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보호종료아동입니다
환하게 웃고 있는 친구의 영정 사진을 보는데 기분이 너무 이상했어요. 저렇게 티 없이 행복하게 미소 짓고 있는데 스스로 그런 안타까운 선택을 했다는 게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어요.
장례식장에는 친구의 보육원 친구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어요. 모두 다 같은 성을 지닌 친구들이요. 보육원 원장님의 성을 따라 한 가족처럼 지냈던 친구들이죠. 그 친구들이 십시일반 해서 겨우 장례식을 치르는 거라고 들었어요. 어쩌면 친구는 인복이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어요. 죽음에 이른 어떤 친구들은 가족도 빈소도 없이 황급히 이 세상과 작별을 고하거든요. 그건 정말 슬픈 일이에요. 그래도 한 사람의 생이 끝나는 건데 자신이 몸 담았던 세상을 도망치듯 떠나야 한다는 건 말이에요.
마음에 구멍이 난 것 같아 하루종일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결국 다음 날 친구의 마지막을 배웅하러 화장터까지 따라갔어요. 사진 속 앳된 친구의 모습 때문이었을까요, 화장터에 있던 주변 사람들이 애처로운 표정으로 친구와 우리를 바라봤어요. 제가 보기에 사람들은 친구의 죽음 그 자체보다 죽음에 이르게 된 과정에 더 관심이 많아 보였어요. 왜 스스로 생을 마감했으며, 어떤 방법으로 그 끝에 도달하게 되었는지에 관한 것들이요. 소문은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빨랐어요.
물론 앞에서는 다들 모르는 척했어요. 하지만 조금만 시선을 돌리면 볼 수 있었어요.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쑥덕이는 사람들의 모습을요. 저는 사람들이 보이는 호기심이 안타까웠어요. 어떻게 보면 호기심은 관심이라고 할 수도 있을 텐데, 친구가 살아있었을 때 그런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랬다면 친구는 다른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요.
친구가 이제 이곳에 없다는 게 믿기지 않지만 한편으로는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알 것 같아요. 최근 들어 친구가 정말 많이 힘들어했거든요. 얼마 전 친구의 친구도 스스로 이곳을 떠났다고 들었어요.
이렇게 말하지만, 사실 친구라고 하기엔 우리는 서로 얼굴 몇 번 못 본 사이예요.
처음 그 친구를 알게 된 건 서로의 고민을 상담해 주는 앱을 통해서예요. 그러니까 우리는 우연히 알게 된 랜선 친구인 셈이죠. 서로의 얼굴을 알지 못했던 우리는 남들에게 말하지 못하는 마음속 깊은 얘기들까지 허심탄회하게 나누었어요. 처음부터 그랬던 걸 보면 그 친구와 나 사이에는 뭔가 통하는 것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 알게 되었죠. 우리가 서로 비슷한 처지에 있다는 것을요.
나와 그 친구는 '위탁아동'이에요. 선생님은 혹시 들어보셨나요? 어떤 사람들은 '위탁'이라는 단어를 듣고 탁아소나 고아원을 떠올리기도 하더라고요. 하지만 우리에게는 어른 보호자가 있어요. 부모님이 살아 계신 경우도 많고요. 하지만 아이를 키울 형편이나 능력이 되지 않아서 다른 곳에 위탁된 거죠. 그 친구는 시설에, 저의 경우엔 할머니에게요.
학교 친구들은 부모님에 대해 불만 섞인 토로들을 많이 했어요. 개중에는 듣기 거북한 비속어까지 섞어서 말하는 아이들도 있었어요. 그런 얘기들을 듣다 보면 종종 울컥하곤 했어요. 그 친구들이 너무 부러워서요. 전 태어나 한 번도 '엄마'나 '아빠'라는 단어를 제 입으로 말해본 기억이 없거든요. 학교 친구들이 짜증내하는 그 상황조차 진심으로 부러운 거예요. 그런데 그 마음은 들키면 안 되는 거니까. 아무렇지 않은 척 표정을 관리하고 무심하게 얘기해야 했어요. 그렇지 않으면 제가 더 힘든 상황에 놓일 수 있기 때문이었죠.
