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유안 씨의 비일상적 나날들

Ep3. 유안 씨의 기록 2 - 수상한 전입신고

by 지뉴

인간으로서 기본적으로 누려야 마땅한 '의식주'에 대해 생각해 본다. 수치와 추위를 막아주는 '의', 허기를 메우고 생명을 유지시켜 주는 ‘식', 편히 누울 자리를 제공해 주는 '주'. 그 마땅한 것에서 배제된 인생을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떠올려본다. 만약 의식주를 상대로 공평하게 무게를 잰다면 우리 인생에서 가장 큰 무게감을 지니고 있는 건 어느 것일까? 이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한다면 나는 과연 어떤 결정을 하게 될까?


주민센터에서의 나는 주로 '주'와 관련된 일을 맡고 있다. 공식적 행정용어로 '전입신고'. 내가 하루에 처리하는 전입신고는 평균 스무 건 정도 된다. 인간의 나이에서 '20'은 풋풋하고 설레는, 가능성의 기운을 가득 품고 있는 숫자이지만 전입신고의 경우는 다르다. 그것도 아주, 많이. 그건 단순히 서류 스무 장을 처리하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피로와 인내심과 고단함의 크기이기도 하다. 한 건의 전입신고를 처리하기 위해 짧게는 3분에서 길게는 한 시간도 더 넘는 시간이 필요하다.


꽤 많은 사람들이 '신고용 서식' 앞에서 처음 글자를 배우는 어린아이와도 같은 태도를 보인다. 질문에 질문을 거듭한다. 내 말에 주의를 집중한다. 그러고도 설명을 온전히 이해하는 데 실패하곤 한다. 나는 부처님 끝자락 같은 인내심을 발휘하려 애쓴다. 때론 글자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 어르신들의 손을 붙잡고 함께 서식을 채우기도 한다. 민원인이 그리 많지 않은 날에는 모든 것을 넉넉한 친절함으로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민원인들이 좀비 떼처럼 몰려드는 날이면 내 인내심도 한계점에 이르곤 한다. 그럴 때마다 생각한다. 참아내야 한다. 이것은 200만 원 남짓한 월급을 받아 들 자격을 얻기 위한 기본값이다,라고. 그렇게 소소한 위기들을 헤쳐 나오며 난 여기까지 왔다. 그런데 그런 생각이나 다짐으로도 버티기 힘든 순간들이 분명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날의 내가 그랬다.

그것은 평소와 크게 다를 것 없어 보였던 한 전입신고로부터 시작되었다.




남자는 신고서에 비뚤비뚤한 글씨로 전입주소지를 기재했다. 경기도 금양시 고포로 3-7. 익숙한 듯하면서도 왠지 낯선 주소였다. 나는 밀려 있는 대기번호를 곁눈으로 확인하며 주민전산시스템에서 해당 주소를 빠르게 검색했다.


- 건축물대장상에 없는 주소지네요?


시선을 모니터로 향한 채 내가 물었다. 남자는 주소지에 일치하는 건물을 찾아보고 있는 나를 힐긋 쳐다봤다. 어쩐지 싸한 느낌을 주는 인상이었다. 화면상에는 사람의 거주지라고 할만한 건물이 보이지 않았다. 구글 지도상 해당 주소지에는 스러져가는 비닐하우스와 낡은 컨테이너만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을 뿐이었다.


- 농막이에요, 농막. 농사 때문에 잠시 거주지를 옮기는 거라…


남자가 탁한 목소리로 말을 흐렸다. 그 순간, 생선 냄새인지 뭔지 모를 비릿한 냄새가 남자와 나 사이에 놓인 민원대 가림막을 타고 넘어왔다. 나도 모르게 인상이 찌푸려졌으나 아무렇지 않은 척 대화를 이어갔다.


- 아무리 그렇더라도 전입신고를 하시려면 기본적으로 침실, 부엌, 화장실이 갖춰져 있어야 하세요.

- 네, 있습니다.

- 침실, 부엌, 화장실 모두 다요?


나는 남자의 흐린 눈과 화면 속 낡은 컨테이너를 미심쩍게 번갈아 보며 재차 확인했다. 남자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 이런 경우엔 현장 확인이 필요해서요. 오늘내일 중 괜찮으신 시간 말씀 주시면 제가 직접 방문해서 확인 후 처리해 드릴게요.


전입신고 담당업무를 맡기 전의 나는 막연하게 사람들이 -노숙자가 아닌 이상- 확실한 주소를 지닌 건물에서 살고 있을 거라 생각했었다. 그도 아니면, 최소한 먹고 자는 인간으로서의 기본적 행위는 보장받고 있으리라 여겼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인간은 제 몸 하나 누일 곳이 있으면 어디든 스며들 수 있는 존재였다. 프레스기 돌아가는 소리로 가득한 공장 한편, 들바람이 일 때마다 자락을 펄럭이는 비닐하우스 한 귀퉁이, 폐가가 된 지 몇 년은 된 것 같은 황량한 지붕 아래에서도 꿋꿋이 삶을 이어간다. 저토록 이어가는 삶이란 어떤 걸까?

