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 뒤에 '충(蟲)이 들어가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지만, '판트충(蟲)'만큼은 애정이 간다. 우선 그리 불리는 당사자인 나의 짝꿍부터가 이 표현을 몹시 편애하는지라.
나보다 감성과 즉흥성이 덜한, 더 이성적이고 계획적인 인간 유형인 짝꿍은, 독일 여행을 앞두고 소소한 정보들을 찾아 담았는데, 그 정보중 하나가 바로 '판트(Pfand)'에 관한 것이었다.
판트(Pfand)는 음료 용기에 부과되는 독일식 보증금으로, 공병을 반납할 시에 현금으로 환급받도록 되어 있다. 대체로 0.1~0.25유로 범위 내에서 책정되어 있는데, 병의 라벨에 보면 판트가 적용되는 제품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 이러한 환급은 마트 한편에 비치된 빈병 수거 기계를 통해 이루어진다. (기계에 공병을 투입하면 금액이 자동 환산되어 영수증으로 출력된다) 문제는, 기계마다 수거 가능한 공병이 상이하다는 점이었다. 그리하여 짝꿍의 '내 공병을 받아줄 기계를 찾는 뚜벅이 여정'이 시작되었다. 피곤한 일정에도 보증금을 환급받고야 말겠다고 의지를 불태우는 그가 내 눈에는 다소 기이하게 보이기도 했는데, 어느 순간 그가 스스로 '나는 판트충'이라고 선언해 버린 것이다.
강박적으로 보이기까지 한 행동에 더해, 스스로를 '판트충'이라고 명명한 짝꿍이 아이러니해 보인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평소 그는 소비 지출에 다소 '쿨한' 태도를 취해왔기 때문이다. 몇 천 원을 아끼기 위해 '1+1 제품'을 구입하던 나를 면박주며 좀 더 질 좋은 제품을 사라고 강조하던 그였다. '우리가 뭐 이 정도도 못 사고 사는 거지냐?!'라고 부르짖으며. 한때는 ‘태그호이어' 시계를 사겠다며 홀로 적금을 붓기도, 스케이트를 기깔나게 타겠다며 통 크게 누구의 한 달 월급에 육박하는 가격의 스케이트 장비를 구입하기도 했다. 내가 보기엔 비싸게 책정된 금액이란 것이 대체로 소비자의 심리를 이용해 먹기 위한 거품으로 보였음에도.
그런 그가 채 몇 백 원 될까 말까 한 판트에 자신의 명예를 건 사람처럼 행동하는 모습이 나로서는 납득하기가 어려웠다.
“(환급받으려면) 힘들 텐데 그냥 룸에 남겨두고 가지? 청소하는 분이 챙기시겠지.”
“아니. ‘내 돈‘으로 산 건데 꼭 (내가) 환급받을 거야.”
짝꿍의 대답은 그 어느 때보다 단호했다. ‘내 돈’ 아닌 돈으로 소비를 하는 게 얼마나 된다고.. 여전히 그가 이해되지 않았으나, 생각해 보면 내게도 그런 면이 없지 않은 것 같았다. 읽을지 어떨지도 모를 책을 단지 표지가 예쁘다는 연유로 덜컥 사곤 하면서도, 주차요금 몇 천 원에, 하루 이틀 차이로 유효기간이 끝나 버린 마트 쿠폰에 감정이 부르르, 일어나곤 하니 말이다. 이 요상한 심리는 도대체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일까. 작은 일에는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내고, 오히려 큰일에 너그러워지는 마음이란 참으로 아리송한 것이다.
판트에 대한 그의 집착은, 빈병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한 여행 2일 차부터 드러나기 시작했다. 짝꿍은 자신의 공병을 받아 줄 슈퍼마켓을 들르는 것으로 하루의 여정을 시작했고, 나와 아이들은 어쩔 수 없이 그를 따라 지하 쇼핑 구역을 뺑뺑이 돌며, 본격적 여행을 하기도 전에 이미 진이 조금 빠진 상태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신기한 것이, 왜 저렇게까지 할까 싶었던 그의 행동에 어느새 나도 마음이 동하고 있었다는 거다.
어느 순간부터 창가에 나란히 서서 줄을 늘여가는 병들이 어여뻐 보였다. 공병이든, 곧 공병이 될 운명에 처한 용기들이든 말이다. 생수를 사면서도 이 제품은 판트가 되는 것인지, 환급금은 얼마인지 자연스레 확인하게 되었다. 판트 표시가 되어있는 마트들이 시야에 들어오고, 공병을 한 아름 안고 수거 기계를 찾는 독일인들에게 괜한 친근감이 들었다. 사람의 의지란 불과 몇 백 원으로도 이리 활활 불타오를 수 있는 것이었단 말인가?! ‘하리보' 코너에서 유용하게 쓰일 환급금을 머릿속으로 굴리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 그의 곁에서 나는 ‘행복’을 떠올렸다. 짝꿍은 애지중지 보관한 공병의 환급금으로 무언가를 살 수 있다는 사실에 차마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분명 한국에서는 딱히 하리보를 좋아하지 않았건만, 하리보의 고향인 독일에서, 판트로 바꿔 먹는 하리보를 눈앞에 두고서는, 할머니가 아끼는 양은냄비로 엿을 바꿔먹는 철없는 어린아이가 된 것 같았다.
이러한 상황은 어느 정도의 부작용도 수반했다. 독일에 오면 꼭 맛보리라 벼르고 있었던, 색채도 아름다운 용기에 담긴 독일 맥주들이, 어느 순간부터인가 내용물만큼이나 내용물이 담긴 용기로 존재감을 내보이는 것이 아닌가. 맥주를 구입할 때, '이 제품이 맛있어 보인다'가 아닌, '이 제품의 판트 금액은 얼마인가?'가 우리의 선택을 좌지우지하는 요소가 되었으니.. 여러 개의 병들을 배낭에 넣어 돌아다니는 어깨는 처지고, 몸은 무거워 보였지만, 공병들을 반납하고 받은 환급금으로 주전부리나 또 다른 음료를 사 먹는 즐거움이 꽤 쏠쏠했다. 다른 여행에서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이번 독일 여행이 선사한 색다른 즐거움이었다.
짝꿍을 수고스럽게 했으나, 그 수고마저 감수하게 하며 알뜰한 성취감을 안겨준 판트. 아마도 한번 '판트충'이라는 정체성을 입은 그는, 언젠가 다시 독일을 여행하게 되면 판트충으로서의 활약을 굳건히 이어갈 것이다. 자신의 두 다리가 튼튼히 버티고 있는 한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