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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극적으로 아이 활용하기

또 하나의 새해를 맞이하며

by 지뉴

첫째는 말이 많았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첫째가 재잘거리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엄마~"라고 시작해서 나와 무엇인가를 같이 하자고 제안하고,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고, 필요한 것들을 요청하며 본인의 의사 표시를 잠들기 전까지 줄기차게 이어갔다.

놀이터에 데리고 나가면 얼굴도 모르는 어른들에게 다가가서 친근하게 먼저 말을 붙이곤 했다. '누굴 닮아서 저럴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아이는 부모와 다르게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붙임성 많고 적극적이었다.


그때의 나는 그런 아이를 회피하고 싶을 때가 종종 있었다.

하루종일 학교에서 아이들과 부대끼며 목에 핏대를 세우다 퇴근해 집으로 돌아오면 말이 필요한 모든 일들은 내려놓고 싶었다. 그래서 생각했다. 아이가 얼른 자라서 질문을 덜 하고 엄마 손도 덜 필요로 했으면 좋겠다고. 그런 시간이 하루빨리 오면 좋겠다고.

정작 내 아이 앞에서 나는 아이와의 대화를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는 말없는 엄마가 되어가고 있었다.


내가 맘 속으로 되뇌어서일까. 아이는 어느 샌가 훌쩍, 자라 버렸다.

중학생이 된 아이는 이제 내가 먼저 길게 말을 걸어도 단답형으로 대답하거나,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이거나, 그것도 아니면 간단한 손짓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같이 어디를 가자고 해도 시큰둥하다.

그런 아이를 보며, 닫힌 아이의 방문을 뒤로하고 걸어나오며 불현듯 나는 귀찮을 정도로 말이 많던 그때의 아이가 몹시 그리워진다.


이제 두 아이의 엄마인 나는, 또 한 해를 맞이하며 내가 나이 들어가는 것보다 나를 절실히 필요로 하던 아이의 재잘거리는 모습이 세월 속으로 멀어져 가는 것에 더 서글픈 마음이 된다. 처음 자전거 타기를 연습하며 내가 잡아주던 무게에 의지하던 아이가, 불현듯 혼자서 씩씩하게 페달을 굴려 눈앞에서 멀어져 가는 모습을 속절없이 지켜보는 기분이랄까.

이런 나는 얼마 전까지, 내년이면 중학교 2학년이 될 첫째를 보며 후회에 잠겨 새해를 맞이하려 하고 있었다.

그런데... 둘째의 말 한마디가 나를 구제해 주었다.


어느 날 문득, 답답하고 섭섭한 마음에 둘째에게 말했다.

"oo이는 누나처럼 사춘기라고 엄마한테 말도 안 하고 그러지 마. 그럼 엄마 맘이 아플 것 같아, 응...?"

생각에 잠긴 듯 잠시 말이 없던 아이가 툭, 내뱉었다.

"엄마, 나도 장담은 못하겠어. 그러니까 내가 그렇게 되기 전에 나를 실컷 활용해!"

'자신을 실컷 활용하라'는, 생각지도 못한 아이의 말에 웃음이 픽, 나오면서도 무슨 말인지 확신이 서지 않아 다시 질문을 던졌다.

"활용하라는 게 무슨 말이야?"

"나랑 영화도 보고, 맛있는 것도 먹고, 놀러도 다니고 그러라는 얘기야. 난 아직은 엄마랑 그런 거 같이 하는 게 좋으니까..."

순간, 웃는 내 표정과는 다르게 울컥, 하고 무엇인가가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 아이에게 고마웠다. 무척이나. 한편으로는 첫째가 '아직은' 엄마와 함께하는 걸 좋아했을 때 왜 더 많이 나누지 못했을까, 자책도 들었다.


아이를 통해 또다시 나를 반추하게 된다.

그리고 다짐한다. 감사하게도 내게 '아직은'의 시간이 남아있는 지금 아이를, 아이와의 시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겠다고.

아이와 함께 할 새해의 버킷 리스트를 하나하나 적어 내려가봐야겠다.

그 전에 아이가 하고 싶어 하는 걸 물어봐야겠다.

내가 먼저, 적극적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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