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봄엔 남부지역에서부터 경기 북부에 이르기까지 벚꽃이 거의 시차를 두지 않고 폈다고 한다. 뒤늦게 깨어난 꿀벌이, 수분활동을 본격 시작하기도 전에 꽃이 지는 상황에 처했다는 우려 섞인 뉴스를 들었다. 지구 생명체는 개별 존재가 아니라 거대한 생태계를 축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인데, 수분이 제대로 되지 않은 꽃은 열매를 맺지 못할 테고, 그러면 열매를 먹고사는 녀석들이 굶주릴 것이고, 그 이후 연쇄적 반응이 일어날 텐데, 이 봄이 지나 여름과 가을로 향하며 가시적인 문제가 발생하지나 않을까, 마음이 소란스러워졌다.
가뜩이나 요즘 국제법 따위 무시하는 패권국 수장의 오락가락하는, 나 같은 소시민도 대놓고 발설하기 쉽지 않은 fu*****까지 동원하는 협박성 발언에, 기름 값은 이천 원을 육박하고, 큰맘 먹고 시작한 주식은 미친 N 널 뛰듯 오르내려 정신이 없는데, 벚꽃의 세계마저 올해는 난장판인 듯하다. 봄맞이 춘곤증 대신 겪고 있는 나의 글럼프를, 미쳐 돌아가는 국제 정세와 꽃 피울 시기를 맞추지 못하는 벚나무를 끌어들여 변명하고픈 심정이다.
근래에 습작 삼아 쓰는 소설이 자꾸 막히고 있다. 분명 나름의 확신을 갖고 캐릭터를 구상해서 이야기를 써내려 갔다고 생각했는데, 다음 날 다시 훑어보면 그렇게 허접해 보일 수가 없는 거다. '얘는 왜 이런 생각을 했대? 대화가 자연스럽지 못하고 삐걱거리잖아! 이 개연성 쌈 싸 먹은 전개는 도대체 뭐여?!'라는 생각이 밑도 끝도 없이 이어지는 거다. 수정하자니 어디를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막막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니 비슷한 상황에 또다시 걸려들어 이제는 한숨이 마침표 없이 오르고 또 오른다. 이런 걸 '내 글 구려병'이라고 하는 걸까.
이럴 때일수록 인풋을 더 열심히 해야겠다 싶어 소설책을 펴 들고, 브런치 이웃 작가들의 글을 쫓아가 보지만 집중력이 예전만 못한 것 같다. 그래도 바지런히 글을 올려주는 글벗들 덕분에 '지속되는 글쓰기'에 대한 에너지를 받게 된다. 한동안 그 글벗들이 브런치에 잘 보이지 않을 때는 내가 글을 부지런히 올렸는데, 이렇게 서로 글쓰기 바통을 주고받으며 알게 모르게 서로를 의지하게 되는 것인가 보다. 그 생각에 이르니 글벗, 글동지,라는 말이 더욱 정겹게 들린다.
얼마 전 시작된 친정 엄마와의 별거생활이 흐트러진 집중력에 한몫을 한 건지도 모르겠다. 떨어져 지내보는 것이 좋겠다는 마음이 임계점으로 차올라, 결국 나와 엄마는 따로 살기로 결정했고, 여느 때와는 다르게 실행에 옮겼고, 엄마는 동생네 근처로 터전을 옮겼다. 엄마가, 어느 정도의 기간이든, 동생과도 함께 살아보길 바랐다. 결혼 후에도 엄마와 동거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 동생도 좀 알기를 원했고. 직접 그 상황에 처해보지 않고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있는 법인데, 나의 상황에 대해 별일 아닌 듯 받아들이며 이따금 보태준 돈으로 생색내는 동생이 얄밉기도 했다. 아니, 솔직히 말해 몹시도 얄미웠다. 정신 번쩍 들게 궁둥짝을 차주고 싶을 정도로.
그러나 동생은 엄마와 함께 살 마음이 전혀 없고, 엄마 또한 동생 부부에게 불편을 끼치고 싶지 않다며 동생네 근처에서 사는 것으로 결론을 낸 것이다. (아무래도 노모에게는 딸의 불편은 가볍고, 아들이 겪을 불편함은 크게 보이는 것인가 보다, 여기서 또 섭섭함이 불쑥..) 그리하여 나는 주기적으로 엄마를 만나러 간다. 집 근처 도서관에서 미리 골라 둔, 엄마가 읽을 책들을 챙겨서. 고로, 다음번 나와 엄마가 만날 날은 책의 반납일이 다가오는 시점이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따로 살이가 얼마나 이어질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모녀에게 이런 시간이 필요한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이번 방문 때는 엄마와 근처 공원으로 만개한 벚꽃을 보러 갔다. 공원에서, 아마도 처음으로, 엄마와 나란히 앉아 벚꽃을 바라보며 김밥을 까먹었다. 생각보다 날이 쌀쌀했지만, 김밥을 먹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시간이 퍽 마음에 들었다. 그러다 문득 윤이프란츠 작가님이 작년 이맘때쯤 브런치에 올린 벚꽃 이야기가 생각났다. 은빛 단발머리를 한 작가님의 어머님과 올해 봄에는 꼭 벚꽃 화려한 윤중로를 걷고 싶다고 했었는데, 작가님은 결국 이 봄을 보지 못하고 떠나셨다. 엄마에게 남은 봄은 얼마나 될까. 창문 너머로 보는 봄이 아닌, 온몸으로 맞는 봄이. 그 생각을 하자 남녀차별의 섭섭함이 조금은 수그러드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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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은 공원까지 엄마를 반쯤 업다시피 하여 끌고 나왔는데, 머지않아 엄마를 휠체어에 태워 와야 할지도 모르겠다. 엄마 또래 어르신들은 쌩쌩, 경사진 산길도 잘만 오르던데, 의지할 것 없이는 몇 백 미터 걷는 것조차도 힘겨워하는 엄마를 두고 귀가하려니, 커다란 바위 하나가 내 안에 들어앉아 있는 느낌이었다. 그러다가 이내, 다리 근육이 이토록 부실해지도록, 내 잔소리는 아랑곳없이, 틈만 나면 방구석에서 자리보전하고 누워있던 엄마가 원망스러워졌다. 갈팡질팡하는 내 마음이, 오락가락 품위라고는 털끝만큼도 찾아보기 힘든 트럼프의 말을 닮은 것 같다.
봄은 화려한 잔치를 벌이고 있는데, 내 마음은 어두운 구석을 자꾸 파고들려 한다. 이런 나를 눈치 챈 것일까. 집으로 돌아오니 반려조 망고가 사랑의 노래를 부르며 재미있는 장면을 선사한다. 세상이 당신을 밀어내는 기분이 들더라도 결코 좌절하지 말기를, 힘을 내기를! 어쩐지 녀석이 그렇게 말해주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그래, 봄은 어김없이 오는 것이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겨울을 밀어내고. 내가 해야 할 일은 그 겨울을 잘 버텨내는 것. 다가올 봄에 필요할 에너지를 축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