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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간소음 이야기

by 지뉴

'띠루리로 띠리링~'

밤 11시 10분, 인터폰이 울렸다. 이 시간에 인터폰이 올 곳은 단 한 곳. 아래층이다.


밤늦은 시간 아우성치는 인터폰에 짜증이 올라오려다 이내 정신이 번쩍 들며 현재 우리 집 상황을 재빠르게 살폈다. 소리가 나고 있는 모든 것들을 확인했다.


안방에는 텔레비전이 켜져 있었고, 거실 한 구석에서는 둘째가 컴퓨터를 하고 있었다.

첫째의 방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인터폰이 울린 그 시점, 우리 집에서 가장 시끄러운 소음을 내고 있는 존재는 앵무새 두 마리였다.


인터폰 수신음이 끊기기 전 짝꿍이 수화기를 들었다.

옆에서 듣자 하니 화가 잔뜩 오른 것 같은 목소리가 귓전으로 날아들었다.

아래층 남자가 우리 집에서 들리는 소음으로 인해 잠을 제대로 잘 수 없다며 항의를 했다.

짝꿍은 그 소음이 정확하게 어떤 소리인지를 물었다. 아래층 남자는 '발자국 소리 같은 거'라고 답했다.


그런데 아무리 살펴보고 생각해 봐도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그 시간 우리 집에는 기어 다니는 아이도 직립보행을 하고 있는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대로 말했다. 현재 우리 집은 그런 소음이 날만한 상황이 전혀 아니라고.

남자는 의구심 가득한 목소리로 심문하듯 이것저것을 캐묻더니 결국은 ‘알겠다'며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이사 온 지 그다지 오래되지 않았지만 아래층으로부터 벌써 다섯 번째 받는 항의성 인터폰이었다.

다섯 번중 네 번은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걸려왔다.

한 번을 제외하고는 가족들이 제자리에 앉아 있거나, 누워서 티브이를 보거나 샤워를 하고 있을 때 걸려온 ‘발소리가 너무 시끄럽다'는 민원이었다.


장식용 피아노만 있을 뿐인데 '요란한 피아노 소리가 무척 거슬린다’는 핀잔을, 새벽 1시 이후엔 개미 새끼 한 마리도 활동하지 않는 우리 집인데 새벽 2시고 3시고 발소리가 시끄러워서 잠을 제대로 잘 수 없다'는 항의를 받아야 했다.


우리가 모두 잠든 사이 아래층에서 지속적으로 들린다는 그 발자국 소리의 정체는 도대체 무얼까?

공포영화 속에서나 등장할 법한 '귀신 발자국' 소리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는 아래층의 '귀 밝은' 이웃에게 여러 차례 우리 상황을 얘기했지만 의심은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불편한 인터폰은 계속되었다.


그런데 이날은 그냥 넘어가고 싶지 않았다.

이쯤 되면 직접 얼굴을 보고 확실히 해명을 해야겠다 싶기도 했지만, 밤늦은 시간 너무도 떳떳하게 다그치는 태도와 우리를 상습적으로 거짓말이나 해대는 '가해자' 쯤으로 여기는 듯한 그 말투에 대해 나도 좀 따져봐야겠다 싶었다.


그래서 짝꿍을 대동하고 아래층으로 향했다. 시곗바늘은 밤 11시 40분을 향해 가고 있었다.

씩씩하게 초인종을 눌렀다. 몇 초간 신호가 가더니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누구시죠?"

목소리로 봤을 때 남자는 별로 당황한 것 같지 않았다.

"위층에서 왔는데요~, 말씀 좀 나눴으면 해서요…!”

망설이지 않고 내가 답했다.


곧이어 현관문이 열리고 잠옷 차림의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예민하기 그지없는 폐인과 같은 인상이 아닐까 상상했는데, 막상 얼굴을 마주하고 보니 생각보다는 인상이 나쁘지 않았다. 둥글둥글한 체형에 일제강점기에 유행했을 것 같은 특이한 안경을 쓰고 있었다.


남자는 굳이 집안으로 들어와서 얘기를 나누자고 했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 우리와 아래층 남자는 그렇게 잠옷 바람으로 소파에 나란히 앉게 되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나는 우리의 상황을 얘기하며 억울함을 토로하고 돌아오는 남자의 말에 항변했다.

자꾸만 끓어오르려 하는 날 선 감정을 최대한 억누르며.


"가만히 한번 들어보세요. 위층에서 어떤 소리가 들리는지..."

남자는 나의 말을 믿기 힘들다는 표정을 지으며 손끝으로 천장을 가리켰다.


밤 깊은 시간, 짝꿍과 나는 아래층 거실 소파에 앉아 남자가 시키는 대로 천장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혹여나 들려올 우리 집발(發) 소음에 온 귀를 기울였다. 조마조마한 마음을 애써 숨긴 채로.

다행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것 보세요!'라는 눈빛으로 남자를 쏘아봤다.


"인터폰을 하고 나면 이렇게 조용해져요. 그래서 와이프랑 저는 위층에서 나는 소음이란 걸 확신했어요.”

남자는 여전히 의심쩍어하며 이렇게 말했다.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그럼, 소음이 나면 인터폰 하지 마시고 그냥 올라오세요. 저희 상황을 바로 보여드릴 수 있게요. 이 시간에 여기까지 와서 저희가 뭣하러 거짓말을 하겠어요?!"

그러고 나서 난 혼잣말인 듯 중얼거렸다. ‘그 새벽에 발자국 소리라니, 귀신 소리라도 들리는 건가...'라고.


결론이 나지 않을 것 같은 줄다리기를 계속하다 결국 남자는 나의 발언에 납득을 표했다. 미친 사람이 아니고서는 그 시간에 이웃집에 와서 거짓말로 그토록 항변할 사람은 없으리라는 사실에. 그 이후 우리를 ‘정상이 아닌’ 사람이라고 의심했을지 어땠을지는 모르겠으나.


한 가지 확실한 건, 인터폰을 통해 항의를 하고 반박을 하는 것보다는 그래도 직접 얼굴을 맞대고 얘기하는 게 낫다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그날의 방문 후 뒤끝이 완전히 시원하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조금은 우리의 억울함과 그의 의구심을 덜어낸 것 같았다.


문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또다시 마음이 답답해진다는 것이다.

아파트라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거주지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이 평범한 공간을 일상적으로 걸어 다니면서도 문득문득 발뒤꿈치를 들게 만드는 이 '일상의 고문'은 계속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에.

마치 '거대한 기차'와도 같은 이곳에서 아래층 그들과 위층 우리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굴레안에서 서로를 의심하며 오늘도 내일도 돌고 돌게 되지 않을까, 하는 부정적 예감에.


층간소음으로 인해 악감정을 품은 누군가는 이웃집 현관 손잡이에 '코로나 바이러스'를 묻히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극단적 살인으로까지 치닫는 살벌하기 그지없는 한국의 아파트 층간 전쟁 속에서 정작 이렇게 허술한 집을 지은 건설사들은 일말의 개선조차 없어 보이는데, 마당 너른 주택에 살 상황이.안되는 우리들만 기를 쓰고 조심한다고 해결될 문제일까?

21세기하고도 20여 년이 지난 지금의 기술과 자본이면 일상소음으로 인한 이웃들 간의 끝없는 전쟁을 충분히 종식시킬 수 있을 텐데 말이다.


결국 근본적인 원인제공자는 따로 있는데 애꿎은 이웃들끼리 마음으로 치고받으며 싸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어 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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