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유안 씨의 비일상적 나날들

Ep1. 유안 씨의 기록 1 - 당신이 궁금해요

by 지뉴

내 이름은 진유안. 올해로 서른. 평범한 삼십 대 초반 여성이다. 무슨 일을 하든 어떤 집단에 속해 있건 늘 중간에 속해있는, 그래서 눈에 잘 띄지 않는 그런 부류랄까. 평균 키에 눈에 띌 만큼 예쁘지도, 그렇다고 못생겼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 없는 딱 그 정도의 외모. 학창 시절 성적도 중간, 성격도 외향과 내향의 중간 어디쯤. 연애력도, 심지어 원치 않게 브라 사이즈마저도 대한민국 여성 평균치다. 내가 평균 수치에 미치지 못하는 게 하나 있다. 그건 바로 월급의 크기. 말단 공무원의 삶을 살고 있는 내게 있어 필연적인 결괏값이긴 하지만, 월급 명세서를 받아 들 때마다 '현타'를 느끼는 마음은 매번, 새로이 갱신되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주민센터에 애정을 갖고 있는 이유는, 이곳이 아니면 결코 알 수 없었을 다양한 인간군상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평범한 30대 여성의 삶을 살고 있는 나이지만 인생은 버티기 힘들 만큼 그리 지루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어느 날부터인가 내가 일상의 지지부진함에 지쳐갈 때쯤이면, 신기하게도 마치 예정된 것처럼 평범한 일상을 비트는 일들이 내게 벌어지곤 하기 때문이다. 때론 소소하게 또 어느 땐 내가 감당하기 힘들 만큼 강렬하게.

이따금 그런 생각이 든다. 천재들은 지루한 삶을 도저히 견딜 수 없어 스스로 삶을 마감하기도 한다는데, '그래도 견딜만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알 수 없는 ‘어떤 힘’이 나를 돕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어느 날 문득 일기를 적듯 때때로 내게 벌어지는 이 비일상적 일들을 남겨놓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인생의 후반기, 스스로의 삶이 무료하게 느껴질 때쯤 이 이야기들이 내 젊은 날의 추억으로 남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어떤 이야기로 시작할까, 고민하다 작년 이맘때쯤 내가 일하는 주민센터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얘기해 보기로 했다. 내 마음속에 새겨진 '그'에 대한 짧은 기억을 떠올려보며.




- 멀끔하게 생긴 사람이 도대체 왜 저럴까… 유안 씨한테 정말 관심이라도 있는 건가? 그런데 저 남자 어딘지 좀 묘하지 않아?

남자가 등을 돌리고 주민센터 문을 나서자 내 옆자리 상희 씨가 목소리를 낮추며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 유안 씨, 조심해. 요즘 세상에 허우대 멀쩡해도 이상한 놈들 워낙에 많잖아. 이건 뭐, 어디 신고하기도 참 애매하고….

그녀의 말에, 돌아서 가는 그의 미묘했던 눈빛과 표정이 떠올랐다.


남자는 정기적으로 성이동주민센터를 방문하는 민원인이다. 이름은 한상우. 나이는 서른 하나. 신분증상 그의 모습은 꽤나 훈훈해 보인다. 코로나로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요즘 그의 코와 입을 직접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러나 꽤 단정하게 정리된 머리와 옷차림 - 주로 트레이닝복 차림이긴 했지만 - 을 봤을 때 그가 자신을 관리할 줄 아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가 주민센터에서 문제를 일으킨 적은 없다. 그러나 확실히 그에겐 기묘한 점이 있다.