학교 친구들처럼 제게도 꿈이 있어요. 아니, 있었다고 말하는 게 맞겠네요. 저는 미술 선생님이 되고 싶었어요. 아이들에게 따뜻한, 아이들이 마음으로 의지할 수 있는 그런 선생님이요. 미칠 것 같은 순간에도 그림을 그리다 보면 마음이 편안해지곤 해요. 그런데 제가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것과 그걸 직업과 꿈으로 연결시키는 것에는 극복하기 힘든 만큼의 격차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포기했어요.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냐고요? 일단 돈을 모아야겠다 싶어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어요. 배달일이요. 밤낮없이 일하는 게 힘들기도 하지만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것보다는 훨씬 나아요. 최소한 괴롭고 슬픈 생각을 덜하게 되거든요. 한때는 저도 우울증이 심해 하루종일 잠만 자기도 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할머니가 넘어져 다치신 이후로 정신이 번뜩 들었어요. 제겐 늘 원초적 공포감 같은 것이 있어요. 할머니가 언제 어떻게 돌아가실지 모른다는 두려움이요. 할머니는 저를 받쳐주고 있는 큰 기둥 같은 분이니까, 그런 상황이 된다면 너무 막막할 것 같으니까, 그러지 않으려 해도 자꾸만 안 좋은 생각에 빠지게 돼요.
친구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친구는 아마도 홀로 버려진 외딴섬에서, 언제 부서질지도 모르는 성근 뗏목 하나에 몸을 의지한 채 거친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로 나서는 기분이었을 거예요. 그래도 저는 할머니가 계시잖아요. 친구는 같이 노 저어 주는 사람도, 바다를 어떻게 건너야 하는지 말해주는 이 하나도 없이 세상 밖으로 등을 떠밀린 기분이었을 거예요. 친구에게 스스로의 힘으로 나아갈 수 있을 때까지 곁에서 함께 노를 저어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제가 어른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무의미한 가정만 자꾸 하게 되네요. 친구에게 힘이 되어주지 못해 너무 미안한데, 이 마음을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모르겠어요.
법적으로 우리가 성인으로 독립해야 할 나이가 되면 나라에서 정착금과 자립수당을 줘요. 정착금 천만 원 남짓에 자립수당이 한 달에 삼십만 원 정도 돼요. 물론 감사한 일이죠.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그 돈으로 할 수 있는 게 그리 많지 않더라고요. 저야 할머니와 같이 살고 있으니 그래도 좀 나은 편이지만 그렇지 못한 그 친구는 얼마나 막막하고 무서웠을까요. 보육원에서 홀로 독립해 모든 것들을 스스로 감당해야 했으니까 말이에요.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요.
제게 정말 필요한 게 무엇이냐고 물어보셨죠? 물론 돈이 필요하죠. 많으면 많을수록 좋을 거고요. 그렇지만 돈은 어떻게든 제가 벌 수도 있는 거니까... 진짜 필요한 건 사람인 것 같아요. 어른이요. 마음을 터 놓고 의지할 수 있는... 누나나 형 같은 멘토랄까. 그런 어른이 있으면 좋겠어요.
친구를 보내고 와서 제게 두려움이 더 커졌어요. 혹시라도 나중에 저도 친구와 같은 선택을 하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요. 지금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사람일이란 게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잖아요. 솔직히 말해 아니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아요.
나는 왜 이럴까, 내 인생은 왜 이렇게 엿 같을까 하는 생각에 한번 빠져들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를 때가 종종 있거든요.
그래서요. 할머니가 건강하게 오래 사셨으면 좋겠어요. 제가 이기적인 건지도 모르겠지만, 저를 위해서라도 곁에 계셔주시면 좋겠어요. 오래오래, 제가 혼자서도 단단하게 버틸 수 있을 때까지요.
이렇게라도 제 마음을 털어놓으니 그래도 조금은 기분이 나아지는 것 같아요. 기회가 되면 다음에 또 편지 드릴게요.
오늘은 이만 여기서 줄여야 할 것 같아요.
그녀가 청년의 집을 찾아간 건 청년에게서 처음이자 마지막 편지를 받고 6개월이 지난 후였다. 하지만 청년은 이미 새로운 터전을 찾아 그곳을 떠난 상태였다. 청년의 주소지에는 젊은 신혼부부가 살고 있었다. 그녀는 그들이 혹여 청년이 이사 간 곳을 알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 혹시, 전에 살던 분들 어디로 이사 간다는 얘기는 못 들으셨어요?
- 할머님이랑 젊은 남자분이요?
- 네...
- 잘 모르겠네요. 그냥, 더 좋은 곳으로 가신다고만 들었어요.
'더 좋은 곳'이라는 여자의 말에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돌아서 나오는 그녀의 마음은 시간이 지날수록 어쩐지, 조금씩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 2017~2021년 5년간 만 18세 보호종료를 앞둔 자립준비청년은 1만 2256명, 전담인력은 88명이었다.
* 자립준비청년 2명 중 1명은 죽음을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자료출처 : Jtbc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