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여행 4일 차 새벽, 현실과 구분이 잘 되지 않을 정도로 선명한 악몽을 꾸었다. 테러범 무리가 호텔 복도를 서성이고 다니다 급기야 우리가 묵고 있는 방을 급습하는 꿈이었다. *1972년 뮌헨 올림픽 당시, 팔레스타인 테러단체가 이스라엘 선수 숙소에 난입해 인질극을 벌이다가, 독일 경찰의 미흡한 대응으로 인해 인질로 잡혀 있던 이스라엘 선수단 9명 전원이 살해된 사건이 있었다. 우리가 머문 호텔은 올림픽 공원 인근에 위치한 곳이었고, 뮌헨 올림픽을 기리기 위한 사진이 방마다 걸려 있었다. 그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전날 밤 들려왔던 (총소리를 닮은) 알 수 없는 소음 탓이었을까. 그도 아니면 무의식에 새겨진 다하우의 잔상 때문이었을까. 이렇게까지 실감 나는 악몽을 꾼 것은 실로 오래간만이었다.
식은땀을 흘리며 눈 뜬 아침, 시선 아래로 문제의 그 흑백 사진이 보였다. 어제와 달리, 묘하게 으스스해 보이는. 반쯤 무의식인 상태로 조심스레 방을 둘러보았다. 다행히 테러범은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고, 나를 제외한 이 방의 모든 것이 고요했다. 나머지 가족들이 가만가만 내뱉는 숨소리만이 들려올 뿐이었다. 꿈이 꿈에 머무르고 현실이 아니라는 사실에 얼마나 안도감이 들던지, 실성한 사람처럼 어슴푸레한 방 안에서 나 홀로 미소 짓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가 잠에서 깨어났고, 우리는 여느 날처럼 조식을 먹기 위해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그런데 이 날따라 레스토랑 분위기가 사뭇 달라 보이는 것이었다. 새벽녘의 꿈 때문일까. 잠시동안 어디에서 비롯된 변화인지 파악이 되질 않아 어리둥절했는데, 이내 그것이 사람들이 내뿜는 '활기'에 있음을 깨달았다. 레스토랑이 지난 며칠보다 두 배는 더 되는 숙박객들로 북적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이제껏 보고 느끼지 못했던 어떤 에너지로 가득한 사람들로 말이다. 주말이라 그런가 보다 했는데, 아무래도 그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다. 바이에른 뮌헨의 유니폼을 입고 있는 사람들, 붉은 소품들로 본인을 장식한 이들이 소란스레 오가는 것이.. 알고 보니, 알리안츠 아레나에서 'FC바이에른 뮌헨'과 'FC아우크스부르크'의 경기가 있는 날이었다.
친구들 무리로 보이는 이들도 있었으나, 대다수가 가족 단위로 경기를 보러 온 것 같았다. 국내 축구 경기를 보기 위해, 호텔에서 숙박까지 해 가며, 온 가족이 총출동한 광경이 우리에게는 퍽 신선하게 다가왔다. 또한 그 장면에서 독일인들이 얼마나 스포츠에 진심인지를 알 수 있었다. 경기를 앞두고 들뜬 그들의 표정에는 어떤 대상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한 이에게서 느껴지는 에너지가 뿜어져 나왔는데, 그 에너지에 금세 전염된 나는, 새벽녘에 나를 진땀 흘리게 했던 오싹한 꿈을 잊어버린 채, 그 순간 그 공간을 함께 하고 있는 이들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관찰하느라 시선이 분주해졌다. 짝꿍도 덩달아 들떠하는 모습이 확연해 보였다.
"이야!! (살다가) 이런 장면을 다 보네."
짝꿍이 감탄을 섞어 말했다.
"그러게 말이야. 흥미로운 광경이다."
우리는 희귀한 장면을 목격한 듯 놀라워했지만, 그들에게는 이런 주말이 드물지 않은 일상인 모양이었다. 그것도 몹시 신나는 일상 말이다. 독일이 축구에 얼마나 진심인지, 레스토랑의 공기에서마저 느껴지는 듯했다. 독일에서는 아이들이 자연에서, 놀이터에서 거칠게 몸을 부딪히며 성장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던데.. 백조를 찾기 위해 방문했던 영국 정원과 님펜부르크 궁전의 호수에서도 그들은 스포츠에 열과 성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두터운 얼음 호수는, 스케이트를 타는 가족, 팀을 나누어 아이스하키 경기를 하는 아이들로 장관이었고, 우리는 본디 의도와 다르게, 사람 구경을 하느라 쏠쏠한 재미를 맛보았다.
"어제 호수에서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스케이트를 너무 잘 타서 깜짝 놀랐어. 어설프게 타는 사람이 하나도 안 보이더라고."
