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 그녀가 교회를 다니는 이유
유안 씨는 몇 달째 교회를 다니고 있다.
그녀가 교회에 나가는 이유는 간절히 응징하고 싶은 인간이 있어서이다. 그녀가 처음부터 이것을 의도한 것은 아니다. 그녀는 하나님을 걸고 맹세할 수 있다고 말한다. 물론 그녀도 이따금 죄의식 같은 것을 느낀다. 그럴 때는 기도를 열심히 한다. 그녀의 예전 팀장은 자신이 원하는 점수를 얻고자 교회에 다니는 사람 같았다. 기도를 열심히 했더니 시험 문제가 꿈속에 나타났다, 이것이 다 하나님 덕분이다,라고 거리낌 없이 말하고 다녔다. 팀장의 보잘것없어 보이는 욕망에 비하면 그래도 자신은 좀 더 그럴싸한 사연을 지닌 인간이지 않을까, 생각하며 그녀는 스스로 위안을 삼는다. 우주 속 한낱 미물에 불과한 인간은 저마다 개인적인 사연과 이유로 종교에 의지하는 것일 테고, 그 이유란 것이 대게는 세속적인 욕망의 총합체 같은 게 아닐까, 그녀는 생각한다. 대놓고 바라기엔 자신의 보잘것없음이 너무나 드러나니 '기도'라는 좀 더 고상한 의식을 통해 자신의 욕심을 이루고 싶어 하는 간절한 바람 말이다.
유안 씨는 애초에 교회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어린 시절 좋지 않은 기억으로 인해 교회와 별로 가까이 지내고 싶지 않았다. 때 묻지 않은 아홉 살 무렵, 동네 골목길에서 마주쳤던 교회 집사 아주머니는 그녀에게 교회에 대한 좋지 못한 선입견을 심어줬다. 그녀의 친구들 중 일부는 집사 아주머니의 '과자 전도'에 넘어가서 순수한 자존심을 냅다 버리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녀는 확신했다. 그 시절 이따금 발생했던 어린아이 유괴범들이나 써먹을 법한 방식으로 아이들을 유인하는 곳이라면 가지 않는 게 맞다고.
유안 씨는 심지가 굳은 어린이였다. 맛난 과자나 고급 학용품을 미끼로 접근해오는 그 어떤 종교적 세력에도 굴하지 않았다. 비록 잘 사는 집에 태어나진 않았지만 경제적 자존심만은 그 누구 못지않게 굳건했다. 집안은 그녀 자신이 선택하지 못했지만 무종교인의 삶은 스스로 선택했다. 그녀의 자존심은 누구에게 배워서가 아니라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이었다. 부모님을 보면 그 '선천성'이 누구로부터 기인한 건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녀는 그렇게 믿고 있다.
그렇게 유안 씨는 ‘자발적 무종교인'으로 서른 해 가까이 살아왔다.
종교를 향한 그녀의 태세가 흔들린 건 우연히 한 여자를 알게 되면서였다. 그 여자로 인해 그녀 안에 잠들어있던 복수의 칼이 번뜩이며 날을 치켜세웠다. 그때까지만 해도 유안 씨는 자신이 그럴 수 있는 인간이라고는 조금도 생각지 못했었다. 허나 인간의 숨겨진 본성은 그에 부합하는 사건을 맞닥뜨리고 나서야 진면목을 드러내는 법이다.
유안 씨가 여자를 처음 만난 건 세 달 전이었다. 그날따라 아침부터 유난히 주민센터 앞에 주차되어 있는 차들이 많아 유안 씨는 근처 교회에 딸린 주차장에 차를 댔었다. 그녀가 작고 소중한 월급을 아끼고 아껴 뽑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새하얀 모닝이었다.
