운행은 비교적 작은 규모의 역사 내, 이용자가 그리 많지 않은 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듯했다. 그럼에도 양방향 에스컬레이터는 우리가 가는 곳곳마다 적지 않게 눈에 띄었다.


경제성이니 합리성이니 뭐다 해도, 독일에서 단연 매력적인 대중교통은 '트램'이었다. 유럽 내 여러 국가가 비슷한 상황일 듯 하나.

어둠이 고요히 내린 밤거리를, 쨍하고도 은은한 오렌지 빛깔을 앞세우고 느긋하게 다가오던, **제시와 셀린이 타고 있을 것 같은 트램은, 먼발치에서도 가슴 설레게 하는 낭만적 기운을 품고 있었다. 단순히 대중교통이라기보다는 이야기와 로맨스를 싣고 달리는 문화 콘텐츠 같은 느낌이었달까. 홀로 여행하는 청춘이 밤의 트램을 이용한다면, 드라마 같은 인연이 탄생할지도 모를 일이다. 이십 대 시절 고독한 배낭여행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트램을 이용해 볼 것을, 하는 아쉬움마저 들었다.


쾌적하고 저렴하면서도 촘촘한 대중교통 덕분에 우리는 여행객으로 붐비는 도심 유명 관광지뿐 아니라, 현지인이 주로 이용하는, 변두리에 위치한 레스토랑까지 어렵지 않게 찾아 나설 수 있었다.

이방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독일의 대중교통은, 여행의 다채로운 맛과 멋을 접하게 해 주며 여행의 즐거움을 더해주는, 흥미롭고도 매력적인 존재였다.

지하철역 입구를 문지기처럼 지키던, 오동통한 비둘기들('U'-Bahn과 'S'-Bahn표시가 보인다)
오늘의 일정을 위해 지하철을 타고 중앙역으로 고고씽~
쾌적한 지하철 차량 내부
밤의 트램이 온다
저기 어딘가에 제시와 셀린이?

* 독일 지하철 플랫폼까지의 깊이는 우리의 그것에 비해 현저히 얕았다.

**에단 호크와 줄리 델피 주연의 영화 '비포 선 라이즈'의 극 중 남녀 주인공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