한동안 스케이트 강습을 들으며 실력을 쌓느라 열정을 불태우던 짝꿍이 말했다. 그만큼 이곳에서는 평소 기회가 날 때마다 온 가족이 함께 스케이트를 탄다는 얘기일 테다. 특히 얼음판에서 아이스하키를 하는 아이들은 프로 선수라고 해도 믿길 정도로 놀라운 실력을 보여주었다. 그 순간, 고국의 아이들이 생각났다. 하루 몇 시간씩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수학 문제를 풀고, 단어 하나 더 암기하느라 여념이 없는. 스포츠나 예술은 '노는' 영역에 속하는 것이기에, 그저 시간 날 때나 겨우 하는, 부수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온실 속 화초처럼 철저히 세분화된 일정에 갇혀 지내는 아이들이.
온몸을 부딪혀 땀으로 성취해 내는 일을 소중히 여기는 독일의 분위기가 내심 부러웠다. 그렇기에 의사와 숙련공 사이의 임금이나 사회적 대우가 크게 차이 나지 않는, 극단적 격차에서 자유로운 사회가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며. 자신의 관심과 적성에 맞는 어떤 분야에서 능력을 갖춘다면 충분히 인정받고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 이번 독일 여행을 통해, 우리 사회도 그러한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두 아이를 둔 평범한 엄마로서, 점점 더 커져갔다.
"독일에 가면 독일 빵을 꼭 먹어 보고 싶어."
이번 여행을 앞두고 딸램은 독일 빵에 유난한 관심을 내비쳤다. 평소 '~보고 싶다'라는 표현을 거의 쓰지 않는 딸램이건만.. 그랬다. 스포츠만큼이나 빵은 독일인의 삶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독일 = 빵의 천국'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인간의 기본적 욕구를 해소해 주는 빵, 거기에 삶을 윤택하게 해 주는 스포츠에 대한 진심. 이 두 가지 조합이 조화롭게 굴러가고 있는 사회가 독일이라는 느낌을 나는 받았다.
그러한 인상을 받아서일까. 독일의 빵마저 몹시 건강해 보이는 것이었다. 오랜 세월 '빵순이'로 살아오며, 하루 한 끼라도 빵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삶을 살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네 일상에서 빵은 건강에 좋지 못한, 한 입 간식거리 정도로 여겨지고 있는 분위기에 설움이 느껴지기도 했기에, 한 끼식사로서 잡곡밥, 백미밥 아래의 천한 신분으로 취급받는 빵이, 독일에서는 귀한 대접을 받고 있는 모습에 흐뭇해지기까지 했다.
독일인의 주식인 빵은, 고국에서의 빵 같은 단 맛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구릿빛의 단단한 겉에 속은 담백하고 부드러워, 빵을 좋아하는 이들의 건강한 한 끼 식사로 손색이 없어 보였다. 독일에는 지하철 쇼핑가, 관광지 중심가, 조식 뷔페, 마트 코너를 가리지 않고 빵이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빵을 사기 위해 줄 지어 선 사람들을 보는 순간이, 빵을 애정하는 한 사람으로서, 어찌나 즐겁던지. 태어나 한 번도 보지 못한, 몹시도 다양한 종류의 빵들에 쉴 새 없이 돌아가던 내 시선을 주체하기 힘들었지만, 그 조차도 행복한 수고로움이었다.
'빵 좀 그만 먹어!'라는 소리를 수도 없이 들어온 나였는데, '그 소리 좀 그만 듣고 싶다'라고 생각하며 살아온 나날이었는데.. 호텔 조식을 먹으러 간 자리에서 목격한, 빵으로 수북한 가족의 식탁에 괜스레 흐뭇해지며, 먹지 않아도 덩달아 배 부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가 차려준 한 끼를 잘 먹어주는 자식을 지켜보는 어미처럼 말이다. 그 가족이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이 장면을 오래도록 새기고 싶다는 심정으로 잽싸게 휴대폰으로 도둑촬영까지 감행하였으니..
여기를 보아도 빵, 저기로 돌아보아도 빵.. 그야말로 빵이 주류인 공간에서 한국산 빵순이는 '이 얼마나 복에 겨운 장면인가' 감탄에 감탄을 거듭했더랬다.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그 수많은 빵 중에 단 하나도 **귀국길에 가져올 수 없었다는 것. 위험을 무릅쓰고 몸속에 숨겨서라도 데리고 오고 싶은 맘이 굴뚝같았기에, 수십 년간 빵순이로 살아왔고 앞으로 수십 년간 빵순이로 살아갈 여인은 그저 속으로 눈물만 삼킬 뿐이었다.
* 영화 '뮌헨'(2006,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을 보면 사건의 전말을 상세히 알 수 있다.
** 공항에서 오래 근무한 짝꿍의 말만 믿고선 국내로 빵 반입하기를 포기했건만, 알고 보니 (햄이나 소시지 같은 육류가 들어가지 않은) 바게트나 크루아상 같은 단순 제과류는 국내 반입이 허용된다고 하여 어찌나 통탄스럽던지.. 아~~ 짝꿍아!! (문제는, 그가 하는 말은 대체로 매우 신뢰가 간다는 것이다. 그리 말하는 재능이 있는 것도 같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