점심 휴식이 끝나고 얼마 되지 않았던 시간, 잠들어 있던 핸드폰 화면이 반짝반짝 불을 밝히며 유안 씨의 졸음을 몰아냈다. 처음 보는 번호로부터 걸려온 전화였다. 낯선 번호는 거르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하는 그녀였지만 그 순간 왠지 그 전화는 받아야 한다는 직감이 들었다. 유안 씨는 불길한 예감을 애써 누르며 핸드폰 창을 열었다.
- 여보세요, 3785 차주 분 되시나요?
다급한 여자의 목소리가 유안 씨의 귓전을 때렸다.
- 네, 그런데요…?
- 여기 OO교회 주차장인데요, 차를 빼다가 그쪽 차를 조금 긁었어요. 죄송합니다.
순간, 유안 씨에게 한 달치 짜증이 한꺼번에 솟아올랐다. 36개월 할부에 이제 겨우 세 달치 할부금을 넣은 새 차였다. 하지만 그녀는 최대한 목소리를 누르며 말했다.
- 많이.. 파손된 건가요? 지금 제가 업무 중이라… 일단 보험회사에 연락해주시면 감사하겠어요.
- 네, 그럼 이따 마치시는 대로 연락 주세요. 죄송합니다.
유안 씨는 전화를 끊고 손에 일이 잡히지 않았다. 찌그러진 모닝의 처량한 자태가 반복적으로 그녀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유안 씨는 업무시간이 끝나자마자 부리나케 교회 주차장으로 향했다. 주차장으로 들어서는 순간 키 큰 여자가 그녀를 향해 고개를 깊숙이 숙이며 인사를 했다. 그녀의 차보다 몇 배는 비싸 보이는 번쩍이는 고급 외제차 앞을 가로막고 서서. 운전석 문이 살포시 열려있는 것을 보니 본인의 차인 듯했다. 그것을 보는 순간 유안 씨는 괜스레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다행히 모닝은 생각보다 상처가 깊지 않았다. 윤기를 좔좔 흘리며 뽐내듯 서있는 여자의 차 옆에 있는 가련한 모닝을 보며 유안 씨가 받은 마음의 상처에 비하면.
- 보험회사에는 연락하셨어요? 유안 씨가 물었다.
- 아 그게… 제가 얼마 전에도 사고를 내서 이번에 또 보험처리를 하면 여러 가지로 곤란한 상황이라….
- 네? 뭐라고요?!
저도 모르게 유안 씨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 제가 잘 아는 공업사가 있어요. 아마 하루 안에 수리가 될 거예요. 제가 그동안의 택시비와 피해보상비는 따로 드릴게요. 정말 죄송합니다.
유안 씨는 소리를 내지르려다 ‘피해보상비를 따로 드릴게요.'라는 뒤이은 말에 나오려던 목소리를 도로 삼켰다. 어린 시절 강철과도 같았던 경제적 자존심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그녀의 인생은 돈 앞에서 속절없이 비굴해지고 있었다. '돈의 맛'을, '속성'을 알아버린 어른이 되어서일까. 몸은 자랐지만 마음은 오히려 자본주의에 굴복하며 나약해지고 있다니… 유안 씨는 문득 씁쓸해졌다.
여자는 30대 후반쯤으로 보였는데 세월을 타지 않은, 순수하고 말간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유안 씨의 마음이 더 흔들렸던 걸까? 저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을 수 있는 저토록 완벽한 백지의 표정! 유안 씨가 진정 갖고 싶은 얼굴이었다. 갈팡질팡하는 유안 씨의 표정을 읽은 건지 여자가 화제를 급하게 돌리며 물었다.
- 일단 오늘은 제가 댁까지 모셔 드릴게요. 여기 교회 다니세요?
- 아니요. 교회는 안 다녀요. 옆 주민센터에서 일하는데 사정상 오늘만 여기 주차했어요.
- 어머, 주민센터 직원이시구나!
교회를 다니지 않는다는 유안 씨의 말에 순간 여자의 표정이 오랫동안 찾아 헤매던 물건을 발견한 사람처럼 반짝거렸다.