때때로 전입신고 현장실사를 하며 나는 양가적 감정에 빠지곤 한다. '삶의 터전'이라는 말과는 어울려 보이지 않는 장소들을 마주하며 필사적인 생의 끈기를 향해 감탄을 보내는 동시에 그 지리멸렬함과 보잘것없음을 함부로 경멸하고 싶어진다.

남자는 5시쯤 들러줄 것을 부탁했다. 그때쯤이면 민원인들도 어느 정도 빠질 것이다. 나는 다시 한번 남자의 연락처를 확인하고 신고 서류를 책상 한편 잘 보이는 곳에 올려 두었다.


남자가 머무는 곳은 주민센터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있었다. 높은 아파트들이 빼곡한 주택가를 벗어나 논밭 사이로 비포장 도로가 아슬아슬하게 이어져있는 곳 어디엔가. 여러 번 현장 실사를 나가본 나였지만 해당 주소지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남자의 주소지에 가까워질수록 사람의 온기와는 점점 멀어지는 느낌이었다.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 휑한 공간이 주는 기묘한 두려움이 밀려들었다. 사람의 목소리가 절실해졌다. 나는 정확한 위치 확인을 위해 남자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 거의 다 오셨네요. 오는 방향 왼편으로 샛길이 하나 있어요. 낮은 경사로를 따라 100미터 정도만 더 오면 빨간 컨테이너가 보일 겁니다.


무얼 하고 있는 건지 핸드폰 너머로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연신 들려왔다.

‘100'이라는 숫자가 너무 아득하게 느껴졌다. 남자는 도대체 황량해 보이는 이 논밭 한가운데서 무슨 농사를 짓고 있는 걸까?

남자가 안내한 대로 길을 더 내려가자 어느 순간 길 양 옆으로 키 큰 옥수수나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구름에 덮여 빛바랜 하늘 아래 서 있는 옥수수나무들은 무채색에 가까워 보였다. 빗물이 채 마르지 않아 질척이는 좁은 비포장 도로를 간신히 빠져나가며 나는 시종일관 불안한 마음이었다. 절박한 마음으로 운전대에 몸을 바싹 붙인 채 주변을 살폈다. 자칫 한눈을 팔다간 농수로에 그대로 처박힐지도 모를 일이었다. 최저임금에 가까운 월급으로 연명하고 있는 내가 감당하기 부당한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자 절로 욕지기가 흘러나왔다.

남자와의 전화를 끊고 오 분쯤 흘렀을까, 옥수수나무 뒤편 너머로 자그맣고 빨간 컨테이너가 흐릿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 앞에서 남자가 서성이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잿빛 하늘 아래 컨테이너의 원초적 색감이 유난히 도드라져 보였다. 낡은 외양과는 대조적으로 존재감을 뚜렷이 내보이는 생생한 '붉음'이 오묘한 부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나는 최대한 물기 없고 평평한 자리를 찾아 차를 세우고 공무원증을 목에 건 후 심호흡을 한 번 내쉬고 차에서 내렸다.


다섯 평이 채 될까 말까 한 컨테이너 안은 살림이라고 할 물건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한쪽 벽면 아래 깔려있는 단출한 침구와 반대편 작은 싱크대 위에 놓여있는 가스버너와 그릇 몇 가지가 전부였다. 전입신고 주소지로 처리하기 부적절해 보이는 열악한 환경이었다.


- 화장실은 밖에 있습니다.


내 생각을 눈치채기라도 한 듯 남자가 말했다. 나는 남자의 안내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 화장실은 컨테이너에서 몇 미터 떨어진 곳에 설치되어 있었다. 공공장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간이화장실 같은 형태였다. 화장실 옆으로는 커다란 천막이 쳐져 있었는데, 거의 바닥까지 내려오는 길이로 인해 안이 잘 보이지 않는 구조였다.


- 여긴 뭐 하는 곳인가요?

나는 손끝으로 천막을 가리켰다.

- 아, 씻을 곳이 마뜩잖아서 여기에다…

- 잠시, 봐도 될까요?


