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맞이
해맞이를 완전히 포기한 채 느지막이 일어난 새해 첫날,
해는 이미 지평선에서 한참 멀어져 있었다.
몸 안의 세포들을 깨워가며 빛에 적응하는 동안,
경쾌한 음과 함께 채팅창에 아름다운 이미지들이 하나둘 올라왔다.
글벗들이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각자의 소식을 사진을 통해 전해줬다.
누군가는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책과 함께 와인을 기울였고,
누군가는 단단한 다짐과 함께 산을 올랐으며,
또 다른 누군가는 떠오르는 첫 해의 기운을 받으며 한강을 곁에 끼고 하프마라톤에 도전했다.
아직 밤기운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나의 눈에 사진과 함께 표시된 '20.23'(km)라는 숫자가 비현실적이고도 경이롭게 다가왔다.
‘해맞이'를 하지 못한 나는 벗이 올려준 2023년 떠오르는 첫 해를 보며 새해 소원을 빌었다.
시계는 10시를 훌쩍 넘어서고 있었다.
아이는 기대감 서린 눈빛으로 냉장고 문을 바쁘게 여닫았다.
아이는 떡국을 먹으며 새해를 맞이한다.
떡국을 먹으며 먹고 싶은 '나이'도 한 살 같이 먹는, 본인만의 새해맞이 의식을 치른다.
아이의 기다림이 헛되지 않게 나는 올해도 서둘러 떡국을 끓인다.
- 나만의 떡국 끓이기 -
경쾌한 재즈음악을 튼다.
떡을 차가운 물에 폭 담가 두었다 가볍게 씻어낸다.
적당한 양의 물에 굵은 멸치를 넣고 불을 올려 육수를 몽근하게 우려낸다.
고명으로 올릴 채소(당근, 애호박 등)와 고기를 잘게 다져 프라이팬에 달달달~ 볶아둔다.
계란은 흰자와 노른자를 착착 분리해 구운 뒤 잘게 썰어둔다.
육수가 어느 정도 우러나면 떡을 퐁당퐁당, 투척하고 국간장과 양념으로 적당히 간을 맞춘다.
떡이 잘 익을 정도로 보글보글 끓으면 그릇에 담아 고명을 단정히 올린다.
그리 복잡하지 않은 준비과정이지만 새해초 떡국을 끓이는 마음은 썩 가볍지 않다.
떡국을 끓이며 한 켜 더해질 내 나이의 무게를 실감하게 된다.
유아에서 어린이로, 어린이에서 청소년으로 성장해가는 아이 모습에 기쁘면서도 한편으로 아쉬움에 젖어든다.
한 해가 다르게 노쇠해져 가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젊었던 엄마와 어렸던 내가 살았던 그 시절이 그리워진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떡국을 깨끗이 비운 엄마는 말한다.
모처럼 든든하게 잘 먹었다!
엄마의 말에 우리가 함께 떡국을 먹을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문득 헤아려보게 된다.
떡국을 끓이며 생각한다.
나이를 먹고 싶은 아이는 떡국과 함께 한 해를 앞으로 먹고,
이미 어른인 우리는 한 해를 뒤로 먹으면 좋겠다고.
떡국 한 그릇에 이렇게 의미를 부여할 일인가, 싶으면서도 자꾸 진지해지려 한다.
'진지하면 반칙'이라고 내가 좋아하는 작가는 말했는데...
떡국을 먹으며 생각한다.
나이에 1을 더하더라도 철은 0.1만큼만 들자고.
오는 세월 가는 세월 내가 어찌할 수 없지만,
철이 들고 안 들고는 내가 만들어갈 수 있을 터이니.
아이와 가까운 마음으로 2023년을 살아가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