그는 일주일에 한두 번씩 등본이나 가족관계증명서를 떼 간다. 그것도 주민센터 앞 무인발급기를 이용하지 않고 굳이 창구에서, 아니, 내게서 말이다. 순번대기표를 뽑아 든 그는 자신의 순서가 내가 맡고 있는 창구가 아닌 다른 곳으로 배정이 되면 종종 번호표를 다시 뽑고는 내가 맡고 있는 창구에서 민원을 볼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린다. 대기시간 동안 그는 주로 의자에 등을 구부정하게 만 채 앉아있는데, 이따금 손톱을 물어뜯는 듯한 자세를 취하며 내 쪽을 뚫어져라 쳐다보곤 한다. 내겐 그 모습이 무척이나 낯설게 보였다. 처음에는 경찰에 신고라도 해야 하나, 고민이 됐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뭐라고 딱히 얘기하기가 애매했다. 서류를 떼 가는 것 말고는 그가 내게 별 다르게 하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내게 신분증을 들이밀며 ‘등본 O통이요~’라고 말한 뒤 내 표정을 살필 뿐이다. 등본상 그는 누나와 함께 살고 있는 것으로 되어 있고, 가족관계증명서상 그의 부모님은 두 분 모두 사망한 상태였다. 처음 그의 등본을 봤을 때 조금 의아했던 기억이 난다. 대한민국에서 누나와 둘이서만 함께 사는 성인 남성은 흔하지 않은 데다가, 혹여 그런 상황이라 하더라도 민원 업무를 보는 것은 주로 여성들이 담당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딱 한 번 무심한 척 연기하며 그에게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 그냥 옆 창구에서 민원 보시지 왜 굳이 기다리셨다가 이 쪽에서 민원 보세요, 시간 많이 걸리실 텐데…?


내 물음에 그는 수줍어하는 듯한 - 이건 순전히 내 느낌인지도 모르겠지만 - 미소를 지으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쪽이 제일 친절하셔서…’라고 말했다. 그 순간 허스키한 그의 목소리에서 풍겨 나오는 묘한 분위기가 무척이나 생경했던 기억이 난다.

사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지만 어느 순간부터인가 나도 그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거기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 건 왠지 쓸쓸해 보이는 ‘그의 손’이었다. 그의 손은 웬만한 성인 여성보다 더 새하얗고 가느다라며 섬세해 보였다. 마치 첫눈이 소복이 내려앉은 앙상한 침엽수 끝자락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는 잔가지 같은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고백하자면, 나는 남자의 외모 중 유독 손에 시선이 가는 사람이다. - 전 남친은 이런 내가 특이하다며 '손 페티시'라는 괴상한 별명을 붙여줬다. - 남자는 왼손잡이인 듯 항상 왼손으로 신분증을 들이밀었는데, 엄지와 검지 사이 손등에 깊은 상처 같은 것이 나 있었다. 짧은 시간 스쳐 지나가 자세히 보지는 못했지만, 가느다랗고 새하얀 손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부조화가 지닐 수 있는 묘한 매력이 깃들어 있는 손이었다.

상희 씨 말처럼 그가 정말 내게 관심이라도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를 처음 본 이후 두 달이 넘어가도록 그는 별다른 얘기 없이 내게서 민원업무만 보고 갈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민원을 마친 그가 평소와 다르게 나와 눈을 마주치더니 아래와 같이 말했다.


- 우리 혹시… 본 적 있지 않나요?

- 네? 글쎄요… 아닌 것 같은데….


그가 잘 볼 수 있을 만큼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내가 답했다. 드라마에서 흔하디 흔하게 들었던 대사와도 같은 그의 말에 실소가 나오려다 이어진 그의 말에 목 뒤로 살짝 소름이 돋았다. 그 순간 최근 텔레비전 뉴스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미치광이 스토커의 모습이 팝업창처럼 머릿속에 나타났다 사라졌다.


- 이런 말 하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당신이 궁금해요….