내 물음에 남자의 눈빛이 순간 흔들리다 멈췄다. 이윽고 남자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천막 한 편을 걷어 올리자 반질반질해 보이는 너른 바닥 위로 기다란 고무호스가 달린 수도꼭지가 눈에 들어왔다. 그와 동시에 좀 전의 생선비린내 같은 냄새가 코끝을 스쳐갔다. 순간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컨테이너나 화장실에 비해 유난히 크게 자리 잡은 샤워장의 모습이 좀 이상하다 싶기도 했다. 불현듯 뒤통수가 서늘하게 불편해졌다. 뒤를 돌아보자 남자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남자는 시선을 피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공무원과 민원인의 관계라지만 난 매우 위험할 수도 있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 집 한 채 보이지 않는 논밭 한가운데, 어떤 인간인지도 모를 성인 남자를 앞에 두고 혼자 서 있던 나는, 그 남자가 갑자기 나를 덮친다 해도 어찌할 수 없는, 완전 무방비 상태였다. 위험수당이라도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하며 내가 뒤로 주춤하자 남자가 입을 열었다.


-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 아, 아니요. 농사는 언제까지 지으시는 거예요?

나는 애써 씩씩함을 가장했다.

- 몇 달 정도만 있을 예정입니다.

- 네… 그런데 이게 무슨 냄새인지….

내가 인상을 찡그리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리자 남자는 잠시 당황하는 듯했다.


- 제가 물고기를 좋아해서, 이따금 낚시한 뒤 여기에서 씻어 손질하거든요. 아마 그래서…

- 아, 생선을 좋아하시는구나… 어쨌든 기본적인 시설은 있는 것 같으니, 오늘 날짜로 전입신고 처리 해 드릴게요.


나는 얼른 그 자리를 피하고 싶어 재빠르게 보고용 현장 사진을 몇 장 찍은 뒤 돌아 나오려 했다.


-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 많으셨는데 차라도 한 잔 하고 가세요.


남자는 불현듯 어울리지 않는 서글서글한 눈빛을 하고 내게 제안했다. 그 순간 방금 전 봤던, 먼지가 내려앉아 있을 것 같은 그릇들이 떠올랐다.


- 괜찮습니다. 처리할 업무가 있어서 바로 가봐야 해요.


나는 괜스레 핸드폰을 흘끔거리며 단호하게 대답했지만 남자는 내게 몇 번을 더 권했다. 나중에는 살짝 강압적인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물론 내 기분 탓일 수도 있다. 그러나 쿰쿰하고 습한 공기와 원치 않는 정적이 주는 불쾌하고 불안한 기분을 더는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다. 목 뒤로 솜털이 오소소 돋아나오는 게 느껴졌다. 나는 꼬리 잡히지 않기 놀이라도 하는 어린아이처럼 부리나케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 순간에도 사라져 가는 내 뒷모습을 남자는 바라보고 있었다, 고 나는 느꼈다.

그 남자의 전입신고 처리에 든 시간은 대략 70분. 이제껏 내가 처리했던 전입 건 중 최장 시간을 기록한 그날, 나는 내 인생 가장 큰 두려움을 느꼈다.




그로부터 몇 달이 흘렀다. 찝찝했던 그날의 기분도 내 일상 속에서 점점 잊혀졌다.

그 기억을 다시 상기하게 된 건 최근 한 살인사건 관련 뉴스를 접하게 되면서였다. 사건은 이곳 금양시가 아닌 이웃한 은곡시에서 발생했다. 그런데 화면 속 현장의 모습이, 뉴스 기사에서 묘사하는 사건의 전모가 낯설지가 않았다. 덩그러니 놓여있는 농막, 옥수수 밭 아래 묻힌 검정 봉지, 토막 난 사체, 그리고 야외에 딸린 커다란 세면장. 그런데… 범인은 아직 잡히지 않고 있다.


불현듯 '물고기'를 좋아한다던 남자의 말이 떠오른다. 대개의 사람들은 그냥 '낚시'를 좋아한다고 표현하지 않던가? 왜 그때는 그 표현이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물고기', ‘낚시', ‘손질’이라는 평범한 일상의 단어들이 문득 소름 끼치게 다가온다.

남자는 아직도 그곳에 있을까 아니면 이미 그곳을 떠났을까? 주민센터에서 15분 거리에 있는 그곳에 여전히 그 남자가 머무르고 있기를 바라본다. 자신의 의식주를 해결해줄 농사를 성실히 지으며.


생각해본다. 그날 내가 느꼈던 두려움은 단지 어설픈 내 직감이었을지, 아니면 내가 맞닥뜨릴 수도 있었던 어떤 실체였을지. 궁금하지만, 그게 무엇이었는지 알고 싶지 않은 마음이기도 하다.

지금 내가 여기에서 확실히 얘기할 수 있는 사실 하나는 그 남자의 전입신고가, 언제든 일상을 치고 들어올 수 있는 비일상의 존재를, 결국 우리 인생에 가장 멋진 순간도 가장 두려운 순간도 뜻하지 않게 찾아온다는 사실을 내게 깨우쳐 주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