돈 앞에 나약해진 유안 씨의 마음이 결국 이 상황까지 그녀를 이끌어왔다.
그날 유안 씨는 생전 처음 보는 여자의 차를 타고 퇴근길에 올랐다. 그리고 보고야 말았다. 번쩍이던 차의 대시보드 위를 장식하고 있던 가족사진 속 그녀를 비웃듯 미소 짓고 있는 그의 모습을.
그였다. 진상우. 한국대학교 경영학과 00학번. 기타 동아리 25기 출신의 개xx. 그녀의 천금 같은 적금을 뜯어먹고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존재인양 그녀의 인생에서 홀연히 사라져 버린 놈. 손에 대한 그녀의 괴이한 집착의 역사가 시작되게 만든 놈. 대학 시절, 음악에 취한 듯 기타 줄 위를 유영하던 그 자식의 기다란 손가락의 자태에 마음을 뺏기지 않았더라면, 그를 처음 만난 날 그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햇살과 바람과 풍경과 기분의 총합이 그토록 따스하고 낭만적이지 않았더라면 지금 유안 씨의 인생은 분명 조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 거다. 세상을 대하는 마음이 좀 더 밝고 긍정적이었을 테고 건강한 청춘사업을 이어왔을는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지금 저 여자의 말간 얼굴과 흡사한 모습을 지닌 인간으로 바람직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을지도.
- 개xx!
유안 씨 입에서 버럭, 속세의 언어가 터져 나왔다. 순간 유안 씨를 바라보는 여자의 당황한 표정에 유안 씨는 여자의 가족사진을 가리키며 관심을 돌렸다.
- 화목해 보이시네요. 보기, 좋아요.
- 아, 감사해요…그런데, 교회를 안 다니시나 봐요? 다니시면 참 좋으실 텐데….
여자가 유안 씨의 얼굴을 살피며 말했다.
- 생각은 있는데 기회가 없었어요.
유안 씨의 입에서 말들이 마구 흘러나왔다.
- 어머, 잘 됐네요. 그럼 우리 교회에 오세요. 주님과 함께 하면 삶이 달라지실 거예요!
그 순간 유안 씨는 깨달았다. 그녀의 인생이 진정 달라지려 하고 있다는 것을. 오랫동안 찾으려 애썼던 그와 이렇게 다시 연결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우연이 모여 필연이 된다고 했던가. 그렇다면 그녀는 그와 필연으로 엮인 사이란 말인가. 유안 씨는 그로 인해 견뎌내야 했던 그간의 고통이 불판 위의 눈처럼 순식간에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 그럼, 그럴까요…?
- 네. 언제든 오세요!
여자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 아이들이 참 예뻐요. 혹시 장난감을 좋아하나요?
집 근처 대형 장난감 가게를 떠올린 유안 씨가 속으로 웃음을 삼키며 말했다. 그리고 그녀만의 미래를 그려봤다. 그에게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는 자신의 모습을. 두려운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그의 얼굴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녀는 그의 얼굴을 마주하고 말해주고 싶다. 자신은 여전히 그의 곁에 있다고. 그 시절 그랬듯이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그에게 해 줄 말도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일도, 그에게서 받아내야 할 것도 많다고.
유안 씨 인생의 반전이 시작된 건 그 찰나의 순간이었다. 일주일 동안 마음을 다해 누군가를 미워하고 주말이면 그 누구보다 성실하고 간절하게 기도를 올리는 모순적 삶의 시작.
유안 씨는 그 이후로 매주 교회에 나가고 있다. 갓난아이처럼 세상의 어둠에 물들지 않은 얼굴을 한 진상우의 아내를 보며 그를 떠올린다. 회심의 미소를 띤 채로. 그녀는 앞으로 그와의 만남을 고대한다. 마음속으로 절실함을 그러모아 신께로 향한 자신만의 기도를 올린다. 그녀의 간절한 바람을 이루게 해 달라고, 그리고 이런 자신을 가엾이 여겨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