그런데 이 말을 하는 그의 눈빛을 보자 두려웠던 마음이 사그라들었다. 낙엽을 떨구는 늦가을의 나무에서 느껴지는 어떤 쓸쓸함이 그의 눈빛 안에 담겨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가 무슨 말인가를 더 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였다. 나도 모르게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러나 그도 내 반응을 기다렸던 듯하다. 내가 아무 말하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던 사이, 그는 쭈뼛거리며 서 있다 결국은 내게서 서류를 받은 뒤 여느 때처럼 천천히 돌아서 나갔다. 그의 뒷모습을 보며 순간적으로 후회가 밀려들었다. 다음번에 보게 되면 꼭 무슨 말이라도 해야겠다는.


그날 밤, 장면 하나를 보았다. 왠지 익숙해 보이는 곳이었다. 바깥에는 세차게 비가 내리고 있었고 내 주위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벽에 걸린 시계에서 들려오는 초침 소리만이 공간 가득 울려 퍼졌다. 처음에 안개 낀 듯 흐릿했던 시야가 점점 선명해지자 전면 유리창 밖에 낯익은 형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비를 맞으며 등을 돌린 채 미동도 없이 서 있는 남자였다. 저절로 발걸음이 그 사람 쪽으로 향했다. 유리창에 얼굴을 가까이 들이대고 한동안 그 모습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얼마쯤 그러고 있었을까, 그 남자가 왼손을 얼굴 쪽으로 향해 올리더니 이내 고개를 왼편으로 천천히 돌렸다. 그러자 그의 옆모습이, 그의 손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불안해하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길고 앙상한 손. 그 순간 어디선가 짙은 안개가 몰려들었고 그의 모습은 내 눈앞에서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리고… 기시감 같은 것이 엄습해 왔다.


깨어난 후 마음을 쓸쓸하게 만드는 꿈이었다.

꿈을 꾼 이후로 남자를 기다렸다. 간절하게. 어쩐지 그를 다시 보게 되면 무언가 빠져나간 것 같은 마음 한편이 채워질 수 있을 것 같았다. 허나 인생이란 때때로 내가 진심을 담는 일에 잔인할 정도로 무심하게 굴곤 한다.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편하게 내어주는 것들이 있는 반면에.

그날 이후로 그는 거짓말처럼 내 일상에서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존재란 듯이. 그로 인해 내가 보고 느꼈던 그 모든 것이 실은 꿈이었다 듯이. 내 마음은 시간이 갈수록 불안해졌다.


내가 그를 다시 접하게 된 건 종이 위에 새겨진 그의 이름 석자를 통해서였다. 신기하리만치 그를 똑 닮은 누나가 가지고 온 사망신고서 속의 그…. 신분증이 아닌, 한 사람의 죽음을 알리는 신고서 위에 남겨진 그의 이름과 '사인'이 나를 온통 뒤흔들었다.

그간 수많은 사망신고서를 봐왔지만, 종이 한 장을 통해 온전한 ‘유’에서 완전한 ‘무’의 세계로 돌아간 한 사람의 존재가 그토록 무겁게 다가온 건 처음이었다. ‘죽음’이 오랜 시간 이어져온 한 사람의 인생을 한 순간의 꿈처럼 만들기 위해 존재하는 절대적 힘처럼 느껴졌던 순간이었다. 우리가 느끼는 슬픔, 기쁨, 분노 그 모든 것들이 실은 아무것도 아닌, 허무한 감정이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한 힘 말이다. 우리가 그토록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도 이 극단적 허무의 상황을 겪고 싶지 않기 때문인 걸까?

내가 보아왔던 그의 살아있는 표정, 그의 체온이 머물렀던 자리, 마음을 두드렸던 목소리와 시선을 사로잡았던 그의 손, 그 모든 것들이 찰나의 시간, 잔인하도록 무심하게 종이 한 장 속으로 사라져 버린 것 같았다. 그 순간 배신감, 막막함, 기막힘, 헛헛함, 그 어떤 표현으로도 설명되지 않는 온갖 감정들이 밀려들었다.


꿈에서라도 그를 다시 보게 된다면 꼭 한번 묻고 싶다. 당신이 내게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이었냐고.

아니,

‘한상우, 당신은 어떤 사람이었나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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