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조를 찾아서

by 지뉴

매 여행 때마다 우리 가족에게는 빼놓을 수 없는 코스가 있다. 그건 바로 ‘새가 있는 풍경’을 찾아가는 길.. 자연이 있는 곳이면 으레 새들이 있기 마련이고, 풍경마다 다채로이 등장하는 조류들을 만나는 순간은 그 어떤 여정보다 우리에게 큰 기쁨을 준다.


아름다운 중세의 성은 시선을 즐겁게 하고, 전쟁의 상흔이 어린 장소는 우리를 숙연하게 한다. 일상과 동떨어진, 생경한 세상을 체험하는 것은 분명 여행이 안겨 주는 색다른 선물이다. 그런데 여행이 길어지다 보면 나는 자연스레 고국에서 낯선 밤들을 보내고 있을 반려조들이 생각난다. (우리가 여행하는 동안 반려조들은 집에서 멀리 떨어진 농장에 맡겨진다)

‘소란스러운 앵무 친구들 사이에서 김치는 홀로 잘 지내고 있을까? 서로 데면데면한 망고와 두부는 같은 새장 - 집에서는 각기 다른 새장에서 지낸다- 에서 지금쯤 다투지는 않고 있을까?' 하는.


그 마음은 짝꿍과 아이들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독일에서 우리가 백조를 찾아 나선 것은, 반려조들을 향한 그리운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노이슈반슈타인 성에 가면 백조를 볼 기회가 있으리라 내심 기대했다. (성 내의 기념품 숍에 백조 인형들만 그득했다는..) 백조를 뜻하는 '슈반(schwan)'을 품고 있는 성의 명칭에 기대감을 가졌던 데다가, 겨울 호수에서 성으로 날아드는 우아한 백조들이 있으리라는 동화적 상상력이 더해져 그런 생각을 품었던 것 같다.


마침 다하우를 다녀온 뒤, 짝꿍이 백조가 출몰한다는 '영국정원'을 가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강제수용소에 서린 전쟁의 상흔을 보며 아렸던 마음을 다독이고 싶기도 했고, 다하우의 일정을 다소 지루해하던 아이들에게 여행의 즐거움을 제대로 느껴보게 하고픈 바람이 있던 나는, 그의 제안에 적극 동의했다. 아이들도 백조를 볼 수 있다는 말에 망설이지 않고 기꺼이 동참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다리가 아프다고 투덜대면서도 눈빛을 반짝이는 것이, 역시나 어떤 대상에 대한 애정에는 고통마저 기꺼이 감내하게 만드는 힘이 필연적으로 동반되는 것인가 보다.


영국정원은, 수필집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로 유명한 전혜린이 생전에 홀로 사유하며 산책하기를 즐겼던 곳이다. 오래전 생을 마감한 그녀지만, 젊은 지성인으로서 그녀가 가졌던 오라는 지금도 내 마음에 머물러 있다. 이른 나이에 삶을 멈춘 이에 대한 안타까움과 애틋함, 세월조차 결코 넘볼 수 없는, 무구하고 절대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경외감 이 작용한 탓일까, 나는 그녀의 이름을 떠올릴 때마다 어쩐지 가슴 한편에 서늘하고도 뜨거운 바람이 깃드는 느낌이 든다. 우리가 영국정원을 찾은 때, 뮌헨은 때마침 흐린 하늘 아래로 쌀쌀한 바람이 속살을 파고드는 날씨였다. 전혜린의 이름에서 늘 잿빛 하늘을 함께 떠올렸거늘.


세계 최대 규모의 도심 정원 중 하나라는 영국정원이지만, 버스를 내려 막상 정원 입구를 찾는 것은 이방인으로서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날 선 바람을 가르며, 매력 넘치는 가게들로 즐비한 골목길을 돌고 돌아 가까스로 정원 입구에 도달했을 땐, 추위를 피해 속히 따스한 실내로 숨어들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러나 드넓은 호수를 유유자적하고 있을, 우아한 백조들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어른도 아이도 내딛는 발걸음을 멈추지 못했다.


"엄마, 우리 진짜 백조 볼 수 있는 거 맞아?!"

"그럼, 볼 수 있을 거야. 그러니 우리 조금만 더 참고 걷자."


아이들의 얼굴에 점점 의구심이 번져갔고, 이러다 백조 한 마리도 못 보면 그 뒷감당을 어떡하나 싶어졌다. 백조를 보러 가자고 제안한 건 분명 짝꿍이었는데, 수습은 내 몫이 된 것 같아 조금 억울한 생각마저 들려했다. 백조의 자태를 맘 속으로 간절히 그려보며, 몇십 년 전 전혜린이 지나갔을 풍경을 걸음걸음 음미했다. 아이들을 대동하고 나선 길에서는 온갖 잡다한 생각들이 오갔지만, 한 줄기 바람을 등에 얹은 채 니체와 헤세의 사상에 심취하여 그녀가 홀로 걸었을 길에는, 분명 깊은 고독과 사유가 깃들었으리라. 귓불이 시렸지만, 그녀의 시선과 생각에 나를 포개보며 잠시나마 나 자신이 고독한 예술가라도 된 듯한 착각에 빠져들었다.


그러다 마침내 도달한 공원 내 호수. 호수와 가까워지며 살얼음이 되어가던 기대는 눈앞의 광경을 보며 마지막 한 조각마저 처참하게 부서져 버렸다. 상상 속 호수 가득 노닐던 백조들은 어디 가고, 두터운 얼음판 위로는 오리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천연 스케이트장'을 방불케 한 겨울 호수에는, 두 다리로 꼿꼿이 서 있는 인간들만이 우리를 맞이할 뿐이었다. 아이들은 '이럴 줄 알았어!'라며 원망 어린 탄식을 토해 냈고, 나는 이 상황을 부인하며 괜스레 얼음판 위로 뛰어 들어갔다. 그런다고 달라질 것이 무에 있다고.. 그런데 얼음이 얼마나 두텁게 얼었는지 발을 쿵쿵 구르고, 여러 번 점프를 해 보아도 털끝만큼의 영향도 끼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나도 그곳의 현지인들처럼, 든든하고도 너른 얼음판 위에선 두 발에 흥이 오르기 시작했다. 짝꿍은 저만치에 서서 이런 나를 지켜보고 서 있었다.

나의 상상은..
그러나 현실은..

내가 운동화 신은 발로 열심히 얼음을 지치는 동안, 짝꿍은 지나가던 독일 아저씨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결국 내가 백조를 보고 말리라는 기대를 말끔히 포기한 채 얼음 호수 밖으로 나왔을 때, 짝꿍이 말했다.

"아저씨 말이, 백조를 보고 싶으면 내년 여름을 기약하래. 평년과 달리 추운 날씨가 일주일 동안 이어져서 얼음이 두텁게 얼었다면서, 나보고 안심하고 (호수에) 들어가 보라더라고."

"그럼 (얼음판 위로) 들어오지, 왜 그러고 서 있었어?"

"...."

아주 잠시, 짝꿍의 얼굴에 겸연쩍은 기색이 흘렀고, 나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혹시, 무서워서? 얼음 깨지기라도 할까 봐서?"

내 말에 짝꿍이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끄덕여 보였고, 나는 천둥번개(그는 천둥번개가 무서워 '창문을 닫아달라'는 내 부탁을 못 들은 척 이불을 뒤집어쓰고 잔 적이 있다) 사태 이후로 가장 짓궂고도 통쾌한 웃음을 날려주었다.


그렇게 우리의 첫 '새를 찾아서' 여정은 허무하게 끝이 났다. 그러나 기회는 포기하지 않는 자에게 찾아오는 법. 그다음 날, 이번에도 역시 짝꿍의 제안으로, 우리는 백조들이 노닌다는 또 다른 장소인 '님펜부르크 궁전'을 찾았다. 아이들은 어제의 일을 떠올리며 얼굴이 굳어갔으나, '딱 한 번만 더'를 부르짖는, 철없어 보이는 엄마 아빠를 한 번 더 믿어주기로 한 모양이었다. 짝꿍은 제안자로서의 책임감을 느꼈던지 백조 깃털 하나라도 찾아야겠다는 일념을 내비쳤고, 나는 그런 그가 어쩐지 안쓰러워 보여 묵묵히 동행하기로 했다. 어제의 기대치를 '10'으로 환산한다면, 오늘의 그것은 거의 '0'으로 수렴하고 있었음에도. 그도 그럴 것이, 님펜부르크 궁으로 향하던 이날도 별반 다르지 않은 추위가 우리와 함께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에겐) 기적과도 같은 광경이 시야 가득 펼쳐졌다. 역시나 이곳 호수의 대부분도 얼어 있었으나, 일부 물길이 살아있는 곳에 백조들이 노닐고 있었던 것이다. 백조뿐 아니라 오리와 낯선 외양의 갈매기, 이름을 알 수 없는 다채로운 조류들이.... 한번 더! 를 외치며 포기하지 않은 그와 나를 칭찬해 주고 싶었다. 저러다 고체가 될까 싶던 아이들의 얼굴은 이내 봄날의 햇살처럼 스르르 녹아 환해졌고, 우리는 한 시간여를 터지는 웃음, 즐거운 비명과 함께 '이대로 영원히'를 외치고 싶은 순간들을 누렸다. 우아한 백조가 아닌, 개그맨 뺨치게 웃기고, 굶주린 오랑우탄처럼 광폭한 백조들이었지만, 우리의 선입견을 완벽히 깨뜨려 준 녀석들이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아이들은 혹여나 그 순간을 놓칠세라 연신 카메라 버튼을 눌러댔고, 우리는 겨울 호수와 웅장한 자태의 성을 아스라이 물들이며 스러져가는 노을에 함께 젖어들었다. 포기하지 않는 삶에 대해 생각하며, 스쳐가는 찰나를 붙잡아 마음 깊이 새기면서..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의 원조는 백조일까?
겨울 호수 위로 해가 저물어 간다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은 순간을 저장
엄마: 포기하지 않길 잘했지? 아이들: (끄덕끄덕)
봉지째 사수하기
나이스 슬라이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